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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와 그림: 문장부호, 하이퍼텍스트, 이모티콘

김남시 2003. 1. 16. 01:54
문자의 기원으로서의 그림

- 현재까지 발견된 대부분의 문자가 그림을 그 역사적 기원으로 갖는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있는 정설이 되었다. 그 문자의 기원의 흔적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는 문자들 (이집트 상형문자,한자 등)에서 부터 그것이 거의 사라져버린 문자(알파벳)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긴 하지만 모든 문자들은 사실상 그를통해 표현하려고 하는 대상을 그림으로 표현한 그림 문자로부터 발생하였다.

알파벳의 기원이 되었던 페니키아 문자에서 "A“ 는 뿔이 달린 소의 모습을,"B“ 는 사원의 모습의 형상을 그 기원으로 갖고 있었다. 페니키아 문자가 그리이스인들에 의해 받아들여져 사용되어 오면서, 각각의 알파벳들은 그것이 어떤 대상의 모습으로부터 도출된 것인지에 상관없이 다만 음성적 가치만을 지칭하는 기호로써 발전되어 나온 것이다. (Vgl. Harald Haarmann, Universalgeschichte der Schrift, 1998, § 6, Andrew Robinson, Die Geschichte der Schrift, 1995,§ 9.)

- 알파벳 문자의 우위성을 강조하는 유럽의 학자들은 알파벳이야말로 문자의 기원성으로부터 가장 멀리 까지 발전한 문자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들에 의하면, 이제 거기에서 더 이상 어떤 형상적, 그림적 요소도 발견할 수 없게된 알파벳은 그를통해 이제 전적으로 문자적 기능, 곧 순수하게 다른 어떤 대상을 지시하는 지시적 기능만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알파벳이 지시하는 것은 이제, 한자나 이집트 문자와는 달리 어떤 형상을 지니고 있는 구체적 대상이 아니라 전적으로 분절화된 음성일 뿐이다. 문자가 세계에 존재하는 하나의 특정한 대상을 지칭하지 않고, 다만 말의 음성만을 지시대상으로 갖게됨으로써, 알파벳은 단지 스물여섯개의 문자만으로 모든 단어들을 표현할 수 있는 경제성을 가지게 되었고, 이는 새로운 대상 혹은 개념이 출현할 때마다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내야 했던 한자가 갖는 비경제성에 비해 훨씬 진보된 문자의 발전단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된다. ( Havelock, Eric A.(1990) : Schriftlichkeit, Das griechische Alphabet als kulturelle Revolution, Weinheim. (?bers.) The Literate Revolution in Greece and Its Cultural Consequence, 1982, Princeton. )

- 문자를 그것의 기원이었던 그림과 대립시킴으로써 도달하게된 이러한 이해들은 그러나, 문자의 사용에 있어 중요한 한가지 점을 간과하고 있다. 곧, 문자가 문자로써 기능하기 위해 전제될 수 밖에 없는, 문자사용에 내재해 있는 그래픽, 그림적 요소가 그것이다.

문자의 시각성 1 : 문장기호와 텍스트 형태

- 문자는 시각적으로 보여짐으로써만 문자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다시말해, 인간의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고 보존하기 위해 사용되는 문자는 그것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의미를 지닌 그림’으로 받아들여지고 수용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를 위해선 문자는 시각적 법칙에 의해 쓰여지고, 정렬되고, 정돈되어야 한다.

- 각각의 문자들은 그들 다른 문자로부터 구별할 수 있도록 명확히 규정되어 있는 형태와 모양을 갖는다. 특정한 문자의 형태와 모양을 엄밀히 규정하기 위해 많은 경우 문자는 특정한 기하학적 원리에 따라 규정되며, 또 이에따라 쓰여지기를 요구받는다. 그를위해 우리는 소위 기하학적 틀과 원리에 따라 그 형태가 규정되어 잇는 표준적인 문자의 모양과 형태를 그대로 따라 수십번 반복해서 써보는 문자쓰기 연습을 행한다. 특정한 문자의 표준적 형태를 그려낼 수 있기 위해 많은 경우 여러개의 획을 통해 그 문자를 쓰는 순서도 정해져 있으며, 우리는 이처럼 시각적 법칙에 따라 정해진 문자의 형태와 순서에 따라 그 문자쓰기를 익혀야 한다.

