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적 인간

중국 유학생과의 대화

김남시 2000. 10. 30. 00:03

이곳 대학에는 중국 본토에서 온 학생들이 참 많다. 16명의 다양한 국적 출신의 학생들로 이루어진, 현재 내가 다니는 어학반에서 4명이 중국 학생이니, 중국은 여기에서도 세계 인구의 1/4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듣기로, 이웃 도시인 에센 대학엔 중국 학생들만을 위한 어학반이 따로 개설될 정도라고 하니까, 독일에 유학온 중국 학생들의 규모를 짐작할 만 하다.

난 중국 학생들에 대한 일종의 경외심 어린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일찌기 독자적인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최초로 동양에서의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했던 중국, 저 넓은 대륙 만큼이나 광할하고 풍부했던, 우리 나라와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적 정신 문화의 뿌리를 제공 했었던, 저 풍부하고 유구한 문화적, 사상적 전통, 그리고 문화 대혁명...

난 이런 대륙 국가의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 나아가 중국의 미래에 대해 어떤 전망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하였다. 일찌기 전통과 혁명, 전통의 계승과 사회주의적 가치의 갈등과 충돌을 경험했었던, 그를 통해 동양적 정체성과 서구적 인간주의 - 난 사회주의를 넓은 의미의 휴머니즘으로 이해한다. - 를 특유의 방식으로 조화시키려 했던 그들의 역사로부터,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한 실마리를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사회주의 국가라는 언급만으로도 꺼림직한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내 속에 뿌리 박은 반공주의 교육의 효과와 중국 학생들의 빈약한 독일어 수준 - 몇 몇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이들은 정말 독일말을 잘 못한다. - 은 이들과의 대화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나를 가로막는 어려움이었다.

드디어 어제,이곳에 와서 알게된 중국 학생 한명과 학교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을 기회가 생겼다. 상하이 출신의 텐 니엥은 진지하고도 속이 깊어 보이는, 잘 생긴 청년이다. 밥 - 실은 밥은 아니지만, 편의상 - 을 먹으면서, 장이모 감독이 만든 영화 이야기를 미끼로 조심스럽게 내가 물어보고 싶은 질문에 접근해 갔다.

넌, 현재 사회주의 국가인 너희 나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물론, 내 실제 질문의 의도는 이보다 더 미묘하였으나, 나의 짧은 독일어 실력으로 그런 대화를 나누기엔 무리가 있었다. 이후, 대화의 유치함 역시 거기에 기인한다.) 중국은 제대로 된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냐? 말하자면, 중국은 제대로 된 사회주의를 할 만큼 자본주의가 발달하지 못한 상황에서 사회주의를 도입했다는 말이다. 그럼, 사회주의를 하려면 먼저, 자본주의를 해야된다는 말이냐. 그렇다. 칼 막스 (드디어, 그의 입에서 이 이름이 등장했다.) 자신도 그렇게 말했다. 사회주의는 충분히 발달된 생산력 위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혁명 이전 중국은 봉건주의 국가였으며, 아직 제대로 된 자본주의도 겪어보지 못한 나라다. 중국은 먼저 자본주의를 충분히 해야한다. 2차 대전 후의 독일, 일본 등과 비교해 중국이 가난한 것은 자본주의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그런거다. 그럼 넌 자본주의가 발달된 나라에서 언젠가는 사회주의가 생겨날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그렇다. 그러나, 그 사회주의는 현재 중국식의 사회주의와도 소련의 사회주의와도 다른 것일 것이다.

그제서야 난 왜 독일에 오는 대다수의 중국 유학생들이 경영학, 인포마틱 등, 돈버는 것과 관계되어 있는 공부들을 하려고 하는지, 왜 그들이 자본주의 국가들에 대해 '대결 의식 혹은 적대감'을 가지지 않는지 알 수 있을것 같았다. 이들은 중국의 사회주의가 제대로 발달하기 위해서라도 자본주의가 적극 도입되어야 한다는 전형적인 신 사회주의적 사고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내가 한국에서는 사회주의 사상이나 사회주의 운동은 금지되어 있으며, 정부에 의해 억압받는다고 말하자 그는 '어떻게 자본주의 국가에서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지?'하고 물어 날 황당하게 했다.

그렇다. 우리가 이념으로서의 사회주의와 사회주의 국가에 대해 하나의 '이상화된 상' - 사회주의에선 모든 사람이,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동하며, 돈 있는 사람이나 돈 없는 사람이나 모두 평등하게 살 수 있으며, 자신의 능력에 따라 일하고 욕구에 따라 소비할 수 있다 등등. - 을 가지고 있듯이, 오늘날 사회주의 국가의 젊은이들 역시, 자본주의에 대한 '이상화된 환상' - 자본주의 국가에선 모든 시민들의 무제한적 자유가 보장되며, 민주주의적 방식에 따라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주장과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 등등. - 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 학생들이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된 나라, 미국에 대한 동경을 감추지 않는 - 독일에 있는 중국학생들은 사실은 미국엘 가고 싶었으나 비싼 학비와 생활비, 토플 시험을 봐야한다는 부담감등 때문에 독일에 와있는 경우가 많으며, 언젠가는 반드시 미국엘 가고 싶어했다. - 것도 어쩌면 이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이들이나 우리나, 자신의 사회를 정말 살 만한 곳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바람과 희망을 가지고 있다면, 이제 그건 어쩌면 일상의 작은 느낌으로부터 재출발하여야 할지도 모른다. 그는 말했다.

그래도 자본주의 나라에 존재하는 이기적 인간이 우리나라를 뒤덥게 하고 싶지는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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