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dergarten

아이의 언어, 아이의 세계 2002.10.22

김남시 2005. 10. 30. 04:47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곧,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를 구성한다. 우리는 우리의 언어를 통해 구성된 세계 속에서, 그 언어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있는 세계를 보고, 경험하며, 이야기나누며 살아간다.

자신이 경험하는 사태나 사물의 상태를 표현하는 어휘를 배우지 못한 아이는 이를 자신이 이미 알고있는 어휘를 통해 이해하고 표현할 수 밖에 없다. 이를통해 아이에게는 그가 가지고 있는 어휘를 통해 만들어진 하나의 색다른 세계가 주어진다.

나무에 '긁히다'라는 단어를, 곧, 그 단어를 통해 표현되는 사태를 아직 배우지 못한 아이는, 나뭇가지에 의해 자신의 얼굴이 '긁혀지는' 사태를 '나무가 꽉 물었어'라고 말한다. 아이는 자신이 알고있는 언어들로 구성된 세계 - 그 속에는 모든 세상의 사물들, 그것이 생물이건 무생물이건, 자동차건 사람이건, 건물이나 심지어 먹을것이건 상관없이 무엇인가를 '먹고, 자고, 마시고, 놀고, 뛰어가고, 울고, 걸어가고, 기다리고,물고' 할 수 있을 뿐인 그 세계 - 속에서 나무가 할수 있을거라고 생각한 행동의 가능성 중 자신이 금방 경험한 사태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라고 여긴 동사 '물다'를 택한 것이다.

주차되어 서 있는 차들을 보고 아이가 "빠빵이 코자자 하네"라고 말한다. 아이에겐 움직이지 않고, 소리도 내지 않으며, 깜빡거리거나 불을 켜지도 않은채 한 곳에 가만히 서 있는 자동차의 상태는, 자신이 알고 있는 어휘 중 '잠을 잔다'라는 단어를 통해 가장 잘 표현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에게 저 자동차는 잠시후 "잠에서 깨어나", "배고프면 밥을 먹고 (주유)", "걸어가거나 달려가고", 그러다가 "힘들면 쉬는 (신호대기)" 생명체에 다름 아니다.

이렇게 구성된 세계를 통해 아이는 어쩌면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세계의 순간을 깨닫고, 우리의 세계가 가지고 있지 못한 생명력을 감지한다. 우리가 배운 말을 통해, 그를통해 받아들인 이 세계의 즉물성에 익숙해져버린 우리는 바로 저 아이가 보고 있는 이 동일한 세계 속에서 살면서도 이 세계의 생명성을 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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