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삶

말하지 못하는 존재

김남시 2005. 10. 7. 07:39

말하는 존재/  말하지 못하는 존재

 

 

말하지 못하는 존재는 우릴 매료시킨다.  아직 말을 배우지 못한 아이 (En-fant) 이건, 집에서 기르는 개나 고양이이건,  아니면 동물원 우리 속의 고릴라이건, 말하지 못하는 존재, 나의 말과 행동에 말로 응답하지 못하는 존재,  말을 통해 나의 말과 행동을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거나 퍼뜨리지 못하는 존재는 존재의 순수한 수용성으로 우릴 매료시킨다. 

 

말하지 못하는 존재에게 나의 말과 행동은 온전하게 흡수된다. 그에게서 나의 말과 행동은 그를 거쳐다른 이들에게 전달되고 전파되지 않고, 그를위해 앙상하게 건조되거나, 추상화되지 않은 온전하게 존재 속에 안착한다. 나의 말을, 자신을 거쳐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지 못하는 못하는 존재는 그리하여, 우리에겐 비껴나가고, 스쳐 지나가며, 통과해 가버릴 뿐인 수많은 사람들에게서는 느끼지 못하는 어떤 도달감을 맛보게 한다. 

 

나는 말하지 못하는 존재 앞에선 나의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정보화되어 전달되는 과정에서 발생할 사물화와 소외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말하지 못하는 존재는 나의 말과 나의 행동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해, 범주화, 분류, 일반화 시킴으로써 나를 존재하는 사회적 속으로 획일화시켜 버리지 않는다. 그리하여, 우리는 말하지 못하는 존재에겐 정말 온전하게 내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이해되었다고 느낀다. 

 

말하지 못하는 존재는 나의 말과 행동에, 내가 사용하는 동일한 말을 통해 응답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그대로 흡수되기를 바라는 나의 말에 기분나쁘게 대꾸하지도, 그를 되돌려 보내지도, 내가 보낸 말을 되튕겨 보냄으로써 나에게 상처를 입히지도 않는다. 그는 그저 내가 하는 말을 주의깊게 듣고, 흡수한다. 이를통해 우리는 못하는 존재에겐 나의 모든 존재를, 존재의 비밀을 온전하게 털어놓고 이해받을 있다고 느낀다.  자신이 기르는 강아지나 고양이에게 우린 종종 다른 어떤 이에게서보다 깊게 이해받았다는 느낌을 받는 것도 때문이다. 

 

말하지 못하는 존재에게 말은 그것이 갖는 상호주관적 규범성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말은 그것이 반향되고, 되돌아오며, 혹은 퍼져나감으로써만 말을 사람들을 사회적 책임의 영역에 묶어놓는다. 말하지 못하는 존재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자유로움은, 그에게서 응답되지 않는 우리의 말이 화용론적 구속성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말하지 못하는 존재에 대한 폭력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원인이기도 하다.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 말하지 못하는 장애인, 혹은 자신의 말을 하지 못하는 외국인들은 종종 말하지 못하는 존재라는 이유만으로 말할 있는 사람들의 폭력의 대상이 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말과 행동이 반향되거나 전파될 것이라는 불안감에서 벗어나  말하지 못하는 존재들을 겁탈하고, 빼앗으며 그들에 대해 억눌린 욕구를 분출한다.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는 사실을 혼자만 알고 있던 이발사는, 자신의 목숨이 걸린 비밀을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거나 퍼뜨리지도, 그에대해 위협적으로 대꾸하지도 않는, 그저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비밀의 무게를 넘겨받아 흡수해 받아들일, 충실한 청취자를 필요로 했다. 그리고, 그는 그를 위해 대나무 숲을 찾았다. 그러나, 말하지 못하던 존재, 그리하여 앞에서 그의 모든 사회적 구속성으로부터 자유로우리라 여겼던 대나무 (혹은 구덩이가) 언젠가부터 그에게 했던 말들을, ‚반향시키고, 자신이 했던 말을 되튕겨보내며 다른 사람들에게 퍼뜨리기 시작했을 ,  이발사는 얼마나 커다란 당혹감을 맛보아야 했을까.

 

말하지 못하는 존재, 아니 말하지 못해야 한다고 생각되던 존재가 말을 통해 우리의 악행을, 우리의 약점을, 우리의 비밀을 우리에게 반향시키고, 되돌려 보낼 느껴지는 당혹감을 카프카는 그의 소설 <아카데미에서의 보고> 통해 전달한다. 인간의 모든 행동을 흉내내지만 인간의 말을 수는 없었던 원숭이가, 아카데미의 회원들 앞에서 연설을 한다. 말하지 못하던 존재가, 그저 우리의 말의 벙어리 청취자이기만 했던 존재가 인간을 향해 말을 함으로써, 우리는 말하는 자의 특권적 지위를 박탈당하고 순식간에 말을 듣는 청중으로 변하며,  우린 그의 말을 통해 반향되어 나올지 모를 우리의 비밀을 두려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