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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다 기타로, <선의 연구>

김남시 2026. 5. 31. 14:14
 
가브리엘의 신실재론이 제기하는 철학적 입장을 그보다 훨씬 간명하고 알기쉽게 이미 거의 100년전에 전개해놓았다. 주체와 객체,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을 넘어서는 실재에 대한 철학. 그 출발점은 ’순수경험‘ 혹은 ’직각‘인데, 무엇인가를 지각한다는 자기의식도, 그것이 ’무엇‘이라는 판단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다. 무엇인가의 근본적 의의를 직각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이전의,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앎이자 의지다. 제임스, 피히테, 헤겔, 쇼펜하우어, 버클리와 흄의 철학적 아이디어를 가져와 놀랄만한 존재론을 구축했다. 우리가 직각을 통해 무엇인가의 의의를 판단하는 것을 그저 ’주관적‘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주관과 객관, 정신과 자연의 이원론에 입각해있다. 여기서 주관과 객관, 정신과 자연은 ’통일력‘에 의해 통일되는 면과 통일하는 면에 대한 상대적 구별일 뿐이다. 유물론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을 ’물질‘이라는 개념 자체에서 찾는다는 점에서도 가브리엘 실재론과 같다. ’물질‘이란 이미 물질이 아닌 정신의 개념이니까.
 
니시다 키타로에 의하면 의식은 자신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기에 자유롭다. 내가 자유로운 건 디프레션을 내 의지대로 없앨 수 있어서가 아니라, 어느날 아침, 심한 디프레션이 날 내리누르고 있다는 걸 ’알고‘ 의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디프레션이 오고 가는 것 자체를 내 의지대로 컨트롤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는 오늘 디프레이션이 왔다는 걸, 기분이 좋지않고 모든 것이 부정적인 방향으로만 생각되고, 나 자신에 대한 환멸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온다는 걸 ’의식‘할 수 있게 되었다. 기타로는 이렇게 말한다. ”의식현상은 단순히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의식된 현상이다. 곧 의식현상은 생겨날 뿐만 아니라 생긴 것을 스스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안다고 하고 의식한다고 하는 것은 곧 다른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취득한 것을 의식한다는 것은 그 뒷면에 취득하지 않을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다는 뜻이다.“ (선의 연구, 168) 키타노는 무엇이 생겨났는가를 의식한다는 건, 그 배후에 그것이 생겨나지 않을 가능성을, 그것이 생겨나지 않았던 때 혹은 상태와 그것이 생겨난 상태를 비교할 수 있는 가능성을 포함한다고 말한다. 그는 그를 ’이상적인 요소‘라 정의한다. 그것이 ’이상적‘인 이유는 의식이 현실에 일어난 것이면서 그 현실/현재에 일어나는 사건 이외의 다른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내가 디프레션 상태라는 것을 의식하면서 동시에, 지금 현실에 일어나는 사건 이외의 다른 가능성, 곧 디프레션 없는 상태도 ’알고‘ 있다. 나아가 그를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하는지 – 달리기, 운동 – 도. 이런 반성이 가능하는 한, 나는 나의 디프레션을 컨트롤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 의식의 이런 ’이상적‘ 가능성이야말로 의식을 ’대상화‘함으로써 무엇인가를 행하는 의식이 온전한 ’순수경험‘에 몰입하지 못하게 하는 근본 원인이기도 하다.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를 의식하는 자는 ’순수경험‘을 하는 자가 아니다. 그는 이미 특정 범주와 개념으로 자신을 대상화하고 무엇인가를 경험하는 자신을 그 경험하는 자신 바깥에서 관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부족함이자 문제라고 생각하는 나는, ’순수경험‘에 대한 열망이 있다. ”예컨대 색을 보고 소리를 듣는 찰나, 아직 그것이 외부사물의 작용이라든가 내가 그것을 감각하고 있다는 식의 생각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색과 소리란 이러이러한 것이라는 판단조차 가해지기 이전의 상태“(선의 연구,15). 직접경험 혹은 순수경험, ”자기의 의식상태를 직접 바로 그 아래에서 즉각적으로 경험“하고 ”아직 주관도 아니고 객관도 아닌“, ”지식과 그 대상이 완전히 합일“하는 ”경험의 가장 순연한 상태“. 디프레션의 문제를 관련시켜 생각해보면 이런 질문이 제기된다. 내가 디프레션 상태임을 의식하는 상태는 결코 ’순수경험‘이 아니다. 디프레션의 순수경험이란 오히려 내가 디프레이션 상태라는 생각과 감각조차 없는 디프레션, 바로 그 아래에서 즉각적으로 디프레션과 합일해, 어떤 머뭇거림도 없이 자기 자신을 파괴해버리는 때. 그런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