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삶

인터넷은 우리의 커뮤니케이션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김남시 2003. 2. 17. 21:11
Internet Kommunikation
인터넷은 우리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육체는 일상적 커뮤니케이션의 출발점이다. 우리의 일상적 커뮤니케이션은 상대의 육체가 발하는 육체적 정체성에 대한 지각으로부터 출발한다. 그의 육체가 우리에게 어쩔 수 없이 드러내는 그의 생물학적 정체성, 곧 그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그가 노인인지 어린 아이인지, 그가 한국인인지 외국인인지로부터 우린 그와의 커뮤니케이션의 모드와 양상을 출발시킨다.

나아가 상대의 육체는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속 그 육체성을 누설시키며, 이렇게 누설되는 육체성은 그와 나와의 의사소통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친다. 말할 때의 그의 목소리, 억양과 톤, 사투리, 눈동자의 떨림, 얼굴 표정, 그의 제스쳐와 말할 때의 몸짓과 자세 등은 은밀하게 혹은 노골적으로 나와의 커뮤니케이션에 진입하며 그에 따라 우리의 커뮤니케이션은 위축되기도, 활기를 받아 고양되기도 하며, 어떤 땐 그로인해 중단되기도 한다. 이러한 점에서 커뮤니케이션 당사자들의 육체성은 커뮤니케이션에 늘 함께 참여하고 있다. 우리의 일상적 커뮤니케이션은 단지 비물질적인 이념과 생각들의 교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의 육체와 나의 육체, 그의 육체성과 나의 육체성이 서로 교환되고 해석되고 수용되거나 거부되는 물질적 커뮤니케이션과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다.일상적 커뮤니케이션에 참여하는 이러한 육체성이 우리의 커뮤니케이션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하고 있는지 실감하기 위해선 육체성의 교환이 없는 커뮤니케이션을 상상해보기만 해도 충분하다. 나와 대화를 나누는 상대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목소리의 억양이나 톤 혹은 속도의 변화도 없이, 어떤 제스쳐나 몸짓도 없이 나에게 말을 하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우리는 마치 어떤 유령과도 마주한 것과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힐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실상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늘 이런 '유령'들과 커뮤니케이션 하고있다. 인터넷을 통한 커뮤니케이션, 곧 익명적 상대와의 문자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은 일상적 커뮤니케이션의 탈 육체화로 특징지워질 수 있다. 난 상대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노인인지 어린 아이인지 모른 채 다만 '문자'를 통해 그에게 말을 걸거나 질문을 던지고, 그의 질문에 답하기도 한다. 문자를 통해 나와 대화하고 있는 상대가 지금 어떤 목소리로와 자세로, 어떤 표정으로, 어떤 억양과 톤으로 말하고 있는지 난 알지 못한다. 여기서 교환되는 것은 따라서 전적으로 탈 육체화된 말과 생각 곧, '정보'일 뿐이다.

이러한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의 탈 육체성은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의 몇가지 특징적 모습을 통해 드러난다.

문자의 육체화

1.아이디

모르는 상대와 인터넷 상으로 문자 채팅을 막 시작했다고 생각해보자. 상대방의 육체에 대한 독해의 기회가 상실된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에서 우리는 이제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에서 우리에게 접근 가능한 유일한 상대의 흔적인 '문자'로부터 그의 육체를 읽어내려 한다. 이는 인터넷 상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상대에 대한 일차적 정보 곧, 그의 아이디의 육체성에 대한 탐색으로부터 출발한다. 우선 우리는 문자로 이루어진 그의 아이디가 '남성적'인지 '여성적'인지 확인하려 한다. 몇개의 문자 혹은 숫자가 덧붙여져 이루어져 있는 아이디가 남성 혹은 여성의 성적 정체성 확인의 일차적 기호로 수용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실제로 인터넷 사용 초기엔 많은 사람들은 아직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반영하는 아이디를 만들었으며, 또한 인터넷 상에서 자신의 성별을 의도적으로 변경하려는 사람들 역시 아이디의 성별적 이미지에 의존하기도 하였다.

