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문자, 미디어

아담의 언어와 인간의 언어

김남시 2003. 2. 12. 20:52
Adams Sprache
아담의언어와 인간의 언어


태초에하나님이 천지를창조하시니라...하나님이빛과 어두움을 나누사빛을 낯이라 칭하시고어두움을 밤이라칭하시니라...하나님이궁창을 만드사 궁창아래의 물과 궁창위의물로 나뉘게 하시매그대로 되니라, 궁창을하늘이라 칭하시니라...하나님이뭍을 땅이라 칭하시고모인 물을 바다라칭하시니라...여호와하나님이 흙으로 각종들짐승과 공중의 각종새를 지으시고 아담이어떻게 이름을 짓나보시려고 그것들을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바가 곧 그의 이름이라.아담이 모든 육축과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창세기1-2장)


천지를창조하신 하나님이 빛과어두움, 뭍과 물에 붙여준이름은 어느 나라 말이었을까? 아담이 '각종들짐승과 공중의 각종새와모든 짐승'에게 붙여준이름은 도대체 어떤언어로 되어 있었을까?바벨탑의 저주를 통해'온 땅의 언어가 혼잡'(창세기11장)해 지기 전에 아담과하나님은 어떤 말로대화를 주고 받았었을까?

인류최초의 인간 아담이사용했던 언어가 히브리어였는지,라틴어였는지, 아니면'사물 그 자체'였는지등에 대한 논쟁들1은차지하고서라도 한가지만은 분명히 말할 수있을 것이다. 신에 의해창조되고 그를통해 신이아담과 대화를 나누었던인류의 그 근원적 언어는원리적 의미에서 가장'완전한 언어'였어야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도대체 어떤 의미에서완전하다라는 것인가?그리고, 그러한 완전한언어로서의 조건들은무엇인가?

