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dergarten

아이의 언어세계와 세계 이해 2001.12.2

김남시 2005. 10. 30. 04:41
녀석이 말을 한다. 아니, 말을 하기 시작한지는 벌써 꽤되었으니까, 그냥 말을한다고 말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말하자면, 녀석은 이제 꽤 긴 문장을 혼자서 혹은 엄마, 아빠에게 발음해보일줄 안다. 대부분의 녀석의 문장은 그러나, 우리가 알아들을수 없는 음절들로 이루어져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그 문장 속에 가끔씩 우리가 아는 단어들이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이를 아마도 다음과 같이 표현할수 있을 것이다.

“&/%&%&§% 아빠 =)(=)/&%%$$&(//꽈광...“

여기서 ‚꽈광’은 ‚무엇인가가 넘어졌다’는 것을 표현할때 녀석이 사용하는 단어다.

두가지 가설이 가능하다. 첫째, 녀석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에 자극받아 멋대로 녀석의 구강구조가 허용하는 임의의 발음들을 즉석에서 만들어 – 거기다 녀석이 이미 알고있던 몇몇 단어들을 섞어 가면서 – 내뱉는다는 것이다.

두번째 가설은 다음과 같다. 사실 녀석에게는 이미 특정한 발음과 의미와의 연관체계가 형성되어있다. 곧, 사실상 녀석은 자신만의 그 의미체계 내에서 기능하고 있는 의미있는 문장을 말하고있다는 것이다. 다만 문제는 녀석의 그 의미체계가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그것과 달라서, 우리에게 그것이 이해되지 못할 뿐이다. 말하자면, 녀석의 말은 우리에게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터어키어와 같다. 우리에겐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하는 음절들로 테레비젼의 터어키 아나운서는 어떤 사건의 경위에 대해 설명한다. 그의 문장 속에는 가끔씩 우리가 알아들을수 있는 어떤 단어들이 등장한다. ‚조지부시’혹은 ‚아메리카’,’나토’등이 그것이다.

만일 두번째 가설이 맞다면, 녀석만의 그 언어체계는 최소한 두 종류의 서로다른 언어 구성요소들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집에서 녀석이 듣고 말하는 한국어의 단어들과, 유치원에서 다른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말하는 독일어 단어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녀석에게 특정 단어들의 발음은 종종 우리에게와는 다르게 들리고, 또 다르게 발음된다. ‚토끼’,’사과’,’아빠’,’엄마’등을 우리와 같은 발음으로 말할 수 있던 아이가, ‚머리카락’은 ‚빠끼지’로, 아줌마 는 ‚아만다’로, GESUNDHEIT’는 ‚게쥰탄’으로 발음한다. 몇번씩이나 녀석 앞에서 따라해보도록 시켜도 발음이 교 정되지 않는것으로 보아, 녀석에겐 우리의 발음들이 실지로 ‚빠끼지, ‚아만다’,’게쥰탄’으로 들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사실을 고려해보면 어쩌면 녀석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체계는 이와같은 불완전한 음성요소들로 이루어져있어 그를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줌마 머리카락이 떨어졌어„를 녀석의 언어로 말하면 „아만다 빠끼지 꽈광“이 될수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언어는 녀석의 성장과 더불어 상호소통가능한 발음들로 발전되어 나갈 것이다.

우리의 세계상이 우리가 익히고 사용하는 언어체계에 의해 구성되어 있다면, 녀석의 세계상은 우리의 그것보다 단순하고, 유치하게 이루어져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내용과 그림들로 채워져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언어는 특정한 발음과 사태의 연관관계를 암기함으로써가 아니라, 특정한 상황과 그에대한 개인의 해석, 나아가 그 해석의 검증이라는 과정을 통해 익혀지기 때문이다. 아이는 ‚듣기’부터 출발하여, 엄마, 아빠가 특정한 사물 혹은 사태에 직면하여 발음하는 단어나 문장들을 녀석은 우선 그 특정한 상황과 사태와 연관시키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그렇게 한번 익혔던 말이 또다시 그와 유사한 상황에서 재출현함을 확인하고는 아이는 그 상황과 그 단어(발음)사이의 연관관계를 재차 확립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이가 해석해내는 언어상황이 우리의 그것과 완전히 다르다면, 그 해석들로 이루어진 아이의 세계상 역시 우리와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언어상황에 대한 아이의 해석이 주로, 가능세계와 불가능세계의 현실적 구분의 결여로 특징지워질수있다면, 우리의 언어상황은 나이브한 리얼리즘적 세계이해에 기초해있다. 인형이나 장난감 자동차는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아프지’않으며, 그림이나 테레비젼에 나오는 초코렛이나 고양이는 끄집어내어 만지거나 안을수 없으며, 때려잡아 죽은 파리는 다시 살아 날아다니지 못하고, 아빠가 뒷품에 감춘 사탕은 어디론가 공기 속으로 사라져 버린것이 아니라는 사실들을 배우지 못한 아이의 세계이해와 그 세계에 대한 아이의 반응은 우리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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