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수 있는 세계

레비나스의 타자의 철학

김남시 1999. 10. 26. 23:50
자신이 완전히 상실되어 버리지도, 타자를 완전히 내게 흡수시켜 버리지도 않는 나와 타자와의 관계는 가능한가. 레비나스는 자아를 유지하면서도, 또한 타자를 폭압적으로 동일화시키지 않으면서도 이루어질 수 있는 관계의 전형을 에로스에서 찾는다.

전통적으로 에로스는 '그 안에서 자아가 상실되는 체험'으로 이해되어 왔다. '주체의 자기상실'로서의 에로스 개념을 이야기하는 바타이유, 나와 타자가 제3의 형태 속에서 완전히 합일되는 변증법을 주장한 헤겔, 나아가 '결핍된 것'을 향해 그것을 영원히 나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욕구로서의 에로스 - 따라서, 거기에서 '타자는 단지 나의 완전한 충족을 위한 대상으로만 존재하는 - 를 이야기하는 플라톤(향연) 등에서 자아와 타아는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지 못한 채 타아를 흡수하거나 타아에게 흡수되고 만다.

존재의 '함께 있음(mitsein)을 처음으로 철학적 존재론의 차원에서 논의한 하이데거에게 있어, 타자와 나의 관계는 '동일한 곳을 향해 있는 (어깨걸고 서 있는) 관계에 처하게 된다. 이러한 'Mitsein'의 관계는 타자와 나의 '동일한 지향'이나 '동일한 지평'을 함축한다. 레비나스는 이것이 그가 그토록 경계 하고자하는 '전체주의적 존재론'의 틀에 사로잡혀 있는 것으로 본다.

'같은 곳을 향해 함께 서 있는' 관계와는 달리, '얼굴을 맞대고 있는 관계, 마주 서 있음의 관계'에서 나와 타자는 자신의 외재성으로 서로를 경험한다. 타자는 나에 의해 '이해될 수 없고' 지배될 수 없는, 전적으로 신비한 영역에 속한다. '대면하고 있는 관계'에서 타자는 여전히 나의 외재성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 그러한 한에서 나는 타자를 나의 존재 안으로 동화 혹은 동일화 시킬 수 없으며, 타자 또한 나를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와 타자는 하나의 '관계'에 들어서 있다.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불가해한 신비'에 대한 추구인 '애무'에서, 나와 타자의 에로스적 관계의 특질이 분명히 드러나게된다. 나는 그를 완전히 나의 소유로 만들거나 그의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려고 하지 않으며, 또 그럴 수도 없다.

'아들'은 전적으로 '타인'이면서 또한 낯선 이인 '나'와 관계하는 존재다. 자기 보존적 에로스의 산물인 '아들'은 그러나, 완전히 내가 만들어낸 작품도, 나의 정체성, 나의 동일성의 분신도 아니다. - 플라톤에게 있어 '자식'은 영원히 살아있고자 하는 주체의 에로스적 욕망의 실현태이다. 나는, 나의 정체성의 분신인 아들을 통해 불멸을 얻으며, 이것이 모든 에로스적 지향의 궁극적 목표이다. - 그는 여전히 나에겐 낯선 타자이며, 그러한 '타자'로서 나와 관계하는 것이다.

타자의 철학의 근본적인 딜레마는 나와 공동체 혹은 공동체와 나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레비나스에게 타자와 맺는 '마주 봄'의 관계는 사적인 1:1의 관계에 국한될 수 밖에 없다. 타자와의 관계에서도 자신을 유지하며 '낯선 이'로서의 타자와 관계하는, 미메시스적 관계엔 1명 이상의 집단, 혹은 공동체가 들어 설 여지가 없다. 나와 관계 맺고 있는, 나와 마주 서 있는 타자들은 그들 서로를 나를 향해 나란히 서 있을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Mitsein) 내가 '타자들'과 관계하기 위해선, 타자들 사이의 '동일성'(서로 한 곳을 바라보고 서 있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난, 타자들과 마주하는 관계를 위해서 그들의 동일성을 강요해야만 한다.

플라톤의 에로스가 '개별적인 육체'에 대한 사랑을 통해 점차 '보편적인 대상'에 대한 사랑에로 나아갈 때, 레비나스의 에로스는 점점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타자'를 지향한다. 전자가 '누구에게도 명백한' 보편의 이데아를 지향함에 반해, 레비나스의 자아는 '낯선 존재'로서의 이질적인 타자'를 향한다. 그가 나에게 '낯선 존재'인 한 난 그를 이해하거나 지배할 수 없다. 나의 결핍 - 플라톤에게 있어 이는 원래 한 몸뚱이로 결합되어 있던 인간이 신에 의해 둘로 나뉘게 되었으며, 그리하여 이 반쪽의 인간들은 자신들의 나머지 반쪽을 찾아헤매게 된다. 그런데, 이 반쪽은 서로 다른 성이기도 하지만, 같은 성이기도하다. - 이 타자를 지향하게 하지만, 그것은 결코 충족되거나 완전해질 수 없다. 이런 점에서, 타자와의 관계는 늘 '타자의 부재'를 현전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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