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dergarten

보행기 2000-05-23

김남시 2005. 10. 30. 04:15
제몸 하나 가누지 못하던 녀석이 벌써 보행기를 타고 방안을 휘휘 돌아다닌다. 화장대 위 전화선을 물어뜯고 있는듯 했는데, 어느새 마루에 나와 모아둔 신문지를 뒤적거려 입에 넣는다. 제가 좋아하는 반짝거리는 종이를 보곤 쏜쌀같이 밀고오다 빨래 건조대에 머리를 찧고 울기도 한다. 오늘 아침엔 드디어, 예전엔 빤히 쳐다보다가 결국 되돌아 오곤하던 현관 아래까지 보행기를 타고 진출하였다.

녀석의 보행기는 탱크다.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이면 신문 위나 이부자리, 문지방이나 현관턱을 아랑곳 않고 나아간다. 덕분에 이전엔 관심도 가지지 않았던 집안 구석 구석이 녀석의 공격 대상이 (또한 동시에 녀석을 공격하는 무기가) 되었다. 도저히 잡지 못할 것만 같던 세상의 곳곳에 돌진해가는 녀석의 보행기는 그래서 녀석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우주선'같다.

누워서만 보던 세상을, 앉아서, 더구나 가고 싶은 곳에 나아가, 만지고 빨며,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이 녀석에겐 무척이나 신기로울 것이다. 그러나, 그를 위해선머리를 찧거나 손이나 몸이 끼거나, 엎어져 우는 아픔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아가야, 언제까지나 세상 모든 것에 대한 지금같은 자신감을 잃지 말기를, 널 가로막는 장애물과 굴레들에 지금처럼 머리를 찧고 울더라도 또다시 일어나 앞으로 달려가는 깊은 용기를 간직하기를...

난 널 위한 작은 보행기가 되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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