모든 단어들이 그것의 문법적 성을 갖는 유럽어에선 아이디에 사용된 특정한 단어가 갖는 성별적 특성이 어느 정도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특정 단어의 성이 문법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은 한국어 및 일본어 등에서 단어들의 성별적 특성은 문법적이 아니라 전적으로 문화적으로 규정되며, 따라서, 특정한 단어나 문자가 갖는 성별적 이미지는 새로운 문화적 환경과 맥락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게 마련이다. 이러한 자각과 더불어 사람들은 더이상 자신의 아이디를 자신의 육체적 성별의 기호에 맞추어 만들지 않는다. 초기에 성별적 특성을 드러내던 아이디는 그리하여 이제 완전히 중성화되었다. 따라서, 단지 아이디 만으로 상대방의 성별을 읽어낸다는 것은 이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Shark, 불령선인,호비안, 기사라기,카프리,시간의 꽃, 해처럼, 그린, 버드, 호비안, 아니누, 여유롭게, Salvi, 대나무, 남샛별, 딸기사탕, 에이스, 참나무왕, 부리, 폐곡선, 진주잡이, 너구리, 사야, 그린비, 로디나, 쪼꼬렛, 몽테크리스토, 삶과 나, 앙마 등의 아이디가 갖는 성별적 정체성은 그렇게 쉽게 구별되지 않는다. 이제 아이디는 더 이상 성별적 특성을 드러내는 육체성의 기호로 수용되지 않으며, 따라서 상대방의 아이디만으로 그의 육체성을 읽어내려는 시도는 많은 경우 무의미한 짓이라는 것이 확실해졌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오히려 인터넷에 대한 우리의 태도 변화와 더 깊은 관계를 맺는다. 이제 우리는 인터넷을 자신의 육체성이 은닉됨으로써 확보되는 자유의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보여주는 자기연출의 수단으로 받아들인다. (이에 대해선 아바타, 미니미에 대한 분석에서 다시 다룬다.)

2. 말하는 방식, 표현

채팅 상대의 아이디로 그의 성별을 파악하기가 불가능해진 이후 이제 우리에게 남은 방법은 그가 '말하는 방식'으로부터 그의 육체성을 추척하는 방법이다. 그가 유독 어떤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지, 혹은 어떤 말투와 표현을 즐겨 '입력'하는지, 채팅 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등으로부터 그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나이가 많은지 어린지를 읽어내려 하는 것이다. 이를통해 상대가 많이 사용하는 특정 단어나 표현,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에서 그가 보여주는 행동양식 등이 성별 및 연령을 확인하기 위한 지표로 기능하게 된다. 또한 스스로가 남자인 인터넷 유저가 인터넷 상에서 여자로 행세하기 위해선 그는 자신의 인터넷 행동방식에서 '여성성'을 구현해야 할 것이다. 그는 '여자처럼 보일' 만한 단어를 사용하고, 소위 '여성적' 말투를 의도적으로 사용하며, 채팅룸에서도 그러한 태도를 보이려 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육체성 대신에 사용되는 문자와 표현,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에서의 행동 방식 등이 상대의 육체적 정체성을 암시하는 기호로 읽혀진다. 이는 전통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행위 양식을 규정지어 왔던 문화적 성별 정체성의 스테레오 타입이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내에서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 어떤 점에선 더 강화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러한 현상은 또한 인터넷이 교제와 만남의 매개체로, 나아가 자율적인 사회적 공간으로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더욱 두드러진다. 인터넷 상에서 형성되는 가상적 자아를 좀더 매력적인 것으로 연출하기 위해 우린 자신의 '인터넷 매력지수'를 강화시켜 줄 말과 표현방식, 네트워크 내에서의 행동양식을 보여주어야 한다.

