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해부학 책을 보면서

김남시 2005. 7. 18. 06:23
  •                       우리가 우리 자신의 육체에 대해 아는것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육체에 대해 가지고 있는 표상들에 다름 아니다. 해부학 도판에 그려져 있는 저 익명의, 열려  속이 까발겨진 육체는 지금까지의 인류의 인간 육체에 대한 지식들의 소산이다. 우린 우리 스스로가 들여다보지 못하는 우리 육체 속의 모습을, 해부학자들에 의해 열려 들여다 보여진 수많은 이전의 육체들이 제공한 지식에 의거해 확인한다. 내가 몸이 아파 병원에 가거나, 때에 따라 수술을 받아야 할 경우에 나의 육체는 이전 시대의 저 죽은 육체들이 제공한, 또 그를 바라보던 특정한 에피스테메적 시각들에 의해 구성된 육체에 대한 지식들에 의해 관찰되고, 절개되거나 봉합될 것이다.

-                            내 뱃속에 들어있을 아니 들어 있어야할 ! – , , 창자, 쓸개, 허파, 심장, 방광 들을 나는, 마치 사용 설명서에 나와있는 부품목록을 통해 조립식 프라모델의 모든 부품들이 다 있는지를 확인하듯, 해부학 도판을 보며 확인한다. 한 개의 프라모델을 완성하기 위해선 그에 필요한 모든 부품들이 다 있어야 하듯, „라는 육체가 온전하게 정상적으로 존속하기 위해선 그 속의 모든 기관들이 다 존재해야만 한다. 그러나, 문제는 내 육체 속에 존재해야할 기관들을 내가 플라모델의 부품들처럼 하나 하나 직접 찾아 만져보며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 몸 속에 저 모든 복잡한 부품들이 빠짐없이 다 들어있을 것이라는 걸 우린 그리하여 연역적 가설을 통해 확인할 수 밖에 없다. 가설 : 내 몸에 필요한 기관들이 다 존재해야만 내 몸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것이다. 관찰 : 내 몸은 현재 그럭저럭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결론 : 따라서, 내 몸 속엔 필요한 기관들이 다 존재할 것이다! 

-                            우리 몸 속의 보이지 않는 기관들의 존재를 저 불만족스러운 연역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이미 육체의 타자화 Entfremdung’ 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내가 구입한 노트북과 테레비젼의 부품들이 제대로 다 있으리라는 걸 스스로 확인 할수 없듯 우린 우리가 죽을 때까지 채워 들고 다니는 내 몸 속 기관들의 존재를 우리 스스로 확인할 수 없다! 나아가 그것들은 전적으로 나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수리보수를 타인에게 맡겨야만 하는, „내 속에 있으나 내가 장악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런 점에서 내 몸 속의 심장, 허파, , 대장, 방광 등은 누군가에 의해 내 몸속에 투입되어 그 속에서 기생하고 있는 기생충들과도 같다. 아니, 어쩌면 가 저 기관들에 빌붙어 생존하고 있는 기생충인가. 

-                            우리 몸 속의 보이지 않는 기관들의 존재는 내 육체의 기능으로부터 연역되어야만 한다. 내 육체가 큰 이상없이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나는 내 육체 속의 모든 기관들이, 이 해부도판에 나와 있듯, 전부다, 제대로 된 형태로, 적절한 위치에 놓여져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는 전기 청소기가 제대로 먼지들을 빨아들이는 한, 그 속에 모든 부품들이 제대로 다 달려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과 같다. 내 육체가 어딘가 조금이라도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순간, 우리는 우리 몸 속에서 우릴 생존하게 하는 저 낯선 기관들의 포로가 된다. 혹시 내 간에 염증이 생긴 것이 아닐까, 내 뇌 속에 종양이 자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 방광에 결석들이 자리잡고 있을까... 근대 이후 보급된 육체에 대한 수많은 지식들 건강상식, 조기징후, 병인 등 엔 그리하여 우리 육체 속에서 우릴 지배하고 있는 저 낯설은 기관들에 대한 두려움들이 배어있다. 우린 나의 간이, 위가, 대장이나 허파가 불러내는 조그만 목소리에도 늘 귀를 기울이며 그들의 동태를 살펴야 하는 허약하고 늙은 전제 군주다.  

-                            내 육체 속에서 호시 탐탐 반란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저 기관들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육체의 정상적인 기능과 작동을 위한 맹목적 건강의 신앙들을 갖게한다. 우리는 수많은 영양제와 건강 식품들을 먹고, 마시며, 헬스와 등산, 조깅과 수영 등으로 우리 육체를 혹사시키며 내 육체가 여전히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작동하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어한다.

-                             자신의 육체에 대한 저 두려움과 감시, 관찰은 현대의 에피스테메가 규정해 놓은 육체의 정상성이라는 그림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오늘날의 의학과 의학적 지식의 담론들이 규정해 놓은 정상성의 시각을 통해 우리 육체의 모든 증상과 징후들을 정상비정상으로 구분하고, 저 우리의 육체를 저 정상적 육체로 수렴시키기 위해 영양제나 영양 식품을 먹고 운동을 하고 수술을 받기도 한다. 우린 우리의 육체를 저 정상적 육체와 비교하고, 관찰하며 때론 불안해하거나 안심하기도 한다.

-                            해부학 도판은, 그림이라는 무척이나 의심스러운 매체로, 정상적 육체를 절개해, 그것의 평소엔 보이지 않는 내부를 객관화시켜 보여준다. 이렇게 그려져 있는 기관들과 내 육체 속의 내겐 보이지 않는기관들을 비교하면서, 우린 현대 세계가 마련해 놓은 정상적 육체에 대한 그림을 내면화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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