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문자, 미디어

말과 삶의 방식

김남시 2000. 11. 30. 22:24
인간이 사용하는 말이란 그들의 삶과 생활방식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므로, 그에 나자신을 동화시키지 못할때 나의 외국어는 태생적 한계에 부닥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인이 이 곳에 와서 가장 먼저 분명하게, 자신의 익숙해 있던 사고 습관과 말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깨닫게 되는 예가 부정 의문문에 대답할 경우이다.

'너 배 안고프니? (Hast du keinen Hunger?)'라는 부정 의문문에 답해야 할 경우를 생각해보자. (왜, 하필 이런 예가 떠오르는 것일까...)

자신이 배가 고프지 않은 경우엔 '아니, 배 안고파 Nein, Ich habe keinen Hunger.'라고, 반대로 배가 고픈 경우엔 우리말에는 없는 독특한 용례로 '천만에,배 고파 Doch,Ich habe Hunger.'라고 대답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한국말의 경우에서처럼 부정 의문문을 그대로 긍정하는 대답,'응, 배 안고파 (Ja, Ich habe keinen Hunger.)'라는 응답은 성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경우엔 한 문장에 긍정(Ja) 과 부정(keinen)이 동시에 존재하게 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들은 한 문장에 긍정과 부정이 함께 존재할 수도 있는 저 깊은 삶의 배려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누군가 '너, 배 안고프니?'라고 물었을 때, 우린 그 말을 물어봐준 사람에 대한 배려로 일단 그의 말을 '긍정'하고 출발하는 삶의 방식을 지니고 있다. 그리하여, '응, 배 안고파'라는 대답 속에는, '응, 물어봐 줘서(내게 신경써 줘서) 고마워, 그렇지만 지금은 배가 안 고픈걸'이라는 무언의 응답이 함축되어있는 것이다. 반면, '너 배 안고프니?'라는 질문에 '아니, 배 안고파'라고 대답하는 서양인들의 경우엔, 나에 대한 상대의 배려보다는 먼저 자신의 상태를 우선적으로 고려함으로써 결코 그의 간섭이나 간여에 의해 손해보지 않겠다는 개인주의적 삶의 방식이 함축되어 있다. 그래서, 그 말 속엔 '아니, 내가 고프든지, 안 고프든지 네가 신경쓸거 없잖아, 어쨋든 난 배 안고프다'라는 정도의 응답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부정 의문문에 대한 긍정 대답의 경우도 마찬가지. '배 고프지 않니?'라는 물음에 배 고프다고 대답하는 한국어의 용례엔, 상대의 나에 대한 배려를 고맙게 받아들인 후, 사실상 그 질문을 통해 그가 내게 기대하는 바 - 상대는 나도 자기처럼 배가 고프리라고 기대하고 있다. - 를 긍정함으로써 그에게 공감을 표현하는 반면, '배 고프지 않니?'라는 물음에, '천만에(Doch)'라고 대답하는 서양인들에겐, 그 물음 배후에 있는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기 보다는 먼저, 자신의 상태를 부정하는 그의 부정 어법에 대해 손사래치며 부정하고 나서, '난 네 생각과는 달리 배가 고프다'며 자신의 입장을 상대의 물음에 대립시켜 부각시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어법에 익숙해지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먼저 나의 상태를 고려하는 연습을 쌓아야한다. 곧, 상대의 물음이 긍정(배 고프니?) 이건 부정(배 안고프니?)이냐보다는 나의 상태가 부정(아니, 배 안고파)이냐 긍정(응,혹은 천만에, 배고파)이냐에 우선적으로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