육체성을 표기하는 새로운 기호들

1. 이모티콘 (Emoticon)

이모티콘은 일상적 커뮤니케이션에 참여하고 있던 상대자의 육체성을 보완하기 위해 고안된 '대리 육체성'의 기호다. 일상적 커뮤니케이션에서 비물질적 이념과 생각과 말의 교환과 더불어 교환되던 상대의 표정, 목소리, 억양과 톤, 그의 제스쳐 등의 육체성은 이제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에서 이모티콘을 통해 '기호화되어' 등장한다. 일상적 커뮤니케이션에선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의 내 육체적 반응을 통해 누설되던 육체성을 우린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에선 이모티콘을 통해 의식적으로 '입력'한다. 그를통해 상대의 말에 '기뻐'하거나, '황당해'하거나, '화가 나거나', '웃거나', '놀라거나' 하는 등의 감정반응을 기호화된 감정 표현을 통해 상대에게 전송하는 것이다.

이모티콘을 통한 육체성의 전달이 일상적 커뮤니케이션과 구별되는 가장 결정적 지점은, 일상적 커뮤니케이션에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쩔 수 없이 누설되었던 나의 육체적 징후들을 이제 우리는 의식적으로 커뮤니케이션에 진입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곧, 이모티콘은 커뮤니케이션에서 누설되던 자신의 육체적 징후들에 대한 의식적, 의도적 배치를 가능하케 했다. 그리고, 이것은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발생할 가능한 자신의 육체적 반응에 대한 반성적 거리감을 통해 가능하다. 난 사실상 그와의 대화를 따분하게 느끼면서도 그것이 매우 흥미롭다는 기호화된 감정반응을 날려 보냄으로써 그와의 커뮤니케이션에서의 나의 육체적 반응을 규제할 수 있다. 이모티콘을 통해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은 이러한 점에서 일상적 커뮤니케이션에선 얻기 힘들던 커뮤니케이션 자체에 대한 컨트롤의 가능성을 확장시켰다고 볼 수있다.

일상적 커뮤니케이션에선 통제하기 힘들었던 나의 육체성이 이런 방식으로 규제되고, 통제될 수 있음으로 해서,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은 그러나, 우리에게 하나의 모순적 딜레마를 던져주었다. 난 이제 내 육체성의 무의도적 누설이 커뮤니케이션에 끼칠 악영향을 규제할 수 있게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내게 전달되는 상대방의 진정성에 대해 더 이상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난 상대가 진정 나와의 대화를 재미있어 하는지, 아닌지, 다만 '재미있다'고 하는 기호화된 감정 반응만을 기계적으로 '입력'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2. 가상 육체 : 아바타, 미니미

상대의 육체적 정체성이 확인되지 않는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에 '가상육체'가 도입됨으로써 이제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아바타 혹은 미니미 등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자신의 아이디에 고유한 가상적 피겨(figure)를 만들어 그를 인터넷 상에서 부재하는 자신의 육체를 대신해 커뮤니케이션 상에 내 세운다.

그 가상 육체는 자신의 성별적 정체성을 은폐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아바타나 미니미는 이미 그를 만들때 부터 사용자의 자연적 성별에 따라 그 성별적 정체성이 결정되어 버린다.) 문자화된 아이디 속에 자신의 성별적 정체성을 은폐시키던 사람들은 이제 이 가상 육체를 통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성별적 정체성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나아가 인터넷 상의 가상 육체 아바타와 미니미는 사용자의 취향과 능력에 따라 다양한 '자기연출'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새로운 헤어스타일, 복장, 표정, 장신구 등으로 다양하게 꾸며질 수 있는 가상육체를 통해 사람들은 이제 인터넷 사회 속에서 승인받을 수 있는 사회적 정체성을 확보하려 한다.

