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과 문화

플라톤과 음악

김남시 2000. 1. 7. 15:18
플라톤이 이처럼 자신의 이상 국가에서 특히 시에 대한 규제를 강조하는 이유는 시가 인간의 심성과 영혼에 깊은 영향을 끼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플라톤 이전의 고대 시대 부터 시는 비합리적 영감(enthusiasms)의 소산물로 여겨지고 있었다. 다시 말해, 회화나 조각, 그 밖의 물건들을 만들어내는 테크네 (이에 대해서는 후에 다룬다)와는 달리 시는 시의 원천인 Muse여신의 힘에 의해 영감받은 시인들이 일종의 '도취 상태'에서 읍조리는 방언과 같은 것이었다. 플라톤의 표현에 의하면 시인은 마치 '자석과 같은' 신들에 힘에 의해 영감받고 possesed 되어서, 말하자면 not in their right mind 이자 out of his sense 상태에서 시를 짓는 것이다. 따라서, 이때 이야기를 하는 것은 사실상 인간인 시인이 아니라 신이며, "신이 시인의 정신을 빼앗아 그를 그의 전령자로 삼는다. 신은 또한 위대한 예언자와 영능자를 활용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이때 신 자신이 화자이고 그들을 통해 신이 우리와 대화하는 것이다. 시인들은 다만 그들이 영감받고 있는 신의 해석자에 불과하다."(Ion) 그리하여, 일종의 도취 상태에서 신의 이야기를 대신 들려주고 있는 시인 앞에서 청중들 역시 '마치 자석이 그에 붙어있는 물건들에도 자력을 갖게 하듯이'(Ion) 최초의 신에 의해 점령된 시인의 도취 상태에 함께 빠져들게 되어 비극적 내용의 시를 듣는 젊은이들은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아주 보잘 것 없는 불행에 대해서도 울부짓고 숱한 애가를 부르게"(Republic) 되는 것이다.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아}를 위시한 플라톤 시대의 시(Poesie)가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해있는 번역본과는 달리, 운율과 장단이 있으며 음률에 맞추어 (대개는 리라를 타며) 불렀던 일종의 음악(mousiko)이었음을 상기해본다면 플라톤의 이러한 판단은 충분한 이유를 갖는다. 곧, 그의 이러한 판단은 음악이 인간 영혼에 대해서 갖는 깊은 영향력에 대해 진지하게 숙고한 결과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할 것은, 플라톤이 관심을 가졌던 인간 영혼에 대한 음악의 영향력은 음악의 심리학적 영향력을 지칭한다기 보다는, 음악과 인간 영혼의 관계를 규정해 주는 고대의 형이상학적 우주론으로부터 도출된다는 것이다.


고대와 중세 사상에까지 그 깊은 흔적을 남기고 있는 피타고라스(B.C. 600) 학파는 우주가 수적 질서와 조화에 의해 구성되어 움직이고 있다고 보았다. 그들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어 우리가 들을 수는 없지만, 우주의 수적 질서로부터 '천상의 음악'(Music of sphere)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들에게 있어 음악은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을 드러내고 밝혀주는 것으로, 인간의 고안물이 아닌 자연과 우주의 산물이었다. 별들의 질서 잡힌 운동이 조화로운 우주의 하모니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운동과 사운드는 인간의 감정을 드러내거나 역으로, 감정을 자극할 수도 있다. 리라의 한 줄을 튕기면 옆에 있던 다른 줄이 공명하듯, 운동과 소리가 영혼을 공명시키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고대인들은 음악은 영혼의 ethos의 표현이자 동시에 영혼을 정화시키거나 타락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을 갖는다고 믿었다. 인간의 영혼이 죄를 지어 육체 속에 갇혀 있다고 믿었던 그리스인들에게 음악은, 따라서, 그를통해 영혼을 정화시킴으로써 잠시나마 육체의 속박으로부터 풀려날 수 있는 종교적 수단으로 여겨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상 History of Aesthetics I. Tatarkiwitz, Pythagorean Aesthetics)

이러한 이전 시대의 믿음을 물려받은 플라톤 역시 교육과 덕성의 영역에서 음악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공화국}에선 젊은이들을 교육시키는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신체를 위해서는 '체육'을, 영혼을 위해서는 '음악(mousiko)'을 들고 있으며, 이 중 체육보다 음악 교육을 먼저 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음악이 우주의 조화와 질서를 반영하고 있는 한, 여기서 허용되어야 할 유일한 음악은 조화로운 국가의 질서와 규범을 드러내고 교육시키는 종류의 것이어야 할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상국가의 실제적인 법률과 정체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Nomoi에서 플라톤은 음악의 힘이 영혼에 즐거움을 주는데 있다고 주장하는 견해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정신이나 육체의 탁월함과 연관된 선을 표현하는' 음악을 지키고 가르쳐야 하며, 그를 위해 음악에 있어서 어떤 표준과 규범들이 설정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플라톤은 "뮤즈에 의해 부여된 올바르고 정당한 음악의 표준들을 알지 못하고 광기와 쾌락에 대한 과도한 욕망에 사로잡혀 음악의 각각의 형식들을 마구 혼합하며, 음악에는 옳고 그름의 표준이 없고 가장 올바른 표준은 청중들의 쾌락이라'고 생각하는 작가들로 인해 "무질서와 몰염치가 만연하게 되었고 더 나은 사람에 대한 존중이 사라졌다"(Nomoi 700a-701b)고 개탄한다. 그에 의하면, 리듬과 음악 일반은 인간의 선, 악의 특성을 재현하는 수단이므로 젊은 세대가 노래나 춤에서 새로운 주제를 제시하려는 것과 쾌락이 그들을 유혹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플라톤은 작가들이 마음대로 작곡하게 내버려두어선 안되며, 이집트에서처럼 1)연간 계획들을 세워 제의들을 정하며, 2) 제물을 바칠 때 부를 노래와 제의를 고귀하게 할 춤을 미리 정해놓고 이를 어기면 사제들과 법률 수호자들에 의해 추방시키는 법률을 제정할 것을 제안한다 춤과 음악에 있어서의 전통적 형식들을 지켜 나가기 위하여 그는 '적절한 교육을 받고 높은 도덕적 수준과 용기를 지닌' '50세 이상의 검열관이 옛부터 전해오는 훌륭한 춤과 음악 중 사회에 적합한 것을 선택하고 부족한 것은 개정하게 해야 하며, 그를 통해 성별간의 자연적 차이에 근거, 남 녀 각각에 적합한 노래를 배당하고 단어들과 음계, 박자에서의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Nomoi, 798d-80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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