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적 인간

삶의 시간과 삶의 비극

김남시 2003. 5. 15. 08:03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바로 이 사실로부터 인간의 모든 비극이 출발한다.


낙원이 낙원인 것은 그곳에 모든 것에 대한 가능성이 열려있기 때문이다. 시간의 결핍으로 인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 낙원 바깥의 세계에서와는 달리 낙원에선 모든 가능성들이 말 그대로 추구되고 실현될 수 있어야 한다.

세계 속의 모든 가능성들을 추구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이 세계가 낙원이 아닌 것은 그 가능성들을 추구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그 가능성들을 추구할 삶의 시간이 인간에게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낙원과 비낙원은 그것의 가능성의 조건 상에선 동일하다. 다만 낙원에선 그 가능성들을 추구할 시간이 결핍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죽음이라는 인간의 숙명을 떠안기 이전 에덴 동산의 아담과 이브는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해 볼 만한 충분한 삶의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신으로부터 받은 생명을 통해 창조주가 자신들을 위해 마련해준 세계의 모든 것들을 향수하는 행복한 낙원에서의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이 낙원 속에서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이 세계가 제공해 주는 모든 가능성들을 다 시도해 볼만한 충분한 삶의 시간을 가지고 있었고, 그를통해 그들의 삶의 시간은 세계 자체의 시간과 불화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에게 주어진 저 충분한 삶의 시간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겐 단 한가지 '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에덴동산 한 가운데 심겨진 선악과를 따 먹는 일이었다. 세상이 제공하는 다른 모든 것들을 다 할 수 있을만큼 충분한 삶의 시간을 갖고 있었지만, 바로 그들 눈 앞에 매달려 있는 이 세계 속의 단 하나의 가능성만은 신의 엄격한 명령을 통해 금지되어 있었다.

낙원 바깥에서의 인간의 삶이 '결핍된 시간'에 의해 제한되어 있다면, 이제 에덴동산에선 선악과를 따먹어서는 안된다는 신의 금지를 통해 경험의 가능성이 제한되어 있었다.

신은 그들이 이 열매를 따먹는다면, '죽게될 것'이라고 강조해서 말했다. 그들이 '죽게될 것'이라는 것은 그들이 살고있는 세계가 더 이상,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들을 다 해 볼 수 있을 낙원이 아니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의 삶의 시간이 죽음을 통해 제한된다면 그들은 세계가 제공하는 모든 가능성들을 다 해볼 만큼의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신의 금지를 통해 이제 저 최초의 인간 아담과 이브는 하나의 선택의 상황에 처한다. 세계의 다른 모든 것들은 향유하면서 유독 한가지 '선악과'만은 따먹지 말아야 하는 '제한된 낙원' 속에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저 단 한가지 금지된 세계의 가능성, 선악과를 따먹고 죽음을 통해 제한된 삶의 시간을 떠 안을 것인가.

제한된 삶의 시간이 결국 세계의 모든 가능성에 대한 향유를 불가능하게 한다면, 어쩌면 그것은 선악과라는 유혹적인 경험이 신의 명령을 통해 금지되어 있는 '제한된 낙원'에서의 삶과 그다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고 저 최초의 인간들은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금지를 통해 제한된 에덴동산에서의 삶 대신에, 제한된 삶의 시간을 가진 이 세계에서의 삶, 곧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간 세상에서의 삶을 택했다.

저 최초의 선택을 통해 그들은, 신이 경고한 대로, 죽음이라는 삶의 시간의 종말을 숙명으로 맞이해야 하는 인간이 되었다. 이 최초의 선택을 통해 인간은 이제 세계의 모든 가능성들을 다 향유할 수 없는 '제한된 삶의 시간을 지닌'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해볼 수 있을만큼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하는 우리는 세계가 제공하는 수많은 삶의 가능성들 중 몇개만을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은 동시에 선택되지 못한 다른 가능성들에 대해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한된 내 삶의 시간으로 인해 난 이 세계의 모든 책들을 읽을 수도, 이 세계의 모든 음악들을 들을 수도, 이 세계의 모든 음식들을 맛볼 수도 없다. 난 제한된 나의 삶의 시간이 허락하는 만큼만 제한된 경험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제한된 나의 삶의 시간으로 인해 난 내가 사라지고 난 후의 이 세계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알지 못한다. 나의 삶의 시간이 제한되어 있음으로 해서 난 내가 잘못 선택한 내 삶의 도정을, 글을쓰듯 지우고 다시 시작할 수 없다. 내게 주어져 있는 삶의 시간이 충분하지 않음으로 해서 난 내가 하고자 했으나 그 시간안에 이루지 못했던 내 삶의 바램들을 그저 안타깝게 가슴에 묻어버릴수 밖에 없다. 모든 인간의 삶의 시간이 제한되어 있음으로 해서 난 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의 시간이 다하는 것을 가슴 아프게 지켜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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