이는 사회적 공간으로서의 인터넷의 성장과 자율화와 관계한다. 메일로 소식을 주고받는다든지, 오프라인의 만남을 위한 알림판 정도로, 실재 사회적 활동의 보조 수단으로서만 기능하던 인터넷이 이제는 스스로의 메커니즘과 작동원리, 나아가 자체의 사회적 영역과 위계질서를 갖는 자율적인 사회적 공간으로 성장하였다. 인터넷에서만 활동하는 많은 작가와 예술가, 인터넷을 통해 글을 쓰고 토론을 제기하는 철학자들, 인터넷 속에서 존재하며 인터넷 공간의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대응하는 수많은 커뮤니티와 공동체들은 이전 시대 다양한 현실 사회적 공간들에서 형성되었던 사회적 공공영역이 인터넷 공간 속에서도 형성되고 기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터넷이라는 사회적 공간 속에서 '인정받는 것'이, 인터넷 외부의 직장이나 학교, 학회나 예술계 등에서 인정받는 것과 거의 동등한 가치로까지 받아들여지면서, 이제 사람들은 인터넷이 마련한 사회적 공간 속에서 요구되는 사회적 정체성을 위한 자기 연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곧, 자신의 육체적 정체성을 익명적 문자 뒤로 은폐한 채 은밀히 향유되던 자유의 자리에 인터넷의 사회적 공간 속에서 자신을 인정받으려고 하는 사회적 욕구가 들어섰다는 말이다.

현실의 사회적 공간 속에서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우리는 그 공간 속에서 가치있는 것으로 수용되어 있는 행동양식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자신의 육체적 표면을 장식하는데 필요한 헤어 스타일, 옷, 화장, 장신구 등 초보적 자기연출 도구들도 포함된다. 이들을 초보적이라 말하는 이유는, 특정 사회적 공간 속에서의 사회적 인정은 이러한 표면적 자기연출 뿐 아니라, 그 공간에 걸맞는 실제적인 행동양식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매력적이고 호감을 주는 외모는 특정 사회적 공간 속에서 인정받기 위한 출발점은 될지 모르지만, 그 공간에서 요구되는 사회적 행동 양식을 동반하지 못하면, 오히려 그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될 수 도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헤어스타일과 옷, 장신구 등을 통해 아바타 사용자는 자신의 가상 육체를 보다 매력적이고, 멋지게 꾸미려고 하며 이를통해 인터넷의 사회적 공간 속에서 인정받고자 하는 사회적 욕구를 드러낸다. 남들보다 더 다양하고 화려한 헤어스타일, 의복, 장신구 들을 통해 - 이들은 대부분 인터넷 공간에서의 '남들보다 더 적극적이고 활발한 활동'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려 하며, 이렇게 연출된 자신의 아바타를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인터넷 상에서 긍정적인 사회적 정체성을 획득하려 한다. 이러한 '가상육체'는 나의 실제적 육체가 가지고 있는 생물학적 한계를 - 나는 키가 작고, 못생겼으며, 뚱뚱하다 등 - 자신의 적극적이고 활발한 인터넷에서의 활동을 통해 극복할 수 있게 해주며, 이를통해 현실세계에서는 좀처럼 얻기 힘든 '자기연출을 통한 사회적 인정'의 가능성을 제공해준다. 그러나, 위에서 지적했듯이, 가상육체를 통한 자기연출은 인터넷 사회 속에서의 사회적 인정을 위한 초보적 단계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멋지게 연출된 아바타를 통해 관심을 획득한 자가 그에 의거해 인터넷 사회 속에서 보여줄 구체적 행동이다.

