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한없이 크다.
차분히 집에 앉아 책을 보거나, 무엇인가 생각에 잠기거나, 하다 못해 티브이라도 집중해 바라보고자 할 때 아이는 날 내버려두지 않는다. 녀석은 끊임없이 나로 하여금 자신의 놀이의 파트너가 되기를, 자신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호응해주기를, 틈만나면 녀석의 그 놀이로 날 끌어들이려 한다.
그럴 때 아이는 내 삶을, 내 여가 시간을, 나의 휴식과 기분전환을 송두리째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커다른 폭군이 된다. 저 폭군의 요구로부터 나는, 다른 때 같으면 가능했었을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서도 벗어날 수 없다. 난 내게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요구해 대는 그에게, ‘시간이 없어요’, ‘당신과 말하고 싶지 않군요’, ‘난 좀 쉬고 싶어요’ 라고 말할 수도, 그도 아니면 그로부터 나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 관계를 단절할 수도 없는 사슬묶인 하수인이 된다.
아이는 또한 한없이 작다.
무서운 꿈을 꾸었는지 낮잠을 자다 일어나 엄마,아빠를 찾으며 울거나, 밥을 먹다 혓바닥을 깨물고 아파하거나, 개를 피해 아빠에게 안겨들거나, 난데없이 엄마, 아빠에게 다가와 작은 입술로 뽀뽀를 하거나 할 때 아이는, 내가 보호해주지 않으면 금새 꺼져버릴 것 같은 촛불처럼 작다.
어디선가 새로운 말을 배워와 우릴 놀라게하거나, 우리가 전혀 생각할 수 없을 것 같은 먼 사물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상상력으로 우릴 경탄게하거나, 엄마,아빠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이 낯선 사회에 적응해가는 대견스러움을 대할 때 아이는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내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된다.
내가 결코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었을 부모로서의 기쁨, 나보다 더 미래를 살아나갈 존재에 대한 경이로운 기대감, 서서히 한계가 보이기 시작하는 내 삶을 훨씬 넘어 서 있을 새로운 삶, 그 설레이는 가능성, 끊임없이 무엇인가 배워나가고, 성장하고, 자라나며, 변화해가는 저 역동적 삶이 내게 주는 긴장감… 이것들이 내 삶의 모습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감정들인 한, 저 한없이 작은 아이는 내 삶을 내 것이게 해주는 본질적 구성요소다.
한없이 크고도 또 한없이 작은 저 아이는 그를통해 도대체 출구가 보이지 않는 기이한 딜레마 속에 날 빠지게 만든다. 나의 휴식과 나의 여가와 나의 삶을 되찾기 위해 난 저 한없이 큰 아이를 내칠 수도, 저 한없이 작은 아이를 통한 내 삶의 한부분을 위해 나의 휴식과 나의 여가와 ‘나의 삶’을 포기하기도 힘든 이 딜레마에서 우리 부모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차분히 집에 앉아 책을 보거나, 무엇인가 생각에 잠기거나, 하다 못해 티브이라도 집중해 바라보고자 할 때 아이는 날 내버려두지 않는다. 녀석은 끊임없이 나로 하여금 자신의 놀이의 파트너가 되기를, 자신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호응해주기를, 틈만나면 녀석의 그 놀이로 날 끌어들이려 한다.
그럴 때 아이는 내 삶을, 내 여가 시간을, 나의 휴식과 기분전환을 송두리째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커다른 폭군이 된다. 저 폭군의 요구로부터 나는, 다른 때 같으면 가능했었을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서도 벗어날 수 없다. 난 내게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요구해 대는 그에게, ‘시간이 없어요’, ‘당신과 말하고 싶지 않군요’, ‘난 좀 쉬고 싶어요’ 라고 말할 수도, 그도 아니면 그로부터 나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 관계를 단절할 수도 없는 사슬묶인 하수인이 된다.
아이는 또한 한없이 작다.
무서운 꿈을 꾸었는지 낮잠을 자다 일어나 엄마,아빠를 찾으며 울거나, 밥을 먹다 혓바닥을 깨물고 아파하거나, 개를 피해 아빠에게 안겨들거나, 난데없이 엄마, 아빠에게 다가와 작은 입술로 뽀뽀를 하거나 할 때 아이는, 내가 보호해주지 않으면 금새 꺼져버릴 것 같은 촛불처럼 작다.
어디선가 새로운 말을 배워와 우릴 놀라게하거나, 우리가 전혀 생각할 수 없을 것 같은 먼 사물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상상력으로 우릴 경탄게하거나, 엄마,아빠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이 낯선 사회에 적응해가는 대견스러움을 대할 때 아이는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내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된다.
내가 결코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었을 부모로서의 기쁨, 나보다 더 미래를 살아나갈 존재에 대한 경이로운 기대감, 서서히 한계가 보이기 시작하는 내 삶을 훨씬 넘어 서 있을 새로운 삶, 그 설레이는 가능성, 끊임없이 무엇인가 배워나가고, 성장하고, 자라나며, 변화해가는 저 역동적 삶이 내게 주는 긴장감… 이것들이 내 삶의 모습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감정들인 한, 저 한없이 작은 아이는 내 삶을 내 것이게 해주는 본질적 구성요소다.
한없이 크고도 또 한없이 작은 저 아이는 그를통해 도대체 출구가 보이지 않는 기이한 딜레마 속에 날 빠지게 만든다. 나의 휴식과 나의 여가와 나의 삶을 되찾기 위해 난 저 한없이 큰 아이를 내칠 수도, 저 한없이 작은 아이를 통한 내 삶의 한부분을 위해 나의 휴식과 나의 여가와 ‘나의 삶’을 포기하기도 힘든 이 딜레마에서 우리 부모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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