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적 인간

글쓰기

김남시 2002. 10. 29. 19:18
'허무한'이라고 내가 썼을때,바로 그 단어 뒤에 등장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다른 단어들의 조합은 내 머리 속에 독특한 느낌, 기억, 감정 혹은 착상 및 연상 등의 형태로 꾸물꾸물 피어나기 시작한다. 하나의 단어는 그것과 조합, 연결될 수 있는 수많은 다른 단어들과의 의미론적 관계 속에 서 있으며, 그를통해 쓰여진 단어는 연이어 다른 단어, 나아가 문장이나 텍스트를 불러내는 방아쇠 역할을 할 수 도 있다.

하나의 단어는 다른 가능한 모든 단어들과 어떻게 관계맺고 있을까?

하나의 단어와 연결될수 있는 다른 수많은 단어들과의 조합가능성은 일단 두가지 배경으로부터 연유한다. 문법적 가능성과 생활세계적 배경이 그것이다.

'허무한'이란 형용사는 뒤에 문법적으로 '명사'가 올것을 요구한다. '허무한' 대신 '허무하게'라고 내가 썼다면 그 뒤에 이어지는 단어는 동사나 부사, 형용사 등으로 국한될 것이며, 그것은 '허무한'으로 시작되는 문장과는 다른 느낌과 울림, 내용을 갖는 문장으로 이어질 것이다.

일단 이러한 문법적 가능성이 전제되고 난 후엔 우리의 언어를 통해 습득되고, 언어의 형태로 저장된 생활세계적 배경이 단어들의 연결가능성을 규정한다.

'허무한'이란 단어 다음에 난 '사랑'이라고 쓸수도, '인생'이라고 쓸수도, 아니면 '공부'라고 쓸수도 있다. 만일 내가 '허무한' 이란 단어를 '붉은 자동차', '새끼 고양이', '비빔밥' 등의 단어와 연결시켰다면, 이로부터 나는 어떤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흥미를 유발하는 글쓰기의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허무한 인생'의 조합이 무언가 진부하고 낡은 느낌을 주는데 반해, '허무한 + 비빔밥'의 조합이 무언가 새롭고 흥미롭게 들리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한 단어와 다른 단어의 조합의 잠재적 가능성, 다시말해 한 단어와 다른 단어가 결합될 수 있는 가능성의 장 (혹은 지평)이 우리가 그 속에서 살고있는 '생활세계의 맥락'에 의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곧, 우리가 사는 생활세계의 맥락에서는 '허무한'이란 단어와 '비빔밥'을 연결시키는 것에, 곧, 이 연결에 함축되어 의미연관에 익숙해 있지 않으며, 그를통해 '허무한 비빔밥'이란 단어조합은 무언가 흥미로운,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따라서, 특징적이고 창조적인 글쓰기는 단지 많은 어휘력과 문장력의 도야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활 세계적 맥락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필요로 한다. 생활 세계 내의 다양한 의미 연관들이 지닌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정치적 어감들에 민감함은 동시에 그 익숙한 의미 연관들로부터 자신을 떼어놓을 수 있는 비판적 반성능력과 결부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상식적이고 모두에게 수긍이 가는 글은 쓸수 있을지 몰라도, 독창적이며 창조적인 글을 쓰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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