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dergarten

아이의 가능성, 나의 가능성 2003.4.5

김남시 2005. 10. 30. 04:52
오늘 아이를 데리고 수족관엘 갔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아이는 스스로 자신이 가고 싶은 곳에 갈줄 모른다. 아니, 어느 곳이 무엇이 그가 가고 싶고 가지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무엇인가를 제시해주면, 내가 어딘가를 데려가 주면 아이는 그것이 맘에 들은 것일 경우엔 환성을 지르며 좋아한다.

커다란 잉어들이 노닐고 있는 곳에 손을 담그며 녀석은 집에선 하지 못하는 물장난에 여념이 없다. 아이가 스스로 하고 싶은 것과 가고 싶은 곳을 제시할 수 있기 전에 아이의 가고싶은 곳과 하고 싶은 것의 리스트는 부모에 의해 만들어진다. 난 녀석을 동물원에 데리고 가 아가가 좋아하는 사자와 코끼리를 보여줄 수도 있지만, 하루종일 집안에서 테레비젼을 보며 뒹굴고 있게 할 수도 있다.

아이는 나의 활동의 가능성에 자신의 인식 가능성이 의존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아이의 가능성은 곧 나의 가능성에 의존한다.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에 따라서 아이는 자신의 세계의 가능성을 넓혀 나갈 수도 그저 집안에로 국한된 활동 반경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그와 어떻게 무엇을 하며 놀아주는 가에 따라 또한 아이는 자신의 활동과 사고의 가능성을 넓혀갈 것이다.

아이의 가능성이 이처럼 나의 그에대한 관심과 투여에 달려있다는 사실은 날 불안하게 만든다. 내가 그를위해 할 수있는 것과 할 수없는 것의 한계가 모호한 만큼  내가 언제나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고있다는 강박이 달겨들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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