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수 있는 세계

시간과 형상

김남시 1999. 9. 29. 00:44

뒤에서 앞으로, 밑에서 위에로 나아가는 시간의 표상은 근대적 의식의 산물이다. 오늘날 우리는 미래를 향해 '앞으로' 나아간다고 표상한다. 이처럼 우리가 과거를 우리의 뒤 혹은 아래에 있는 것으로, 미래를 우리의 앞이나 위에 있는 것으로 표상하게 된 것은, 인간의 역사가 '앞을 향해 나아가는 진보의 역사'라는 근대적 계몽적 역사관에 의해서이다.

원래, 하나의 연속적 흐름으로서의 시간에 대한 표상은 이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시간을 시각적으로 표상화시키려 했던 '시계'의 역사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시계의 가장 원시적 형태인 물시계나 모래 시계에서 시간은 늘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으로 표상되었다. 고여있거나 쌓여있는 시간은 아래로 '흘러내림으로써' 미래에로 나아간다. 여기에서 미래는 과거의 아래에 위치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간 표상은 오늘날 우리의 언어 습성에서도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한다. 우리가 과거를 떠올리거나 되돌아가기 위해선 우린 우리의 위에 있는 과거를 향해 '거슬러 올라가야만' 하는 것이다.


<형상과 시간> (타니가와 아쯔시) (강담사 학술문고)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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