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베를린

세계를 보는 다른 방법 > Katsuhiro Saiki의 사진전

김남시 2002. 8. 20. 00:22
베를린 시 작은 갤러리 Murata and Friends에서 일본의 젊은 사진작가 카츠히로 사이키의 사진전을 열었다.

우리에게 친숙해있는 세계를 낯설게 보여줌으로써 현실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의미를 던져주려는 사진 예술의 시도는 크게 세가지 방식이 있다.

첫째는 우리의 시각으로는 볼수없는 현실의 장면들을 사진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 주위의 인물이나 육체, 혹은 사물들을 촬영해 그것을 그 실물크기보다 훨씬 크게 확대인화하여 보여주거나, 오랜 시간동안 셔터를 열어놓음으로써 우리 눈으론 볼수없는 시간적 흐름을 촬영하거나 (주로, 자동차들의 흐름이 빛으로 표현되는 야경사진 등에서 볼수있다), 아니면, 공간적으로 우리의 시선이 미치치 못하는 인체나 사물, 물건 등의 내부를 촬영하여 보여주는 사진예술들이 이에 속한다. 인간의 지각적 한계를 극복하는 복제기술의 혁명적 가능성에 대해 벤야민이 지적했었던 시도들이 바로 여기에 속한다고 말할수 있겠다.

둘째는 사진의 다양한 조작술을 통해 현실의 이미지와는 다른 환상적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빛의 투과량을 의도적으로 조절하거나, 색채를 집어넣거나, 아니면 디지털 이미지를 통해 피사체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조작하는 등의 이런 시도들 역시 현실을 다르게 보여주는 사진예술 만의 가능성이라 하겠다.

세번째, 그리고 위의 작가가 시도했었던 방법은, 위의 두가지 시도와는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보는 다른 방식을 제시해준다. 그의 사진 작품들은 의도적으로 사진에 대한 인공적, 기술적 조작을 회피한다. 그는 다만 우리에게 익숙한 사물들을 다르게 '배치'하거나, 우리에게 익숙한 사물들의 한 부분만을 보여주거나, 그것들을 우리가 익숙한 시선과는 다른 방향에서 보여줌으로써, 사실은 우리에게 친숙해있던 사물들을 낯설게 보이게 만든다.

아래에 실린 사진은 언뜻 잘 보이진 않지만, 하늘에 떠있는 비행기를 줌 없이 찍은 것이다. 우린 사진 속의 작은 비행기를 발견하고 나서야 이 장면이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것임을 자각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한동안 이 낯선 사진앞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사진이 우리가 보는 세계를 다른 어떤 매체보다도 현실적으로 전달해주리라는 우리의 일반적 믿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이라는 '매체'가 매개해주는 다른 현실사이의 긴장감, 곧 사진의 진정성과 매체성 사이의 긴장감이 그가 작품을 통해 노리고자 하는 것이다.

이곳에 실리진 못했지만, 그의 작품 중 베를린의 유명한 방송탑의 기둥 부분을 찍은 사진이 있었다. 난 처음엔 그것이 무슨 공장의 굴뚝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작가와 이야기해보고 나서 그것이 방송탑 기둥인 줄 알게되었다. 그는 의도적으로 방송탑의 유명한 머리 부분을 배제하고 사진을 찍었는데, 누구에게나 익숙한 그 부분이 사진 속에 등장했다면 누구나 그 대상을 너무나 쉽게 '알아' 버리기 때문이었다.
사이키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무라타와 친구들 갤러리는 베를린의 유명한 HACKESCHER HOEFFE 옆 좁은 골목길의 이층 공간을 빌려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곳으로 올라가는 침침한 계단은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인상좋은 일본계 독일인 2세 무라타와 그의 여자친구가 운영하는 이 갤러리는 주로 일본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유럽에 소개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WWW.murataandfriends.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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