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권의 그림책들에서 곰, 토끼, 코끼리, 말 등을 보고 배운 녀석이 이제는 처음보는 그림책이나 티브이, 신문 등에 나온 그림이나 사진들을
보고도 '고옴','토오끼'.'코끼찌','마알'이라고 알아차린다.
한번 보았던 그림과 동일한 그림을 기억해내어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는 기법과 색채와 모양이 다른 그림을 보고도 그 대상의 정체를 확인(identify)할 수 있다는 것은 녀석이 드디어 '판단'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잡지에 실린 코끼리 사진과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코끼리, 나아가 아빠가 어설프게 그린 코끼리까지 모두 '코끼찌'라고 알아차릴 수 있기 위해선 녀석의 머리 속엔 개별적인 상이함과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그 모두를 '코끼리'로 구분할 수 있는 하나의 '코끼리의 보편자'(gemeinsame quale)가 존재해야 하겠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이 태어나기 이전의 이데아의 세계에서 이미 모든 사물의 보편자를 '알고'있으며, 태어나면서 잠시 망각했던 그를 다시 상기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말한 플라톤의 생각은 어쩌면 사물들을 알아차리는 아이들의 놀라운 능력에 자극 받아 생겨났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구지 이데아 세계를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이 현상은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아이는 몇 개의 서로 다른 그림 혹은 사진을 보고 이것을 모두 '코끼리'라 부른다는 것을 배우는 학습과정을 통해 코끼리에 대한 하나의 '보편적 이미지' - 혹은 보편개념 - 를 갖게 되었고, 그를 새로운 그림, 사진, 모형 등을 '코끼리'라고 판단하는데 적용하는 것이다.
이는 사물들에 대한 인지에서 뿐만 아니라 나아가 색깔, 모양 (세모, 원, 네모 등), 맛과 냄새 등을 구분하는걸 배우는 과정 속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것이다. 붉은 색을 띤 다양한 물건들을 통해 '붉음에 대한 하나의 보편적 이미지'를 형성할 수 없다면 아이는 자신이 처음보는 물건의 색이 '붉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칸트의 표현을 빌자면, 아이는 이를통해 개별적 대상들로부터 그것의 '보편적 이미지'(보편자)를 형성해내는 반성적 판단과 그렇게 형성된 그 보편자에 따라 개별적 사물들을 구분하는 규정적 판단을 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규정적 판단은 또한 다른 한편 동시에 반성적 판단이기도 하다. 아이는 처음보는 코끼리 그림을 '꼬끼찌'라고 인지하면서도 동시에 그를 통해 자신이 갖고있던 '코끼리의 보편적 이미지'를 다시 보충하거나 수정하면서 풍부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엔 '말'과 '소'를 구별하지 못하던 녀석이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말'과 '움메'를 구별할 수 있게 된 것은 개별사물을 통한 이전의 보편적 이미지에 대한 수정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개별적 경험을 통해 하나의 보편적 이미지 혹은 보편개념을 형성하고 그를 재차 개별대상들의 인지에 적용하면서 수정, 보완해 가는 이러한 추상적 판단능력이 없다면 인간은 자기가 이미 한번 보았던 대상들만을 기억을 통해 인지할 뿐, 자신이 보지 못했던 새로운 대상의 정체를 확인(identify)하지 못할 것이다.
새로운 대상들은 그 자체 하나 하나가 따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며, 그를 통해 세계에 대한 인간의 인식은 인간의 기억능력을 통해서만 제한적이고 불완전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자연의 법칙성을 인지하고 나아가 그를 예측, 이용할 수 있게된 것은 인간의 이러한 추상적 판단능력 덕분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어떤 철학자들은 개별 사물들이 지닌 고유함, 특수성을 사상하고 그를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보편자(보편개념)을 통해서 파악하는 인간의 이러한 추상적 판단능력이 세계에 대한 직접적이고 완전한 인식을 가로막았다고 말한다. 이 그림책의 코끼리와 저 잡지에 실린 코끼리 사진, 코끼리 인형과 티브에 등장한 코끼리들은 각기 모두 나름대로의 고유한 특징과 개별성을 지니고 있을 터인데, 이를 뭉뜽그려 '코끼찌'라고 부르는 아이에게는 그 직접적 개별성들이 인지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쳇!
어쨋든 아이는 현재 꽤 의미심장한 인식론적 발전과정에 서 있는 셈이다.