3. 개인 홈페이지

개인 홈페이지는 인터넷이라는 비물질적 공간 속에 '나'라고 하는 비육체적 정체성을 꾸며보려는 자기연출의 장이다. 말하자면 홈페이지는 육체없는 자기 연출의 거점을 이룬다는 것이다. 우린 자신의 홈페이지를 그림과 글, 음악과 동영상 등으로 꾸미면서, 그것이 나의 자기연출을 위한 자신에 대한 하나의 아우라를 만들어내기를 원한다.동호회, 기업, 학회나 학교 등의 오프라인에서의 물질적 기반을 갖는 집단의 홈페이지가 확실한 자신의 위상과 정체성을 갖는데 반해 그것은 온라인 상에서 오프라인에 존재하고 있는 단체나 집단을 홍보하고, 확산시키고, 전파하는 역할을 한다. 개인들의 홈페이지는 오프라인 상에서 그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 한 개인이라는 기반을 갖는다. 그 개인은 그의 직업, 소속, 취미 등에 따라 위에서 언급한 특정한 집단에 소속할 수도 있으며, 그를통해 그는 그 특정한 집단의 홈페이지의 회원으로 활동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개인들은 또한 자신들의 순전히 사적인 홈페이지를 운영할 수도 있다. 그의 개인 홈페이지에서 그가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취미를 향유하며, 어느 집단에 속하는가가 하나의 컨텐츠를 구성할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그의 홈페이지의 모든 성격이 규정되지는 않는다.

그는 그곳에 자신의 일상생활을 묘사하고, 자신과 가족 혹은 지인들의 소식을 올려놓기도 하고, 일상생활에서 일어난 작은 사건들에 대한 개인적 소견을 써놓기도 한다. 그곳에 그는 자신의 꿈과 감정을 토로하고, 짧은 생각들을 적어놓기도 하고, 자신을 비롯한 아는 이들의 사진을 올려놓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개인 홈페이지가 개인의 일기장과 같은 완전히 사적인, 그곳에 다른 이들의 접근이 차단되어 있는 그러한 영역은 아니다. 개인 홈페이지는 원리적으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사람들에게 접근이 열려있는 '하이퍼 공공영역’이기 때문이다. 개인 홈페이지의 사적인 성격과 인터넷이라는 저 광대한 공공영역 사이의 긴장감은 개인 홈페이지들의 불분명한 정체성을 이루는 큰 축이다.

개인의 일기장과 개인 홈페이지의 차이점은 그곳에 글을 쓸 때의 우리의 서로 다른 태도에서부터 확인된다. 인터넷이라는 무한한 공공영역의 성격으로 인해 우린 홈페이지에 글을 쓸때 스스로의 글쓰기에 대한 암묵적이지만 공공적 검열을 행한다. 그 누가 접속해 들여다 볼지 모를 나의 홈페이지에 난 폭로됨으로써 나에게 불리해질 사실들을 솔직히 기록할 수도 없으며, 사회적 규범에 저촉될 급진적 발언을 자유롭게 내 뱉을수도 없다. 또한 인터넷이라는 공공 영역 속에서 나는 현실의 사회적 공간 속에서 규정되어 있는 자신의 정체성을 고려해야만 한다. 난 현실사회 속에서 나를 아는 모든 이들에게 드러나 있는 나의 정체성을 완전히 무시한채 내 홈페이지를 꾸려나갈 수는 없다.

이렇게 본다면, 개인 홈페이지는 내가 속해있는 사회적 공간 속에서 이미 형성되어 있는 사회적 정체성과 내가 새롭게 만들고 싶어하는 인터넷 사회적 공간 속에서의 사회적 정체성 사이의 갈등과 긴장, 투쟁과 타협의 산물이다. 인터넷이 내게 제공하는 수많은 기술적 수단들, 그림, 사진, 동영상, 이모티콘, 아바타 등등을 통해 인터넷 사회 속에서 인정받는 사회적 정체성을 연출하고자 하는 나는 이를, 현실 사회적 공간 속에서 형성되어 있는 나의 정체성과의 긴장감 속에서 수행할 수 밖에 없다. 많은 부분, 내가 어쩔 수 없는 나의 육체성을 기반으로 형성된 현실 공간 속에서의 나의 정체성이, 육체적 조건으로부터 자유로운 사회적 정체성 형성을 가능케 하는 인터넷 공간 속에서도 여전히 나의 발목을 붙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개인 홈페이지 속에서 드러나는 '개인'은, 육체성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그와 그를 붙들고 있는 육체 사이의 힘겨운 싸움의 흔적에 다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