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삶

합리적 사회와 고독한 개인

김남시 2004. 10. 20. 17:07

정당함만으로는 삶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정당하지 못하고, 진실이 아니며, 마음에 들지 않는 진술과 행위들에 대해 그를 지적하고 타당성을 묻고, 그에대한 논증을 요구하는 것은 토론과 논박의 경우에는 적용될지 몰라도,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삶을 어찌했든 지속해야 하는 많은 개인들의 삶의 영역에는 적용될 없다.

아이에게, 아내와 남편에게 혹은 나이든 부모들에게 그들의 행위와 진술의 타당성들을 따져묻고, 합리적으로 논증 가능한 논거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그에따라 서로의 동의에 입각한 합리적이고 투명한 관계를 요구한다는 것은  오히려 삶의 영역을 합리주의적 과신에 식민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합리주의적 의사소통의 이상이 요구하는 합리성이 실용적 목적을 위한 목적 합리성으로 제한되지만은 않는다고 해도, 그리하여 거기엔 너와 내가 서로의 욕구와 주관성을 솔직하고 투명하게 제시하고, 우리 삶의 일반적, 합리적 타당성 기준에 의거해 그를 타당하게 요구하거나 받아들이고, 그를통해 누구도 어떤 강제나 강요나, 심지어 무의식적 억압에 의해 자신의 요구와 생각을 감추거나 억누를 필요가 없는 그런 이상적 삶의 방식이 선현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우선 가족들과 친구들과의 사적 관계들을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어쩌면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개인주의적 교제방식으로 변환시켜야 함을 요구할 것이다.

거기선 다른 가족들에게 불안과 걱정을 안겨줄까봐 자신의 실직을 숨기고 있는 가장과 서로의 관계를 훼손시키지 않기위해 맘에 안드는 상대방의 잘못을 따지지 않고 덮어두는 연인(친구) 자신이 이상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숨기고 있는 아내(하버마스는 이를 내적 억압에 의한 왜곡된 소통의 사례로 들고있다!)  거짓말로 아이를 구슬리려는 부모와 늙고 병든 부모를 위해 자신의 야망을 저버리는 자식들은 합리적 소통을 훼손시키는 사례로 열거될 것이다. 개인의 지향과 요구를 억압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