- 시각적 규칙에 따라 그 형태와 쓰기 순서가 규정되어 있는 문자는 또한 시각적 질서에 따라 정렬되고 배치되어야만 문자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 이때 사용되는 것이 문자들의 배치와 문장 부호들이다. 띄어쓰기, 마침표나 쉼표 등 없이, 곧 시각적 질서에 대한 고려없이 쓰여져 있는 문자들은 문자의 해독 가능성을 떨어뜨리고, 그를통해 그 문자의 '실현’을 어렵게 만든 다. 우린 그 '문자들 뭉치’를 하나의 시각적 대상으로 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그로부터 읽어내기 어렵다. 이를 독해하기 위해서는 따라서 또 하나의 다른 감각적 수단 곧, 소리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리하여, 문장 기호들이 발명되기 이전의 사람들은 텍스트를 늘 '소리내어’ 읽는 낭독의 방법을 택했다. 마침표나 쉼표, 띄어쓰기 등이 없었던 예전이 한자 텍스트 들은 몸을 앞뒤로 흔들며 리드미컬하게 낭독하는 독특한 독서방식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이는 유럽 수도원의 수도사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 소리내어 낭독됨으로써 쓰여져 있는 것의 의미가 '실현’되는 이러한 형태의 독서에서 문자는 단지 청각적 의사소통을 통해 실현되던 '구어를 재생하기 위한 수단’에 다름 아니었다. 말하고자 하는 바의 시각적 재생’이라는 문자의 원래적 의미는 낭독이라는 독서형태 속에서는 음성을 통한 청각적 의사소통 수단으로서의 말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지 못했던 것이다.

- 음성과 말로부터 문자의 독립은 문자의 시각성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된 시각적 요소들을 통해 비로소 가능해진다. 띄어쓰기, 마침표, 쉼표, 말줄임표 등이 음성이 지니고 있던 시간성을 시각화/문자화 시켰다면, 느낌표, 물음표 등의 문장부호들은 음성을 통해 드러날 수 있었던 말하는 자의 감정 상태를 시각화시킴으로써 음성적 말이 지니고 있던 육체성을 문자화시켰다. 문자화된 말의 시간성과 육체성에 익숙해진 독자들이 증가하면서, 이제 문자는 음성의 도움없이도 자신의 의미를 실현시키는 묵독의 방식으로 읽혀지게 되었다.

- 문자의 독립과 시각화는 나아가 텍스트의 형태와도 관계한다. 문자를 어떤 형태로 정렬하고 써내려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러가지 요소들과 관계되어 있다. 우선은 그 문자 자체의 특성이다. 알파벳 문자는 세로 쓰기가 힘듦에 반해, 상형문자, 한자 등은 세로쓰기가 가능하다. 또한 그 글자를 쓰는 필기도구의 성격에 따라 세로쓰기와 가로쓰기가 규정되기도 한다.

-이러한 글쓰기의 조건들을 고려하고서라도, 그러나 문자를 통해 구성되는 텍스트를 어떤 형태로 정렬할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시각적 질서와 시각적 문화의 소산이다. 그리이스 인들은 문장을 짧은 단으로 길게 내려쓰는 방식으로 썼으며, 중국인들은 세로 쓰기를 통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횡으로 진행하는 방향으로 글씨를 썼다. 이들은 모두 흥미롭게도, 문자들을 종이에 일정한 좌우 여백을 두고 블럭정렬을 통해 글을썼다. 그리고, 그것은 전적으로 읽는 사람을 위한 시각적 고려였다.

-텍스트 정렬의 문제는 사실상 기계를 통한 글쓰기 곧, 메커니컬한 문자정렬을 통해 등장한 것이다. 타자기를 통해 문자를 배열할 때 생겨나는 좌우여백의 문제가 그것이다. 그리하여, 컴퓨터 워드프로세서에는 다양한 방식의 텍스트 정렬방식이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역시 시각적으로 문자를 대하는 독자들을 위한 고려에 다름아니다.

-그러나, 문자를 통한 텍스트, 나아가 책이 등장하면서 문자가 이제 전적으로 그것의 그림적 요소와 기원으로부터 해방되었다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다. 중세의 필사본에서 발견할 수 있듯이, 문자는 언제나 그래픽적 요소들과 결합하여 장식되었다. (그러나, 파피루스 등에서는 이를 발견할 수 없다. 왜일까? 그들은 아직 문자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텍스트를 그림을 통해 보충하거나 장식하려는 욕구를 가질만큼 문자와의 교제에 여유가 없었던 탓일까?) 문자를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시각적 배려이건, 혹은 문자를 통해 설명되는 추상적, 개념적 사태에 대한 이해를 돕기위해서건 간에 텍스트는 많은 경우 삽화나 그림, 도표나 다른 시각적 기호들을 동반하였다. 이러한 텍스트들은 따라서, 단지 문자에 대한 의미론적 독해 뿐 아니라,텍스트에 사용된 시각적 기호들에 대한 기호론적 독해를 동시에 요구하는 것이었다.

