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적 인간

쓰레기를 버리며

김남시 2004. 2. 24. 06:24
난 무엇인가 필요없는것, 혹은 내용이 남아있지않은 것들을 갖다버리기를 좋아한다. 1주일에 한번씩 혹은 두번씩 집안에 쌓아두었던 빈병이나 용기들을 갖다버리면서, 난 삶이란 이렇게 꽉차있던 무엇인가를 얼른 소비하고, 껍데기를 갖다버리면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 아직 남아있는것, 서서히 냄새를 나며 썩어가고 있을지도 모를 것들이 냉장고 안에, 집안에 남아있다는 사실은 나로 하여금, 내 삶의 정체와 부패, 썩어감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정기적으로 내 컴퓨터는 더이상 쓰지않는, 쓸모없는 파일들을 삭제시켜야 하며, 마져 삭제되지 않고 남아있는 찌꺼기 파일들을 찾아 지워낼 경우 난 어떤 야릇한 쾌감마져 느낀다. 삶이란 이렇게 이렇게 점점 비워가면서 사는거야. 그래, 내 삶은, 내 컴퓨터가 그렇듯 이렇게 서서히 비워져 가벼워 질거야. 어느순간 난 날개처럼 가벼워져 이 세상을 훨훨 날아다녀도 될만큼 자유로와 질거야. 저 행복한 버림, 비움, 가벼워짐의 꿈...

그러나,어느순간 난 깨달아야 했다. 1주일에 한두번 계속해서 갖다버려야 하는 그 빈껍데기들을 난 또 꾸준히 꾸역 꾸역 1주일에 두세번씩 사다 쌓아두고 있다는 사실을. 난 인터넷을 이러저리 헤매다 또 꾸역꾸역 새로운 파일들로 내 하드를 채워놓고 있다는 사실을. 내 삶은 결국 내가 쌓아놓은 것들을 먹고, 소비하고, 즐기다 그 껍데기들을 집밖으로, 컴퓨터 휴지통으로, 나의 항문 밖으로 내다 버리는 저 끝없는 반복에 불과할 것이라는 사실을.

내가 어제 사다 쌓아놓았던 물을 다 마시고 갖다버리면서 난 해탈을 꿈꾸었었다. 내가 1주일 전에 깔아놓은 파일을 지우면서 난 가벼워짐을, 그리하여 훨훨 날아갈 자유를 꿈꾸었다. 난, 버리는 것 만큼 쌓아놓는 삶의 찌꺼기들을 어쩔수 없이, 언제나 내 집에, 내 몸과 마음 속에, 내 컴퓨터 속에 쌓아놓은 채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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