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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예술가는 가난해야 할까?

김남시 2018. 7. 9. 17:13

왜 예술가는 가난해야 할까. 한스 애빙.

 

 

이 책의 원제는 왜 예술가는 가난할까? why are artists poor?’ 이다. 이 질문에 대한 저자의 대답은 간단하다. 예술가는 지나치리만치 과잉공급 되어있다. 그건 예술과 예술세계에 관한 신화들 때문이다. 예술은 신성하고, 예술은 공공의 이익에 기여하며 따라서 반드시 인류에게 필요한 것이라는 신화, 예술가는 자유로운 존재이며, 오로지 스스로를 위해 헌신하고, 그의 성공은 재능과 노력에 달려있다는 신화, 재능과 노력만 있다면 누구나 예술가로서 성공할 수 있으며, 이 점에서 예술세계는 민주적이고 공정한 공간이라는 신화. 이 신화들이, 누구나 감지할 수 있는 예술가의 빈곤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예술가의 길로 몰려들게 한다. 예술에 부여되어 있는 과도한, 어떤 점에서 이 시대착오적인 가치가 젊은 예술가들로 하여금 자기착취와 희생을 감수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예술가가 가난한 이유는 예술을 매력적인 것으로 만드는 예술의 신화와 그에 의존하는 예술세계 자체에 있다.

그런데 국내에서 번역된 제목 왜 예술가는 가난해야 할까?’는 조금은 다른 뉘앙스를 풍긴다. 예술가는 가난하지 않을 수 있는데 어떤 예술 외적 요인들, 예를들어 자본주의혹은 부족한 예술정책이 예술가들을 가난하게 만들고 있다는 뉘앙스 말이다. 국내에 저자의 초청 강연이 개최되고 국내 일간지들이 그와 관련해 이 책을 소개했던 데에는 원제목의 문법양식을 바꿈으로써 생겨난 이 뉘앙스가 적지 않게 작용하였을 것이다. 경향신문은 서울문화재단 포럼에 초청된 그의 강연을 소개한 기사의 제목을 이렇게 뽑았다. “가난해도 된다고 누가 그래? 예술가들이여, 착취에 저항하라”. 하지만 이 기사 제목은 한스 애빙의 이 책을 꽤나 오해하게 만들기 십상이다.

한스 애빙에 의하면, 오늘날 예술가들의 구조적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예술에 대한 정부지원을 끊는 것이다. (예술에 대한 정부 지원 대신 애빙은 오히려 예술을 민간의 후원과 시장에 맡기는 편을 선호한다.) 저자에 의하면, 그간 많은 이들이 정부가 예술을 지원해야 한다고 요구하기 위해 내세웠던 주장들 - 예술은 공공재와 가치재로 인정되어야 하며 시장은 그런 예술의 가치를 보호할 수 없다 - 은 오류이거나 근거가 희박하다. 지금까지의 예술에 대한 정부지원은 예술가의 소득수준을 개선하기는커녕 오히려 예술가의 과잉공급을 낳아 예술가의 구조적 빈곤을 초래했고, 가난한 사람도 예술에 접근하게 하려는 정책의 혜택은 결국 중상위 계층에게만 흡수되었으며, 그를 통해 대중의 취향이 고급화된 것도 아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애빙(과 그의 책), 가난한 예술가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요구하기 위한 근거로 수용하려는 사람은 큰 낭패를 보게 될 것이다.

 

예술이 높은 지위를 학보하고 있기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이로 인해 전반적으로 [예술가들의] 소득수준이 떨어졌다고 설명할 수 있다....비금전적인 보상을 중시하고 위험을 감수하려는 예술가들의 성향, 오랫동안 퍼져있는 예술세계의 신화들과 잘못된 인식들로 인해 예술세계의 빈곤현상은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술세계의 빈곤을 해결하기 위한 정부지원이 오히려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정부의 지원 프로그램은 정부가 예술가들을 보호하고 있다는 상징적 효과를 만들어내고, 이 과정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고 모여들게 된다. 이는 결국 빈곤현상으로 이어진다.”(326)

 

예술의 신화와 그를 강화시킨 정부지원을 통해 과잉공급된 오늘날의 예술가들은 작품활동에 필요한 돈을 아르바이트 등 예술 외적 활동을 통해 충당한다. 이러한 점에서 오늘날의 예술가들은 특정 활동을 통해 돈을 버는 생산자라기보다는 작품 활동에 자신의 돈을 쓰는...소비자가 되는 셈이다. , 예술가들은 다른 일을 통해 벌어들인 수입을 작품 활동이라는 취미에 소비한다. 가끔 운이 좋아서 취미활동으로부터 돈을 벌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예술가들은 소비자의 역할을 맡고 있다. 따라서 실패한 예술가 혹은 가난한 예술가들은 불행한전문가가 아니라 행복한아마추어라고 볼 수 있다. , 예술가들을 작품 활동이라는 취미에 자신의 시간과 돈을 소비하는 거대한 아마추어 집단의 일원으로 볼 수 있다.”(171)

 

예술의 신화가 예술가의 과잉공급을 낳고 이로부터 유래한 예술가의 가난함이 다시 예술의 신화를 강화시키는 이런 악순환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 궁극적으로는 예술의 신화를 해체 혹은 극복해야 할 것이지만 이는 예술 그 자체를 붕괴시킬 위험과 결부되어 있다. 예를 들어 오늘날의 변호사나 의사들처럼 예술가에게도 엄격한 자격을 부여함으로써 그 수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더불어 소득도 적정하게 유지시켜주던 19세기 이전 예술가 조합 같은 단체의 도입은 현대의 중요한 예술가 신화 - ‘모두가 예술가’ -를 해체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 신화의 몇몇 구성 요소들에 대한 환상을 깨뜨림으로써 예술을 덜 매력적으로 만드는 일, 그로써 예술의 신화만을 믿고 예술가가 되려는 이들을 주춤하게 만드는 일은 가능할 터인데, 저자는 이 책에서 그 일을 한다.

 

사람들은 예술의 신성함을 믿고 있다. 하지만 예술세계의 실제 모습은 신성함과 거리가 있다. 예술은 두 얼굴을 가진 존재이다. 예술가들은 상업성을 거부하면서 동시에 상업성을 추구한다...예술세계가 자유로운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과 기회는 결코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사람들은 낙담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예술세계는 보이지 않는 장벽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예술세계의 승자들만이 내부에서 특권을 함께 누리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재능이 있다고 해서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예술에 대한 신화와 예술 세계의 현실적인 모습에는 큰 차이가 있다...나는 이 책을 통해 이러한 허상을 깨뜨리고 싶다.”(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