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수 있는 세계

"졸저"와 에른스트 카시러

김남시 2011. 6. 4. 09:11

에른스트 카시러의 주저 <상징형식의 철학>이 드디어 번역되어 나왔다. 그 책의 첫 페이지 서문 첫 문장은 이렇게 번역되어 있다.

 

  "이 책..의 첫 구상은 졸저 <실체개념과 기능개념>에서 집약된 연구에서 비롯된다." (카시러, 상징형식의 철학, 1권 언어, 박찬국 옮김, 아카넷 9쪽)

 

여기서 '졸저'라는 단어가 날 멈추게 했다. 한국(과 일본)의 몇몇 학자들이 자신의 책이나 글을 겸손하게 지칭할때 사용하는 이 표현을 독일 철학자 카시러가 썼던 것일까? 그랬다면 그에 해당되는 독일어 단어는 무엇이었을까? 하지만 오해마시라! 카시러는, 그리고 대다수의 서구 학자들은 자신의 책이나 글을 이런 식으로 겸연쩍게 지칭하지 않는다. 정말 그럴만한 '졸저'라면 그를 인용까지 하며 다시 부각시킬 이유가 없지 않은가? 자신을 드러내고 있으면서 '실은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제스쳐, 그를 통해 결국엔 자신의 학문적 성과와 그에대한 겸양함이라는 두 가지 덕목을 한꺼번에 암시하는  이 기묘한, 동아시아 아카데미즘의 글쓰기 관습. 번역자 박찬국 선생은 카시러가 자신의 책을 인용하는 대목에는 예외없이 이  "졸저"라는, 원문에는 없는 단어를 삽입함으로써 이를 에른스트 카시러라는 유럽 지식인에게 투사하였다. 번역자는 원문의 내용만 그대로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이렇게 원 저자를 실천적 맥락에서 변모시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