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과 문화

예술에 대한 최초의 경계경보 : 플라톤 1

김남시 2000. 1. 5. 16:45

하나의 유령이 한국을 배회하고 있다. '예술에 대한 검열과 규제'라는 유령이. 그 유령은 저 옛날 플라톤(B.C.427-346)에 의해 예술에 대한 경계경보가 울려진 지 2,300 여 년 동안 결코 죽거나 사라지지 않은 채 예술과 문화의 냄새가 피어나는 곳곳에 거대한 몸집으로 떠돌아다니고 있다. 신성모독과 종교 개혁의 칼날을 맞고 오히려 더 날샌 몸집으로 변모해 버린 그들은, 구텐베르그와 진공관에 힘입어 폭발적으로 팽창하기 시작한 인류의 집단적 문화 생활의 구석구석에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다. 그들은 진시황제에 의해 책들이 불살라지고, 히틀러가 예술가들을 쫓아냈을 때, 그리고 겁을 집어먹은 종교인들에 의해 비틀즈의 음반이 분서당할 때마다 출몰하여 인류사의 저 거대한 문명파괴의 드라마를 연출하기도 하였다. {종의 기원}에서 "내추럴 본 킬러"까지는 종교와 사회 문화의 외피에도 불구하고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자유부인}과 "거짓말"에 이르는 한국에서의 검열과 규제의 역사에서도, 사람들을 '나쁜 문화와 예술이 초래할 도덕적 혼란과 파국'의 근원적 불안에 사로잡히게 하는데 능숙한 저 2,000살 먹은 능구렁이 유령이 활약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플라톤은 왜 '예술과 예술가 타도'라는 깃발을 들고 '검열'이라는 초강력 슈퍼 울트라 유령을 만들어낸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건 그의 정치적 이상 때문이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플라톤은, 말하자면 매우 정치적인 인물이었는데, 오늘날 남아있는 그의 저서 중 Nomoi(법률), Politeia, Republic 등 직접적으로 그의 정치적 기획과 관련되어있는 것 말고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는 저작들 역시 그가 이루고자 하는 이상적인 공동체, 이상적 사회의 이념과의 관련 속에서 읽혀질 수 있다. 자신의 이념과 이상을 현실 속에서 실현시키고자 했던 다른 많은 사상가들처럼, 플라톤 역시 그의 이념이 먼지 덮힌 서고에서 잠자고 있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사상과 이념이 그 구체적 실현을 목적으로 삼을 때 그것은 극복해야할 현실에 대한 교정(혹은 규제)과 변혁을 추구하는 '정치'와 '교육'의 문제가 된다. 공자의 사상이 정치적, 교육적 이념으로 표현된 것도, 맑스주의의 역사철학이 당과 국가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은 이러한 연유에서이다.

기존의 존재질서를 새로운 존재질서에로 변혁시키려하는 이러한 유토피아론들(칼 만하임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은 따라서, 초월 또는 극복해야할 현존질서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려 한다. 토마스 모어({유토피아} 1516)와 캄파넬라({태양의 제국} 1602)의 이상국가는 그 공동체의 질서와 규칙을 따르지 않는 자들 - 물론, 대부분의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그를 따르고 있지만 - 에게 벌을 주거나 추방함으로써 그들의 국가를 유지해 나간다. 哲人 통치자와 무사인 수호자 그리고 이들에 의해 통치받고 보호받는 시민들로 구성된 플라톤의 이상국가에서 각 계급은 유기체의 각 부분들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길 요구받는다. 이 국가의 성패는 이 각 계급들 간의 충실한 의무 이행에 달려있기 때문에 각 계급들은 그에 상응하는 자질과 덕성을 기르도록 교육받아야 한다. 그를 위해 국가는 개인들의 성적생활에 대한 개입도 주저하지 않는다. 미래의 통치자는 가장 고귀하고 건장한 남자와 가장 고귀하고 건장한 부인 사이에서 출생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규제와 경계는 이러한 기획 속에서 등장한다. 용기를 가져야만 하는 수호자 계급들에겐 죽음과 지옥의 공포나 슬픔 혹은 지나친 웃음을 조장할 수 있는 시들은 이상국가에서 제거되어야 한다. 다음의 대화를 보자.

소크라테스(이하 Soc.) : 그런데, 그들에게 용기를 주려면 방금 이야기한 것 이외에도 가르쳐 출 것이 없을까? 죽음의 공포를 제거할 만한 것 말이네.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은 용감해 질 수 없을 테니까...

아데이만토스(이하 Ade.) : 물론 그렇습니다.

Soc. 그리고 지옥이 무서운 곳인 줄로 알고있는 사람이 죽음을 겁내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하여 전쟁터에서 패배나 예속보다 죽음을 택하려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Ade. 그건 불가능하겠지요.

Soc. 그러므로 우리는 지옥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사람에게도 간섭을 해야겠네...그들의 말은 우리 나라의 미래의 전사들에게 해롭다는 것을 그들에게 알려주어야겠네.

