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수 있는 세계

스타니스와프 렘 <솔라리스>

김남시 2026. 5. 31. 14:34

하루종일 스타니스와프 렘의 <솔라리스>를 읽었다. 1961년에 출간된 SF의 고전이다. 미래, 특정되지 않은 시기 인류는 솔라리스라고 이름지은 행성을 발견했다. 행성의 90% 이상이 바다로 이루어진 곳으로, 인류는 탐사대와 연구자들을 보내 이 행성에 대한 연구와 지식을 쌓아나갔다. 푸른 태양과 붉은 태양 주위를 자전하는 이 행성을 둘러싸고 수십년에 걸쳐 솔라리스 학이라 부를 학문 분야가 생겨났다. 이런 관심을 불러낸 이유는 이 바다가 말그대로 살아있는 생명체였기 때문이다. 끈적끈적한 유동성 액체로 이루어진 원형질의 바다는 가까이 있든 멀리있든 관계없이 주변의 모든 형상을 모방미모이드라 불리는 형태를 만들어내고, 나아가 화산 분화처럼 느닷없이 바다에서 출현하는 대칭체와 비대칭체를 만들어낸다. 수십미터에서 수킬로미터까지 이르는 크기와 규모로 생성되는 미모이드와 대칭체들은 어느 것 하나 동일하지 않았다. 그 원형질 깊은 곳에서 발생하는 특정한 방전은 인간의 뇌에서 관찰되는 전기적 활동과 매우 유사했고 인간이 그를 향해 손을 뻗으면, 마치 탐색하려는 듯 튀어올라 그 손을 감싸기도 한다. “파도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물러나더니, 내 손에 닿지 않은 채 내 손 위로 흘러내린 것이다. 즉 파도에서 뿜어져 나온 물줄기가 얇은 공기층을 사이에 두고 장갑처럼 내 손을 에워쌓고, 그 순간 파도의 내부를 구성하던 액체가 즉시 그 농도를 바꿔 살점과 같은 형태로 돌변했다....내가 손을 천천히 들어올리자 파도가,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파도의 가느다란 줄기가 내 손을 따라 솟구쳐 올랐고, 점점 투명한 광채를 내뿜으면서 녹색의 피낭체가 되어 내 손을 감쌌다. 내가 손을 더욱 높이 들어올리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자 젤리 형태의 물질 또한 진동하는 바이올린의 현처럼 팽팽하게 늘어났지만 끊어지지는 않았다.” 솔라리스 바다의 모든 생명활동 중 가장, 그곳을 연구하는 인간에게 영향을 주는 건, 인간의 기억 속에 가장 깊이 각인된 흔적, 다른 모든 기억들로부터 고립된, 가장 강렬한 기억을 선택해 그를 ‘F-형성물로 만들어 인간에게 손님으로 보낸다는 것이다. 어느날 크리스 캘빈에게는 그의 자살한 애인 하레이가 나타난다. 캘빈의 기억이 생명체로 물질화된 그 형성물혹은 손님은 자신이 누구인지, 왜 이곳에 있는지를 알지 못하는, 기억 속 원본에 대한 생물학적 복제물이다. 그 형성물은 원본과 조금도 다름없는 행동을 취하지만, 그것이 보유한 일반적인 능력과 한계치를 넘는 상황이 발생하면, 일종의 의식의 단절을 경험하고는, 갑자기 원본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며 초인적인 성향을 발휘하기도 한다.(228) 이를 경험한 인간은 처음에 솔라리스 바다의 이 행동의 동기나 목적, 의도가 무엇인지 따져묻는다. 이는 다른 생명체의 행동을 이해하려는 인간의 근본적인 태도다. 캘빈에게 하레이는 그가 사랑했던 여인이자 그녀의 자살에 캘빈이 큰 죄책감을 느끼던 대상이었기에, 캘빈은 자신 앞에 나타난 하레이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솔라리스 바다는, 인간이 그 의도나 깊이를 헤아리기 힘든 신과 같은 존재다. 그 신은 그러나 처음부터 인간을 모두 알고 있지 않기에, 인간과의 접촉을 통해 그들을 알고 상호작용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 가슴을 채웠던 묘한 감정에 주목해보자. 거대한, 그 안에 인간이 머무르고, 살아있게 하는, 끊임없이 부글거리며 주변의 것을 모방하고, 스스로 대칭체를 만들어내며 살아있는 존재, 인간에게 무관심하지도 그렇다고 시시콜콜 개입하지도 않으면서, 인간의 가장 깊은 기억으로부터 찾아낸 형성물을, 마치 갓 태어난 아기처럼, 발바닥에 굳은살도 없는 인간 신체로 만들어내는 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