Kindergarten

발레수업 2004.7.11

김남시 2005. 10. 30. 05:00
아침에 일어나 싱그러운 나무와 풀 향기가 실린 서늘하고 실픗한 공기를 들여마실 때에야 비로소 난 살아있음을 느낀다. 한국, 특히 내가 살았던 서울에 비해 이곳 독일이 갖는 가장 커다란, 포기하기 힘든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는 더이상 날 이국에서의 삶으로 설레게 하지않는 베를린의 거리들에도 불구하고, 이 아침 공기는 언제까지도 날 질리거나 지루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 어떤 낯선 장소에서도 살아나갈 수 있는 인간의 저 놀라운 적응력은 그러나, 낯선 곳에서의 설레임과 새로운 곳에 내 육체를 들여놓을때의 짜릿한 흥분을 곧 진부하고도 생기없는 일상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렇게 우리의 삶은 애초의 생생한 싱그러움을 잃고 퍽퍽한 마른 빵처럼 변해버린다. 그러나, 그 말라 딱딱해진 빵 속에서 아직 마르지 않고 남아있는 건포도를 발견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 그건 가은이의 발레 수업이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누군가, 무엇인가의 미래에 대해 꿈꾸는 것만큼 우릴 현기증나게 하는게 또 있을까? 아직 도래하지 않은 어떤 미래에 대해 꿈꾸고 있을때 우린 우리 육체가 어쩔수 없이 붙박혀있는 이 현재의 끈끈이에서 떨어져나와 우리가 원하는 어떤 곳에로든지 날아갈 수 있는 마법의 양탄자를 탄다. 그러나,저 오랫동안 붙박혀있던 바닥에 익숙해있던 우리의 육체는 이렇게 빠른 속도로, 이리저리 기우뚱거리며, 울렁거리고 날아가는 저 미래에의 상상의 여행에 멀미를 일으킨다.

가은이의 미래에 대해, 가은이와 함께 발레수업을 받고있는 저 장난꾸러기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떠올리면서, 그것이 저 아이들이 입고있는 분홍색 발레 슈트 처럼 꿈꾸듯 하늘거리는 달콤한 상상이건, 아니면 검은 옷을 입은 발레선생의 꾸지람처럼 어둡고 불안한 걱정거리건, 난 설픗 어지럼증을 느낀다. 내 어지럼증은 아이들이 둘씩 짝지어 음악에 맞춰 점점 빠르게 빙글빙글 돌다가 바닥에 눕는 마지막 발레수업 동작을 보면서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한다.

'Kindergarte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이와 상징계 2004.9.1  (0) 2005.10.30
아이의 욕구와 말 2004. 8.2  (0) 2005.10.30
아이와 육체 2004.5.26  (0) 2005.10.30
아이와 이데올로기 2004.3.11  (0) 2005.10.30
말을 듣는 아이 2004.3.2.  (0) 2005.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