Ade. 그야말로 우리들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Soc. 우리는 우선 시에서 거리끼는 구절을 말살해 버려야 하네. 가령, "썩어버릴 시체들의 왕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땅도 갖지 못한 자의 가난한 노예가 되고저!" (오딧세이 11권) "영혼은 땅 밑으로 연기처럼 사라지네. 날카로운 절규를 남기면서."(일리아드 23권) ... 이러한 시구나 이와 비슷한 시구들을 삭제할 경우 호머나 다른 시인들에게 우리는 다음과 같이 당부해야 할걸세. 즉, 그것을 삭제하는 것은 그것이 시적인 표현이 아니거나 대중에게 흥미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시적인 흥미가 클수록 죽음보다는 예속을 두려워하는 자유민이나 소년들의 귀에 들어가서는 안되기 때문이라고.

Ade. 사실입니다.

Soc. 그리고 우리는 지옥을 묘사한 무섭고 놀라운 이름들로 삭제해야 하네... 그렇다고 이런 무서운 이야기들이 전혀 무익한 것은 아니네. 다만 우리들의 수호자의 신경이 이런 이야기로 흥분하여 여자처럼 되어 버릴 염려가 있기 때문이네.
...
Soc. 한편 우리 수호자들은 웃음에 져서도 안되네. 도가 지나친 웃음의 이면에는 언제나 무서운 반작용을 일으키게 마련이니까...고귀한 인간이, 혹은 죽어야 할 인간도 웃음에 압도된다면 말이 안되네. 하물며 신들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지. (Politeia 386 - 389)

그리하여, 플라톤은 어린이나 젊은이들의 교육문제에 대해 논하면서 이상국가에 있어서의 검열관이 필요하다는 것과 그것이 규제해야할 것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Soc. 무슨 일이든지 시작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겠지? 이것은 특히 어린이나 젊은이들에 대해서 그렇단 말이야. 이 시기에 인격이 형성되기 때문이네. 그때 받은 인상은 한결 선명하게 남는 시기이기도 하고. 그런데도 우리가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꾸며낸 이야기를 어린이들에게 마구 들려 줄 수 있겠나? 그리고 어린이들이 한창 자라는 시기에 본의 아니게 터무니없는 사상을 그들의 마음 속에 심어 넣어도 좋은가?

Ade. 그야 안되지요.

Soc. 그러므로 우리는 어린이들에게 들려주는 작품의 검열관부터 먼저 두어야 하지 않겠나? 그리하여 검열관으로 하여금 좋은 이야기는 장려하고 나쁜 이야기는 금지하게 한단 말이야. 이렇게 함으로써 결국 좋은 이야기만 들려주어 어린이들의 인격이 형성되도록 하자는 걸세. 이것이 어린이들의 육신을 기르는 것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네. 그런데 오늘날 어린이들에게 들려주고 있는 이야기들의 대부분은 금해야 할 성질의 것이 많네.
...
Ade. 그러면 당신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어떤 이야기의 어떤 점에 대해 비난하시는 겁니까?
...
Soc. 신이나 영웅들의 성격에 관하여 표현된 내용이 다 그렇네. 그것은 마치 어떤 초상과 똑같은 것을 그리길 바라면서 전혀 닮지 않은 것을 그리는 화가와 마찬가지이네...우선 이런 것을 들 수 있네. 이것은 가장 고약한 허위에 속하네. 우라노스가 한 소행이나 그에대한 크로노스의 복수 등에 대해 헤시오도스가 한 말을 가르치고 있네. 우라노스의 소행이나 그 아들들의 수난이 사실이었다 하다라도 그것을 분별없는 젊은이들에게 함부로 이야기해서는 안되네...만일 들려줄 필요가 있다면 적은 인원수의 아이들에게, 대가로서 큰 돼지나 극히 손에 넣기 힘든 공물을 받고나서 몰래 들려주는 것이 좋을 걸세. 그러면 듣기를 바라는 자의 수도 줄어들 테니까.

Soc. 그뿐이겠나. 그런 이야기는 우리 나라에서는 금
해야 하네. 가장 못된 죄악을 저지르고도 당연한 일을 한 것처럼 생각하기 쉬운 그따위 이야기를 젊은이들에게 들려 줘서야 쓰나. 가령 그의 부친이 악한 일을 행하였을 때 이것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징계한 아들이 그는 단지 신들 중에서 최대인 동시에 최초의 신의 예를 모방했을 뿐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걸세.

Soc....그리고 헤라가 그 아들에 의해 결박을 당한 일이라든가 헤파이토스가 매를 맞고있는 모친을 막아 주려다가 그의 부친인 제우스에 의해 하늘로부터 땅으로 던져진 이야기라든가, 또는 호머가 시로 쓴 신들 사이의 싸움 같은 것은 설사 그것이 비유로 된 것이라 하더라도 국가에서는 허용해서는 안되네. 어린이들은 비유적인 것과 실제로 일어난 일을 구별할 줄 모르며 그들이 들은 이야기를 좀처럼 잊어버릴 수 없을뿐더러 시정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네. 그러므로 그들에게 처음으로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들은 그들을 덕으로 이끄는 내용이라야 하네. (Politeia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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