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베를린

서로 다른 세계, 서로 다른 소리 : 독일 고양이들은 어떤 소리를 내는가.

김남시 2003. 3. 6. 08:46
낯선 소리에 잠을 깼다. 창밖엔 벌써 날이 새고 있었다. 어디선가 '미야우, 미야우' 하는 나지막하고 갸날픈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문밖에서 나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문 손잡이를 돌리곤 '클락', 천천히 문을 열었다. 추위에 얼어붙은 문은 열리면서 '퀴이이이츠' 소리를 냈다.

소리가 난 쪽을 내다 보았다. '훕스!', 황토빛 털을 가진 커다란 고양이 한 마리가 문밖에 세워놓은 아이의 유모차 위에서 번쩍 튀어 내렸다. 놀란 나에게 잠시 '라르르' 하고 짖어대더니 복도 저쪽을 향해 가쁜히 달려가 버렸다. 녀석은 매서운 바람을 피해 아이의 유모차 속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황토빛 털 가락들이 파란 유모차 여기저기에 달라붙어 있었다.

'리리리링'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었으나 '부' 하는 신호음만 들린다. 다시 잠을 자려고 방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어디선가 '프랏쓰' 하고 창문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연이어 135호 집 여자가 기르고 있는 검정색 세퍼트가 '바우 바우' 하며 짖어댄다. 녀석은 유난히 소리에 민감히 반응한다.135호에 혼자사는 저 여자는 언제나 자기 몸의 반만한 저 세퍼트를 끌고 다닌다.

언젠가 시내 버스에 그 여자와 같이 탄 세퍼트를 본 적이 있었다. 녀석은 유모차나 휠체워를 위해 마련된 공간에 몸을 누이고는 턱을 바닥에 대고 얌전히 누워있었다. 차창 밖으로는 '밥파 밥파' 소리를 내며 오늘 낮에 있을 엔페데 집회를 통제하려는 경찰 헬기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에른스트 로이터 플랏즈를 지나 주로기셔 가르텐으로 좌회전 하던 버스가 '본프' 소리와 함께 흔들렸다. 우측 타이어에 빵구가 난 것이었다. 차를 세운 운전사는 사람들을 내리게 하더니, 우반을 이용하라고 권유하였다. 우반 에른스트 로이터 플랏즈로 내려가는 길 위에선 누군가 뿌려준 빵조각을 주워먹고 있는 한 무리의 비둘기들이 '구루 구루' 소리를 내며 모여 있었다.

집에 돌아와 티브이를 켜니 역시, 독일인들이 즐기는 범죄 수사물을 방영하고 있었다. 범인은 잔인하게도 한 농가에 살고있는 노인의 등 뒤에 '쿠쉬'하고 칼을 꽂아 넣고는 거리 반대편으로 달아나고, 그 뒤를 쫒는 경찰들은 총을 꺼내 '파우 파우' 하며 범인을 향해 쏘아댄다. 다리에 총을 맞았는지 절뚝거리며 도망가던 범인이 가축들이 살고있는 농가 건물 안으로 피해 들어간다.

화들짝 놀라 소리를 질러대는 가축들. 거위들이 '쿠악 쿠악', 닭들이 '키케리키이', 소들이 '무우우', 말들이 '비이이', 양들이 '배애애', 돼지들이 '오잉크 오잉크'. 한바탕 소동을 벌이는 가축들 주위로 벌들이 '주움 주움' 하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카우보이 흉내를 내며 밧줄을 머리 위에서 흔들어 대는 경찰관, 밧줄은 '플랍 플랍 플랍' 소리를 내며 흔들리다 '푸슝'하고 범인에게 날아가 그를 묶어 버린다.

'배에에' 저게 뭐야! 난 테레비젼을 끄고 다시 잠을 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