첫째로아담의 언어는 그를 통해불려지고 명명된 세계의모든 사물, 사태, 생물,상황 등의 본질을 그자체로 드러내는 '자연언어NATURLICHE SPRACHE' 였다는 점에서완전한 언어였다. 독일의유명한 중세 신비학자JAKOB Bohme는 이를 다음과 같이표현한다. "모든 사물은자기 자신을 계시하고드러낼 입을 가지고있다. 모든 사물들이자기 자신의 특성으로부터말하고, 자기 자신을드러내는 언어가 바로자연 언어이다."2다시말해,자연 언어란 그 이름 속에서 자연 스스로가 자기 자신의 본질적 특성을 표현하고 드러내고 있는 언어다. 이러한 점에서 아담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세상 모든 것들에 붙여준 이름은, 우리 인간의 언어에서 처럼 사물들에 임의적, 관습적으로 붙여진 '기호'가 아니라 그 사물들 자체가 그 속에서 자신들의 본질을 드러내고 있는, 그 사물의 본질로부터 자라나온 사물들의 '자기 계시'에 다름 아니다. 하이데거의 말을 빌자면 이 이름들은 그 이름의 외부에 있는 무엇인가에 대한 지칭(REFERENCE)이 아니라 존재 자체의 스스로 드러냄(SICH ZEIGEN)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담은 신에 의해 창조된 세계의 만물들이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정신적 본질'을 감지하여, 다만 그를 그 사물들의 이름으로 붙여준 것일 뿐이다. 따라서, 아담의 명명 작업은 서류 더미들을 서로 구분하기 위해 그 위에 임의적인 표찰을 갖다 붙이는 분류 작업이 아니라, 사물들 존재가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본질을 호출해내는 제2의 창조 작업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이러한특징으로 인해 아담시대의 언어는 언어와세계에 대한 지식의관계에서도 오늘날 우리가사용하는 언어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Walter Benjamin은 오늘날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그 '언어의 바깥'에 있는무엇인가를 지칭하는기호로서의 언어인데반해, 에덴 동산에서사용된 아담의 언어는그 이름 속에서 그 존재를인식할 수 있는 '완전한인식하는 erkennende 언어였을것'3이라고말한다. 인간의 언어가그 언어 외부에 있는세계에 대한 지식을전제로 하는 반면, 아담의언어는 언어 자체 속에서세계가 자신의 모습을드러내는 언어라는말이다. 예를들어 보자.누군가가 우리에게예를들어 "수멍“에대해 말한다고 생각해보자.이때 우린 한국어로 되어있어 우리가 소리낼 수있는 이 이름을 듣고도그것이 도대체 무엇을가리키는 말인지 알지못한다. 왜냐하면, 그이름은 우리가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따라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그 이름 외부의어떤 것을지칭하고 있기때문이다. 그것이 "논에물을 대거나 빼기 위하여,길둑이나 방축 밑에뚫어놓은 물구멍“을가리키는 것이라는 걸알고 있었을 때에야비로소 그 이름 '수멍'은우리에게 그것이 가리키는대상이 무엇인지 알려주는이름으로서의 기능을할 수 있게된다. 인간에의해 붙여진 사물의이름은 이처럼 '그 이름의외부에 있는' 지칭 대상에대한 우리의 지식을전제로 해야만 이름으로서의의미를 갖는다. 그에대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사물들의 이름은 우리에게그 이름의 '바깥에 있는'그 사물들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이런 점에서 인간들에겐한 언어를 습득한다는것은 동시에 그 언어로지칭되는 세계에 관한지식들을 배운다는 것을의미하며, 특정한 언어를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곧 그 언어를 통해 표현되는세계에 대한 지식들을이미 알고 있어야 한다는것을 말한다.4 인간의 언어가 이처럼 사물들에 임의적이고 관습적으로 붙여진 이름에 다름아닌 한, 우리가 그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관습적이고 임의적인 사물과 언어 사이의 관계를 배우고 익히는 오랜 수고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에반해아담에 의해 세상 만물에붙여진 이름들은, 위에서말했듯이, 이름의 외부에있는 대상을 지칭하는기호가 아니라 존재자체가 자기 자신을 그속에서 드러내는 자기계시에 다름 아니었다. 이러한 자연 언어에서 이름은 그 이름 스스로가 대상의 본질을 드러내고 있으며, 그를통해 우린 그 언어를 따로 배우지 않고도 그 이름만을 듣거나 보는 것 만으로 그 대상의 본질을 인식할 수 있다. 어떤사물의 이름을 알게된다는 것이 곧바로 그사물의 본질에 대한인식을 의미하게 되는5이러한 아담의 언어속에서 사물(사태)과언어는 아무 갈등없이서로 내면적으로 밀착되어있어, 그 언어를 통해사물과 사태의 의미는있는 그대로 투명하게알려질 수 있었다. 하나의 단어는 이를통해그를 통해 표현하려는사태를 ´부족하지도,넘쳐나지도 않게’드러냄으로해서 말을 통해 자신을충분히 표현할 수 없거나,모호하고 불분명한 언어로인한 오해와 불화도생겨날 수 없었다. 만물의창조와 더불어 신과아담에 의해 붙여진 그만물의 이름들은 이를통해모든 만물과 인간들상호간의 조화롭고 완전한상호이해를, 나아가 신과인간 간의 갈등없는관계를 보증해주고있었다.

그러나, 그렇지않더라도 사실상, 세상만물들을 스스로 창조했던신은 말할 것도 없고 그모든 만물에 이름을붙여주었던 아담은 자신이이름을 붙여준 세상의모든 사물들에 대해 이미'알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낯'과 '밤', '땅'과 '바다'를명명했던 신과 '모든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모든 짐승'을 명명했던아담에게는 따라서당연하게도 사물의 이름은곧바로 그 사물에 대한인식과 결합되어 있었던것이다.