한번 보았던 그림과 동일한 그림을 기억해내어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는 기법과 색채와 모양이 다른 그림을 보고도 그 대상의 정체를 확인(identify)할 수 있다는 것은 녀석이 드디어 '판단'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잡지에 실린 코끼리 사진과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코끼리, 나아가 아빠가 어설프게 그린 코끼리까지 모두 '코끼찌'라고 알아차릴 수 있기 위해선 녀석의 머리 속엔 개별적인 상이함과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그 모두를 '코끼리'로 구분할 수 있는 하나의 '코끼리의 보편자'(gemeinsame quale)가 존재해야 하겠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이 태어나기 이전의 이데아의 세계에서 이미 모든 사물의 보편자를 '알고'있으며, 태어나면서 잠시 망각했던 그를 다시 상기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말한 플라톤의 생각은 어쩌면 사물들을 알아차리는 아이들의 놀라운 능력에 자극 받아 생겨났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구지 이데아 세계를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이 현상은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아이는 몇 개의 서로 다른 그림 혹은 사진을 보고 이것을 모두 '코끼리'라 부른다는 것을 배우는 학습과정을 통해 코끼리에 대한 하나의 '보편적 이미지' - 혹은 보편개념 - 를 갖게 되었고, 그를 새로운 그림, 사진, 모형 등을 '코끼리'라고 판단하는데 적용하는 것이다.
이는 사물들에 대한 인지에서 뿐만 아니라 나아가 색깔, 모양 (세모, 원, 네모 등), 맛과 냄새 등을 구분하는걸 배우는 과정 속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것이다. 붉은 색을 띤 다양한 물건들을 통해 '붉음에 대한 하나의 보편적 이미지'를 형성할 수 없다면 아이는 자신이 처음보는 물건의 색이 '붉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칸트의 표현을 빌자면, 아이는 이를통해 개별적 대상들로부터 그것의 '보편적 이미지'(보편자)를 형성해내는 반성적 판단과 그렇게 형성된 그 보편자에 따라 개별적 사물들을 구분하는 규정적 판단을 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규정적 판단은 또한 다른 한편 동시에 반성적 판단이기도 하다. 아이는 처음보는 코끼리 그림을 '꼬끼찌'라고 인지하면서도 동시에 그를 통해 자신이 갖고있던 '코끼리의 보편적 이미지'를 다시 보충하거나 수정하면서 풍부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엔 '말'과 '소'를 구별하지 못하던 녀석이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말'과 '움메'를 구별할 수 있게 된 것은 개별사물을 통한 이전의 보편적 이미지에 대한 수정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개별적 경험을 통해 하나의 보편적 이미지 혹은 보편개념을 형성하고 그를 재차 개별대상들의 인지에 적용하면서 수정, 보완해 가는 이러한 추상적 판단능력이 없다면 인간은 자기가 이미 한번 보았던 대상들만을 기억을 통해 인지할 뿐, 자신이 보지 못했던 새로운 대상의 정체를 확인(identify)하지 못할 것이다.
새로운 대상들은 그 자체 하나 하나가 따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며, 그를 통해 세계에 대한 인간의 인식은 인간의 기억능력을 통해서만 제한적이고 불완전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자연의 법칙성을 인지하고 나아가 그를 예측, 이용할 수 있게된 것은 인간의 이러한 추상적 판단능력 덕분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어떤 철학자들은 개별 사물들이 지닌 고유함, 특수성을 사상하고 그를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보편자(보편개념)을 통해서 파악하는 인간의 이러한 추상적 판단능력이 세계에 대한 직접적이고 완전한 인식을 가로막았다고 말한다. 이 그림책의 코끼리와 저 잡지에 실린 코끼리 사진, 코끼리 인형과 티브에 등장한 코끼리들은 각기 모두 나름대로의 고유한 특징과 개별성을 지니고 있을 터인데, 이를 뭉뜽그려 '코끼찌'라고 부르는 아이에게는 그 직접적 개별성들이 인지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쳇!
어쨋든 아이는 현재 꽤 의미심장한 인식론적 발전과정에 서 있는 셈이다.
'Kindergarte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삶의 순간 2001.11.16 (0) | 2005.10.30 |
---|---|
작은 창조 2001.10.5 (0) | 2005.10.30 |
아이와 말 2001.8.2 (0) | 2005.10.30 |
깨닫는 아이 2001.7.22 (0) | 2005.10.30 |
Nein 이라고 말하는 아가 2001.6.29 (0) | 2005.10.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