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베를린

이념과 체제를 뛰어넘는 역사의식?

김남시 2003. 7. 3. 16:19
베를린 국립 도서관 연감 및 서지 코너에 가면 1885년 11월 6일 Minister der geistlichen, Unterrichts und Medicinal – Angelegenheit의 명령으로 시작되어 그 1권이 1887년 1월 24일 베를린에서 발간된 Jahres Verzeichnins der der Deutschen Universitätsschriften이 보관되어 있다. 번역하자면 "독일 대학 학위논문 연감"이다.

이 독일 대학 학위논문 서지는 1887년 이후 매년 마다 출간되어 지금까지 100년 이상 계속 발행되고 있다. 1887년 부터 지금까지 독일이 겪었던 수많은 역사적 격동을 생각하면 이게 이렇게 계속 발행되고 있다는 사실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1887년부터 지금까지 독일의 정치체제는 최소한 5차례 이상 바뀌었다. 1871년 건설된 입헌 독일제국에서 시작된 위 작업은 그 후 1918년 독일혁명을 통해 독일 공화국으로 바뀌고, 이후엔 히틀러에 의한 나찌 독일시대에도 계속된다. 전쟁 패망 후 사회주의 동독이 이어받은 그 작업을 독일이 통일된 후 독일연방공화국이 계속 하고있는 것이다.

입헌군주제와 공화제, 나찌 파시즘 체제와 사회주의, 그리고 현재의 사회민주주의라는 서로 다른 정치체제를 겪으면서도 독일은 매년 전 독일 대학의 학위논문들의 목록을 작성하고 통계를 내고 출판하는 작업을 한 해도 빼먹지 않은 거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1887년 왕립도서관이었던 베를린 국립도서관이 이후 사회주의 동독의 국립 도서관으로 바뀌어 결국 이 서지 작업을 동독이 떠맡게되었는데, 동독 시절에 발행된 연감들에는 동독 내의 대학 뿐 아니라, 적대국이었던 서독 내의 대학들에서 나온 학위논문들의 목록도 빠짐없이 수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서로 다른 정치체제와 이념의 대립에도 불구하고 세대에 걸친 작업인 '독일의 학위논문 연감'을 꾸준히 발행하게 했을까. 수많은 정치체제와 대립적 정치이념을 넘어서 있는 어떤 역사적 연속성을 이들은 추구하고 있었던 것일까?

혁명 이후의 독일 공화국은 정치적, 이념적으로는 독일 제국과의 결별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였고, 나찌 독일 역시 그랬다. 동 베를린 지역에 들어선 사회주의 동독은 역시 정치적, 이념적으로 나찌 독일과의 역사적 연속성을 거부하고 극복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그리고, 사회주의 동독의 붕괴 후 현재의 독일 역시 사회주의 시절 독일의 정체성을 거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서로다른 정치체제들 하에서 이들은 모두 독일 제국 정치가의 제안에 의해 시작된 '학위논문연감'을 100년이 넘도록 계속 발행해오고 있었던 거다!

한국에서 발행하는 '한국대학 학위논문 연감'에 북한의 김일성 대학에서 나온 학위논문 목록을 실을 수 있을까? 혹은 북한에서 한국 대학에서 나온 학위논문 역시 '공동의 학문적 성취'라며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까? 우리가 혹은 북한이 상대방 체제와 이념을 인정하지 않는 한 이는 불가능 할 것이다. 북한 대학에서 나온 연구논문들을 우리는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독일인들은 무슨 생각으로, 다섯 차례의 서로 다른 정치체제와 이념을 넘어서 저 무식한 작업들을 백년 넘게 계속해 오고 있던 것일까? 그저 이념과 정치체제를 초월해 있는 역사에 대한 의무감? 게르만족의 독일의 학문적 성취를 보존하고 전달하려는 초월적 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