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dergarten

아이에 대한 부채 2003.10.17

김남시 2005. 10. 30. 04:56
독일에 있을땐 알지 못했던 것이 한국에 와서 부각되는 것 중의 하나가 가은이의 태도다. 녀석은 동생과 아빠, 엄마 이 세명의 가족 구성원외의 다른 가족들,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이모 등등을 그로부터 자신의 가족을 지켜내어야 할 가능한 적으로 규정한다. 가은은 누군가가 자기 동생을 뺏어갈까봐, 누군가 자신의 엄마나 아빠를 위협하거나 모욕할까봐 신경을 곤두세우고, 다른 이들에게 공격적으로 대한다.

난 이것이 독일에서 외국인으로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방식 속에서 알게 모르게 아이가 습득한 일종의 생존전략의 일환임을 안다. 녀석은 말은 하지 않지만, 자신과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이 그 곳에 살고있는 대부분의 독일인들과는 무언가 다른 존재라는 걸 인식하고 있으며, 그들 사이에서 늘 부족하고, 위협에 처해있는 사회적 약자이자,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고있는거다.

녀석은 파란 눈과 노란 머리를 한 독일인들의 눈빛에서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 대한 드러나지 않는 경계심을 읽었을 것이고, 저 낯선 삶의 환경 속에서 엄마, 아빠가 견딜 수 밖에 없었던 자신없음과 불안감을 감지했을 것이다. 그리곤,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 늘 경계하며 긴장하는 삶의 습관에 익숙해졌을 것이다.

모국의 삶의 방식을 자신의 일차적 준거세계로 삼을수 있을만큼의 기간동안 한국에서 살아볼 기회를 갖지 못한 녀석에겐, 어릴적부터 내가 써오던 친숙한 말을 쓰고, 오랫동안 내게 익숙해 있던 삶의 습관들을 가진, 같은 종류의 음식을 먹고 유사한 체취를 풍기는 사람들 속에 왔을 때 내게 다가오는 저 깊은 이완감도 감지하지 못하는 거다.

그래서, 녀석은 동생을 안아주려는 할아버지에게, 아빠에게 반말을 쓰는 할머니에게, 머리모양으로 농담을 건 고모들에게 저렇게 공격적인 방어태세를 취하는 거다.

아, 난 얼마나 많은 부채를 아이들에게 지어 주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