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수 있는 세계

세월호와 이미지

김남시 2014. 7. 17. 21:24

연세대대학원 신문 204에 실린 글 “우리를 왜 죽였나요?”에서 한보희는 세월호 참사가 우리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준 이유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살려주세요!’라는 비명, 인간의 마지막 몸부림이 아무렇지도 않게 외면되는 장면을, 그것도 다름 아닌 국가와 정부, 기업처럼 우리 생활의 기초를 이룬다고 여겨온 것들에 의해 무시되는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가 하루종일, 눈을 떼지 못하고, 발을 구르며, 분노하면서 지켜보아야 했던 것, 보고 말아야 했던 것은 ‘살려주세요!’라는 마지막 몸부림이 외면되는, 그 고통스러운 장면이었다. 그것이 고통스럽고 치명적인 타격이었던 것은, 인간으로서의 우리의 근본적인 경험, ‘도움에 대한 기대’가 철저히, 처절하게 무시되는 장면을 함께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쟝 아메리는 자신의 고문 경험에 대한 글에서, 고문실에서 처음으로 구타를 당하는 순간 붕괴되는 세상에 대한 신뢰의 근본에는 ‘도움에 대한 기대’의 무너짐이 있다고 분석한다.

“도움에 대한 기대, 도움에 대한 신념은 실제로 인간이나 동물의 근본적인 경험에 속한다....도움에 대한 기대는 심리적인 구성요소인 동시에 존재를 위한 투쟁이다. 고통으로 신음하는 아이에게 어머니는 ”잠시만 기다려, 금방 따뜻한 우유를 줄게. 네가 그렇게 아프게 두지 않을 거야“라고 말한다. ”당신에게 약을 처방할 것이고, 그 약은 당신에게 도움이 될 겁니다“라고 의사는 환자를 안심시킨다. 전장에서조차 적십자의 앰뷸런스는 부상자를 향한 길을 찾아낸다. 삶의 거의 모든 상황에서 신체적 훼손에는 도움에 대한 기대가 뒤따른다. 신체적 훼손은 도움에 대한 기대로 균형을 잡는다. 그러나 경찰 주먹에 의한 최초의 일격에 대해서는 그 어떤 방어도 있을 수 없고, 어떤 도움의 손길도 막아줄 수 없으며, 그로써 우리 삶의 일부를 끝내고, 결코 다시는 일깨울 수 없게 된다.” (쟝 아메리, 죄와 속죄의 저편, 72쪽)

물 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배 속에서, 가만히 있으며,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라고 외치던 아이들. 그들이 가지고 있던 도움에 대한 기대를 우리는, 우리 모두는, 기울어진 세월호가 천천히 침몰하는 모습을 보고있던, 보고야 말았던 우리들은, 외면하고 말았다. 침몰하는 세월호의 이미지는 이를 통해 우리에게는 ‘인간의 근본적인 경험’의 붕괴, 세상에 대한 신뢰의 침몰과 같은 것이었다. 그건 배 속에 갇힌 아이들에 대한 제 3 자적 동정과 안타까움이 아니라, 나 자신이 거기에 속해있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근본적 환멸을 불러내는 이미지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