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과 문화

테크노에 대하여

김남시 1999. 11. 14. 13:13
테크노가 뜨고 있다.

텍에가면 들을 수 있었던 기존의 음악들 중 리듬과 비트만을 컴퓨터를 통해 특화시켜 만들어낸 음악. 나이트에서 빠르고 강한 비트가 등장하기를 기다리거나 좀 더 오래 가는 음악을 기대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테크노는 뜻하지 않은 대박 일 수 있다. 템포가 빨라지기를 기다릴 필요도 언제 곡이 끝나버릴까 두려워할 필요도 없이 그저 처음부터 그에 맞추어 몸을 흔들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곧, 테크노는 듣거나 음미하는 음악이 아니라 그에 맞춰 춤을 추기 위한 멜로디를 제거한 댄스 음악이다.

리듬과 비트만으로 이루어진 테코노는 그러나, 우리 의지보다 우리의 육체에 좀 더 직접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다른 댄스음악들과는 그 질을 달리한다. 그것은 테코노가 가진 특성 때문이다.

첫째, 테크노에는 멜로디가 없다. : 리듬과 비트가 주는 육체적 자극 외에 테크노는 그에 대해 음미하거나 즐길 멜로디가 없다. 추억을 떠올리게 하거나 그 음악의 분위기와 더불어 인지적 반응을 이끌어내는 '가사'도 존재하지 않는다. 멜로디 혹은 선율은 각가 음들의 변화를 통해 만들어지며, 그것이 우리에게 특정한 감정적 반응을 일으키는 것은 한 음에서 다음 음으로의 변화에서 느껴지는 '긴장과 해소'의 변증법 때문이다. 우리가 특정한 음이나 화성을 들었을 때 우리는 그 다음에 이어지는 어떤 음이나 화성에로의 경향적 지향을 갖게되며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음의 진행에 대한 '기대감'을 형성케 한다. 화성학에선 이것이 5도 음정의 단위로 진행한다고 말하며, 그를통해 5도 진행은 화성학에서 가장 기본적인 진행이 된다. 이로부터 Tonic ↔ Dominant의 곡의 기본적 구성이 도출되는 것이다. (예를들면, C 장조의 곡의 경우 C코드와 G코드의 관계가 그것인데, C 코드로 시작한 곡은 C 코드로 끝나야 곡이 끝났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물론, 그것이 오랜 동안의 습관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본원적인 지향성인지는 알 수 없다. 쉔베르크 같은 작곡가는 이것이 서양 음악의 습관화된 이데올로기의 일종이라고 보고 이 화성적 법칙을 벗어나는 '비화성적 진행'으로만 음악을 만들어내려 하였다. 그를통해 12음계에 의한 작곡법을 창안해 내어 현대음악의 선구자가 된다.) 이러한 내적 지향성에 따라 우리는 한 음이나 화성을 듣게되는 순간 그 다음에 이어질 화성이나 음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되며, 그것이 실지로 진행된 다음 음에 의해 충족되거나 혹은 기대를 벗어나는 새로운 음을 통해 긴장감을 고조시키거나 하는 것이다. 선율이나 멜로디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이러한 '기대감↔해소↔새로운 긴장감' 사이의 내적 움직임을 통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비트나 리듬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좀 더 육체적이다. 리듬과 비트는 우리에게 그에 대한 기대감이나 긴장감을 갖게 하기보다는 직접적으로 우리의 육체에 작용하여 우리 몸을 움직이게 한다. 반복되는 심장 박동에서 본원적으로 느껴지는 운동감에 익숙해 있는 인간에게 리듬과 비트는 자연스럽게 육체적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아프리카 음악이나 사물놀이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반복되는 리듬과 비트는 인간을 단순한 박자 맞추기에서 몽환적 도취 상태에까지 몰고갈 수 있다. 고속버스 등에서 틀어주는 뽕짝 메들리 역시 이와 유사한 효과를 갖는다. 거기엔 물론 가사와 멜로디도 존재하긴 하지만 배후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2박자의 리듬과 비트 속에서 비슷비슷하게 이어지는 가사와 멜로디는 거의 의미를 상실한다. (4-5시간 동안 뽕짝 메들리를 연속해서 들어야 했던 사람이라면 버스에서 내리고 난 후에도 계속 귀 속에서 울려대는 '뽕 짝 뽕 짝 뽕 짜짝 뽕짝' 리듬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참고로 필자는 그후부터 뽕짝 메들리만 들으면 '멀미'가 나게 되었다.)

젓가락이나 손뼉 등을 두드리기에 적합한 2박자의 뽕짝 리듬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컴퓨터로 미세하게 분절시킨 테코노의 빠른 리듬과 비트는 이러한 우리 신체의 반응을 극대화시킨다. 더구나 테크노는 3-4분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리듬과 비트, 눈을 어지럽게 하는 싸이키 조명과 밀폐된 공간, 몸이 흔들릴 정도로 꽝꽝 울려대는 스피커 사운드 등은 우리를 몽환적 도취상태로 빠져들어 몸을 흔들게 하기에 충분한 조건을 제공한다.

그런데, 사실상 이것은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춤'이 추는 것이다. 조명 기구와 스피커가 갖추어진 밀폐된 실험실 속에서 계속되는 불빛과 소리 자극에 반응하는 실험용 쥐가 된 느낌이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