둘째로,에덴 동산의 언어는그것이 세상 만물들의모든 이름과 세상 만물들이발하는 모든 소리를표현할 수 있을 만큼음성적으로 포괄적이어야했다. 그 이유는,

첫째,만일한 언어가 특정한 사물또는 생물의 이름의발음을 음성적으로표현하지 못한다면, 그발음으로 이루어진 이름은생겨나지 못했을 것이기때문이다. 예를들어,아프리카 밀림에 서식하는특정한 희귀동물의 이름이'이겔'이었다고 해보자.만일, 아담이 사용했던언어가 오늘날의 일본어에서처럼'겔' 발음을 '게루'라고밖에 표현하지 못했다고한다면, 이 동물의 이름은오늘날 이겔이 아니라'이게루'라고 불려졌을것이며, 마찬가지 이유에서김치는 '기무치', Kant는'칸토'라는 이름을 가지게되었을 것이다. 이렇게음성적 한계로 인해변형된 이름들이 그존재의 본질을 제대로드러낼 리 없다. 따라서,아담의 언어는 세상만물의 이름이 가질 수있는 모든 가능한 발음을다 표현할 수 있을 만큼음성적 표현 가능성이넓은 언어이어야 한다.

둘째,인류최초의 근원언어는 그언어의 소리를 통해서도세계 만물의 본질을 있는그대로 표현할 수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만일하나의 언어가 자연이내는 온갖 소리들 - 바람소리,물소리, 천둥소리, 동물울음소리 등 - 을 언어로표현할 음성적 구조를갖고있지 못하다면, 그언어 속에선 '자연이자기 자신을 드러내지'못하게 될 것이며, 이렇게되면 역시 그 언어는근원적 언어로서의 지위를갖지 못하게 될 것이다.

만일언어를 그것을 통해표현할 수 있는 '소리'의가능성의 차원에서평가한다면 보다 많은다양한 소리를 표현할수 있는 언어가 포괄적인언어라 할 수 있을 것이며,그 중에서도 존재하는모든 만물, 곧, 모든 생물과사물, 모든 사태와 상황,모든 경우들의 이름의발음과 자연이 내는 모든소리를 다 표현할 수있을 만큼 최고로 포괄적인언어만이 인류의 근원언어의 자격을 가질 수있을 것이다. 이러한점에서 많은 유대교카발라리스트 들은히브리어야 말로 에덴동산시대의 근원 언어임을주장하기 위해 히브리어의음성적 근원성 혹은포괄성을 강조하였다.Abulafia는 히브리어의 스물두 개의 철자가 존재하는70개의 다른 모든 언어들이발생하는데 전제 될 수밖에 없었던 이상적발음을 재현하고 있다는이유로 히브리어야 말로모든 다른 언어들이그로부터 파생된 근원언어임을 주장한다.(Eco, Die Suche nach vollkommenen Sprache, S.44) 이와유사하게 1667년 출판된수고에서 Mercurius van Helmont는 '히브리어의음가가 인간의 발성기관에의해 가장 쉽게 발음될수 있는 소리를 가지고있으며, 나아가 히브리어의철자들의 모양이 그철자가 발음될 때의 혀와목청, 기관지등의 모양을그대로 재현하고 있다는점에서 히브리어를 아담시대의 근원 언어라고주장했다. (S.94)

