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세계Lebenswelt의 자명함에 속하는 것 중 하나는 무엇보다도 내 육체의 자명성일 것이다. 나의 육체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육체와 그 구조나 기능에서 '동일'하다는 믿음은 이 삶의 세계 속에서 의식되지 않은채 자명한 것으로 전제되는 '의식 뒤편의' 믿음 중 하나다. 그와 내가 동일하게 작용하고 반응하는 육체를 갖고 있다는 믿음으로부터 난 내 몸이 아플 때 의사를 찾아갈 수 있다.
내 몸이 아닌, 타인들의 몸을 통해 지식을 습득한 의사가 내 몸을 올바르게 진단하고 치료할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곧, 내 몸과 타인들의 몸 사이의 동일성이라는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에서 난 가끔씩 저 자명해야할 삶의 세계의 지식에 대해 가끔씩 회의를 갖는다. 어쩌면 독일인들의 몸은 나의 몸과는 어딘가에서 서로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그들은 어쩌면 내가 갖지못한 어떤 신체기관의 하나를 더 가지고 있을수도 있으며, 그들에게 있는 동일한 신체기관이라 할지라도 나의 그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기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몸 속은 어쩌면 나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생겼을지도 모르며, 만일 어떤 독일 의사가 나의 몸을 열어본다면 그는 경악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들의 뇌는 나의 그것과는 다른 구조와 기능을 지니고 있어, 그로부터 그들은 나와는 다른 생각과 사고를 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의 자명성에 대한 이러한 회의는 종종 접하게 되는 경험으로부터 근거지워짐으로써 더 강고해진다. 함께 맥주를 마시면서도 내가 화장실을 다섯번 가는 동안 한번도 화장실에 가지 않는 독일인들, 손에 허연 가루가 묻어날정도로 석회로 가득찬 수도물을 그냥 마시면서도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는 독일인들, 아침, 점심, 저녁을 모두 차가운 빵에 치즈와 햄만을 끼워 먹으면서도 저처럼 엄청난 에너지와 힘을 발휘하고 있는 독일인들을 보면, 저들의 육체와 나의 육체가 동일할 것이라는 믿음이 오히려 근거없어 보인다.
만일 내가 찾아간 독일 의사가 나의 육체가 독일인들의 그것과 동일하다는 전제하에 - 그는 그로부터 출발할수 밖에 없다. 그것이 의사로서의 그의 삶의 자명한 믿음 중의 하나다. 그 믿음이 없다면 그는 그 아무도 치료할수 없을 것이다. - 나의 몸을 진단하고, 약을 처방하고, 치료를 하며, 나아가 수술을 한다면, 그리하여 독일인들과 내 육체의 구조적, 기능적 차이를 무시한 채 벌인 이 조치를 통해 내 육체가 망가지게 된다면 어찌할 것인가.
삶의 세계의 자명함에 속하는 믿음들이 살아갈수록 점점 사라져간다고 느껴지는 것, 이것이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세계에 살고있는 우리들의 비극일 것이다. 우리에게 세계는 그를통해 점점 불안하고, 불확실하며, 함부로 손댈 수 없는 낯선 것으로 변해갈 것이다.
내 몸이 아닌, 타인들의 몸을 통해 지식을 습득한 의사가 내 몸을 올바르게 진단하고 치료할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곧, 내 몸과 타인들의 몸 사이의 동일성이라는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에서 난 가끔씩 저 자명해야할 삶의 세계의 지식에 대해 가끔씩 회의를 갖는다. 어쩌면 독일인들의 몸은 나의 몸과는 어딘가에서 서로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그들은 어쩌면 내가 갖지못한 어떤 신체기관의 하나를 더 가지고 있을수도 있으며, 그들에게 있는 동일한 신체기관이라 할지라도 나의 그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기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몸 속은 어쩌면 나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생겼을지도 모르며, 만일 어떤 독일 의사가 나의 몸을 열어본다면 그는 경악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들의 뇌는 나의 그것과는 다른 구조와 기능을 지니고 있어, 그로부터 그들은 나와는 다른 생각과 사고를 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의 자명성에 대한 이러한 회의는 종종 접하게 되는 경험으로부터 근거지워짐으로써 더 강고해진다. 함께 맥주를 마시면서도 내가 화장실을 다섯번 가는 동안 한번도 화장실에 가지 않는 독일인들, 손에 허연 가루가 묻어날정도로 석회로 가득찬 수도물을 그냥 마시면서도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는 독일인들, 아침, 점심, 저녁을 모두 차가운 빵에 치즈와 햄만을 끼워 먹으면서도 저처럼 엄청난 에너지와 힘을 발휘하고 있는 독일인들을 보면, 저들의 육체와 나의 육체가 동일할 것이라는 믿음이 오히려 근거없어 보인다.
만일 내가 찾아간 독일 의사가 나의 육체가 독일인들의 그것과 동일하다는 전제하에 - 그는 그로부터 출발할수 밖에 없다. 그것이 의사로서의 그의 삶의 자명한 믿음 중의 하나다. 그 믿음이 없다면 그는 그 아무도 치료할수 없을 것이다. - 나의 몸을 진단하고, 약을 처방하고, 치료를 하며, 나아가 수술을 한다면, 그리하여 독일인들과 내 육체의 구조적, 기능적 차이를 무시한 채 벌인 이 조치를 통해 내 육체가 망가지게 된다면 어찌할 것인가.
삶의 세계의 자명함에 속하는 믿음들이 살아갈수록 점점 사라져간다고 느껴지는 것, 이것이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세계에 살고있는 우리들의 비극일 것이다. 우리에게 세계는 그를통해 점점 불안하고, 불확실하며, 함부로 손댈 수 없는 낯선 것으로 변해갈 것이다.
'미학적 인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개골 (0) | 2004.02.24 |
---|---|
삶의 시간과 삶의 비극 (0) | 2003.05.15 |
글쓰기 (0) | 2002.10.29 |
중국 유학생과의 대화 (0) | 2000.10.30 |
Hi, Everybody! (0) | 2000.10.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