하이퍼텍스트 : 말에로 회귀하는 문자?

- 하이퍼 텍스트는 문자와 다른 감각적 장치들 간의 결합의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린 결과물이다. 하이퍼 텍스트에서 문자는 시각적 매체뿐 아니라, 음향과 음악, 나아가 동영상 등의 영상물들과도 결합된다. 그를통해 하이퍼 텍스트는 문자와 문장기호 만으로 이루어져 있던 텍스트에 다양한 공감각적 표현의 가능성을 준다. 나는 나의 텍스트를 특정한 배경음악과 함께 읽히게 할 수 있으며, 텍스트의 이해를 위해 필요한 사진이나 그림을 삽입하고, 특정한 소리나 음성으로 나의 텍스트를 보충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문자를 통해 이루어진 텍스트의 가장 발전된 형태인 하이퍼텍스트가 오히려 음성적 언어가 지니고 있던 저 공감각적 차원에로 회귀한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잘 꾸며진 하이퍼텍스트는 이제, 말하는 자에게 주어져 있던 공감각적 표현의 가능성을 새로운 차원에서 이용하고 있다.

- 다른 페이지, 다른 문자, 음성, 그림 등과 '링크되어 있는’ 문자는 그 자체가 의미 내용을 갖는 문자이면서, 동시에 자신이 다른 문자, 혹은 그림, 영상, 소리 등을 지칭하고 있는 지시체라는 이중적 성격을 가진다. 그리고, 그것이 이러한 이중적 지시체라는 사실을 우리는 링크된 문자가 갖는 시각적 모습에서 확인한다.

- 이러한 하이퍼텍스트를 '읽을 때’ (이 단어는 하이퍼 텍스트의 수용을 표현하기에 부족하다. 하이퍼텍스트는 읽히고, 보여지고, 듣고, 움직여진다. ) 독자는 따라서, 그에대한 공감각적 방식의 독해를 해야한다. 그리고 그를 위해선 의미론적, 기호론적 방식의 독해와 다양한 방식의 지각적 경험을 동시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새로운 능력이 필요하다.

이모티콘 : 문자와 그림의 전도

- 이모티콘은 문자가 가지고 있던 저 그림적 요소를 극대화시켜 낸 고안물이다. 물론, 문자가 지니고 있는 형상적, 그림적, 그래픽적 요소들은 다른 많은 시도나 쟝르들을 통해 탐구되어 왔다. 동양에서의 '서예’ Kalliographie나 '구체시, 혹은 그래픽 시 visuelle Poesie 등의 실험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문자는 그것이 지칭하고 있는 것에 대한 의미론적 지시체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형상적 요소를 통해 하나의 그림으로 간주되며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이때의 그림은 일반적인 그림과는 다르다. 위에서 지적했듯이, 그림이 특정한 시간적으로 고정된 하나의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데 반해, 서예나 그림시 등에서 등장하는 그림화된 문자는 사실상 추상화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 이모티콘은 기본적으로 문자를 통해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고안된 기호들이다. 그런 점에서 이모티콘은 느낌표, 물음표, 말줄임표 등 전통적으로 문자 속에서 특정한 감정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초보적인 문장기호들의 발전 형태라고 볼 수도 있다. 문자 속에서 문자만을 통해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말하는 이의 '감정상태’를 이모티콘은 문자의 특정한 조합을 통해 표현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문자를 하나의 그림처럼 사용하면서이다.

- 이모티콘은 자판을 통해 문자를 입력하는 테크닉의 발전과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다. 자판은, 특히 한글의 경우엔 분명하게 보여지듯이, 문자를 그것의 최소단위로까지 분해하여 그들을 적절하게 조합함으로써 문자를 찍어내는 기술적 고안물이다. 이모티콘은 이렇게 분해된 문자의 최소단위들을, 애초의 자판이 설정해 놓고 있는 문자로 조합해내는 규칙과는 다른 창조적 규칙을 적용하여 새롭게 조합해냄으로써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낸다. 이모티콘이 우리에게 주는 새로운 느낌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자판의 규칙을 이처럼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응용하여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그 느낌은 또한 사실상 문자를 만들기 위해 분해된 문자의 최소단위들로부터 문자가 아닌 '그림’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에서 강화된다. 그림으로부터 그 기원을 갖는 문자가 이제 역으로 그림으로 구성된다! 이런 점에서 이모티콘은 문자의 기원적 발생을 역으로 전도시킨 시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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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outhclock.com.ne.kr/schriftundbild.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