어쨋든인류의 근원 언어가지녀야 할 이 두가지최소조건, 즉 그 언어만으로그것이 의미하는 대상을인식하게 할 수 있는자연 언어어야 할 것과세상의 모든 이름과소리들을 표현할 수 있을포괄적 음성언어어야할 것이라는 조건은그러나, 사실상 만만하게서로 융합될 수 있는것은 아니다. 가장 완전한언어가 갖추어야 할 이두가지 조건은 어떤점에서 서로 모순적이며충돌하기도 한다. 아담시대의 저 근원언어가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었는지알 수는 없지만, 인간에의해 만들어진 언어에서는언어만으로 그 대상의본질을 알게 해주는 자연언어가 동시에 소리를드러내는 소리 언어이기가무척이나 힘들다. 예를들어보자. 이집트 문자나한자처럼 문자가 의미하는대상을 문자의 외부가아닌 직접 그 문자 속에서보여주는 상형/그림문자는, 바로 그러한점으로 인해, 자연 언어로서의가능성 곧, 그 문자를 따로 배우지 않더라도 그것이 의미하는 대상을인식하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을갖는다. 하지만, 다른한편으로 이 문자를 통해'소리'를 표기하기 위해선그 문자들이 원래 가지고있던 의미론적 차원을유보시켜야만 한다.누군가의 이름이나 지명의소리 등을 표기할 때이집트 문자나 한자는어쩔수 없이 표음적으로사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이집트 문자나 한자에서'소리'는 문자의 의미로서가아니라 그 문자의 음가를통해 표기된다. CLEOPATRA라는이름을 표기한 이집트문자는 의미론적이 아니라표음 문자처럼 그 문자가가진 음가를 통해 읽혀져야한다.) 이렇게 된다면,"이름이 사태의 본질을드러내는 것이라는 자연언어의 원칙이 현실상에선사태가 (곧, 그 사태의그림이) 이름의 음가를드러내기 위해 사용되게되는“6모순이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좌절하지 말지어다.컴퓨터 기술의 발달로우리에게 제공된다매체적(multimedial)이고다감각적(multisensorious) 커뮤니케이션7의가능성은 그러나,우리로 하여금 어쩌면서로 융합하기 힘든 이두가지 조건을 다 갖춘소위 '완전한 언어'를상상해 볼 수 있게 하니까.컴퓨터를 통해 유통될그 언어는 멀티미디어적에니메이션과 무한한하이퍼 링크의 가능성을통해 자기 자신이 무엇을의미하는지를 직접우리에게 알려줄 진보된자연 언어의 면모를갖추고 있을 것이다.그리하여, 우리는 그렇게'자기 자신을 스스로드러내 보여주는' 그언어만으로 그것이 무엇을의미하는지, 그 언어외부의, 곧 컴퓨터 바깥의세상에 의존하지 않고도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것이다. 나아가 그 언어는어떤 소리를 우리에게전달해야 할 때는 마치인간의 음성처럼, 아니인간의 음성이 낼 수없는 세계의 수많은소리들까지도 생생하게재생해 들려 줄 것이며,그를통해 복잡한 자연의소리를 전달하기 위해기괴한 의성어들을만들어내어야 했던 우리의수고를 덜어줄 것이다.말과 음성을 통해 신이이 세상을 창조해내었듯,다 감각적 매체로 무장한그 언어는 우리에게우리가 원하는 '사이버세상'을 만들어 줄 것이다.그 세계 속에서 우리는우리 스스로 그 세계의'모든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모든 짐승'을 창조하고그들에게 이름을 붙여주는창조주이자 동시에 아담이될 수 있을 것이다.


1 Umberto Eco, Die Suche nach der vollkommenen Sprache,dtv 1994, §1.

2WalterBenjamin, Wort und Schrift in Barock, in Medienasthetische Schrift,Shurkamp 2002,S.92

3WalterBenjamin, Uber Sprache uberhaupt und uber die Sprachedes Menschen,in Medienasthetische Schrift,Shurkamp 2002,S.78

5이러한점에서 카발라주의자들은신의 이름 'JHWH'에 대한묵상과 명상 만으로신의 본질, 나아가 세계자체의 본질을 깨달을수 있다고 말한다. (이에대해선, GershomScholem, Zur Kabbala und ihrer Symbolik, Shurkamp 1960, PerleBesserman, Der Versteckte Garten, Fischer 1996 참조)나아가, 이는 플라톤의'상기설'과도 관계맺는다.플라톤에게 있어 모든'이름'은 사실상 우리가이데아의 세계에서'이미 알고있던' 사물들에대한 기억을 '상기'시켜주는기능을 갖는다. 이름과그것의 대상의 관계를'알아보는' 인식과정은곧, 그리하여 이미 알고있던이 연관관계에 대한'상기'에 의해 이루어지는것이다.

6UmbertoEco, Die Suche nach vollkommenen Sprache, S.156

7Michael Giesecke, Von den Mythen der Buchkultur zu den Visionen Informationsgesellschaft, Shurkamp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