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아니 사흘에 걸쳐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었다. 한글번역본으로는 그 함의를 제대로 포착할 수 없어, 전영애 선생의 파우스트 강연 영상을 보았고, 거기서 베를린에서 2000년 Peter Stein 의 연출로 총 21시간에 걸쳐 파우스트 1막과 2막 전체를 대사 그대로 연출한 공연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찾아보니 그 연극을 1부와 2부 합하여 10시간 짜리 TV 용으로 제작한 영상이 있었다. 그 영상을 보고나니 비로소 <파우스트>가 어떤 함의를 갖는지를 조금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파우스트는 지상에 사는 인간 – Erdsohn – , 적어도 이성을 가지고 분투하는 strebt 인간, 어두운 충동 dunkler Drang 에 쫓기더라도 올바른 길을 의식하는 좋은 인간 guter Mensch 에 대한 이야기다.
파우스트 번역본을 한차례 읽고 Peter Stein 이 연출한 연극, 하노버와 베를린에서 2001년 공연시에는 21시간이 걸렸던 연극을 다행히, 1부는 5시간, 2부는 6시간, 총 11시간으로 편집해놓은 영상을, 책을 대조하면서 함께 보았다. 텍스트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것을 ‘볼 수’ 있었고, 이 텍스트, 이 문장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가 좀 더 명확해졌다.
파우스트의 핵심 문장은 <Prolog im Himmel> - 하늘에서의 서곡 – 에서 부터 나온다. (하늘에서의 서곡에서 시작한 파우스트는 “Bergschluchten”(심산유곡)에서 끝난다. 그곳은 숲, 바위의 황량한 곳, 은둔 수도자들이 있는 곳이다. Peter Stein 은 이곳을 ‘하늘에서의 서곡’과 같은 하늘로 연출했다.) 메피스토펠레스는 신에게 메피스토는 자신이 인간을 괴롭히기‘ 보다는 “인간이 스스로를 괴롭히고 wie sich die Menschen plagen”, 그럼으로써 “징징거리며 한탄하며 Jammertagen ” 살아가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그는 신이 “천상의 빛의 가상 Schein des Himmelslichts”, 곧 “이성”을 인간에게 줌으로써 그들이 ‘짐승보다 더 짐승처럼’ 존재하게 했다고 불평한다. 그에게 파우스트는 그런 인간 중 하나로 “그 바보에게 음료와 음식은 지상의 것이 아니고 Nicht irdisch ist des Toren Trank noch Spese” “하늘에서는 더없이 아름다운 별을 원하고, 땅에서는 모든 최고의 쾌락을 원하니, 모든 가까운 것과 모든 먼 것이 깊이 요동치는 가슴을 만족시키지 않는다. Vom Himmel fordert er die schönsten Sterne. Und von der Erde jdede höchste Lust, Und alle Nähe und alle Ferne Befriedigt nicht die tiefbewegte Brust.“
메피스토펠레스가 보기에 파우스트는, 스스로를 괴롭히는 인간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하늘에서 최고로 아름다운 별을 요구할 뿐 아니라 ”땅에서도 최고의 쾌락을 요구“한다. 그는 쾌락을 거부하며 하늘의 별만을 추구하는 인간이 아니라, 그 어떤 것으로도 만족할 줄 모르는, 그를 통해 스스로를 괴롭히는 인간의 대표인 것이다. 인간의 이러한 본성이 ‘추구 Streben’이다. 여기 나오는 신은 그를 잘 이해하고 있다. 그는 ”인간은 추구하는 한 방황하기 마련이다 Es irrt der Mensch so lang er strebt“라고 말한다. 그러니 인간이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길을 잃고’, ‘자신을 괴롭히는’ 건 ‘천상의 빛의 가상’인 이성을, ‘정신 Geist’을 가지고 있는 한 마땅한 일이며, 그럼에도 ”선한 인간은 자신의 어두운 충동 속에서도 올바른 길을 잘 알고 있다 Ein guter Mensch, in seinem dunklen Drange, Ist sich des rechten Weges wohl bewußt.“
1부 1막은 바로 이런 인간의 대표로서 파우스트가 ‘징징거리며 한탄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는 수십년 간 온갖 학문을 파고들어도 무엇인가를 제대로 안다고, 무엇인가를 가르칠 수 있다고, 인간들을 더 낫게하고 교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없는 인간, 그러면서도 “모든 즐거움”도 모른다고 절명한다. 자연과 생명을, 가슴으로 느끼고 싶어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는 자신에게 절망하고 죽으려까지 한다. 서재에서 나와 거리에서 활기찬 사람들을 만나서 비로소 “사람일 수 있음”을 느낀다. ‘말’이 아니라 ‘행위 That’를 태초의 출발로 여기고 싶어하면서도 정작 스스로 그를 행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 좌절한 그는, 직접 지상의 삶 속에 뛰어들어야만 얻을 수 있는 “고통스러운 쾌락 der schmerzlichster Genuss, verliebter Hass, erquickender Verdruss”를 위해 메피스테펠레스와 계약을 한다. 파우스트는 이렇게 말한다.
“위대한 정신은 나를 경멸하였고, 자연은 내 앞에서 문을 닫아버렸네. 사유의 끈은 끊어졌고, 지식이라면 신물 난지 이미 오래일세. 감각의 깊이에 취해 불타오르는 열정으로 마음을 달래보세. Vor mir verschließt die Natur. Des Denkens Faden ist zerrissen, Mir ekelt lange vor allem Wissen. Lass in den Tiefen der Sinnlichkeit Uns glühnende Leidenschaften stillen....시간의 도취 속으로, 사건의 소용돌이 속으로 돌진하세 Stürzen wir uns in das Rauschen der Zeit, Ins Rollen der Begebenheit. Da mag denn Schmerz und Genuss, Gelingen und Verdruß miteinander wechsel, wie es kann.”
메피스테펠로스와 계약을 할때 이미 파우스트는 지식에 대한 신물 때문에, 시간의 도취와 주어진 것의 소용돌이 속에 뛰어들고 싶어했으며, 그것이 어떤 고통과 회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Der schmerzlichste Genuss, Verliebter Hass, erquickender Verdruss. 그가 그레첸을 만나 앞 뒤 가리지 않고 격정적인 사랑을 하고 그로인한 고통을 겪고, 헬레나를 사랑해 격한 질투에 빠지고, 잠시 그녀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아들의 죽음을 겪고, 바다를 개간하는 중 선한 노부부를 죽게 만드는 일, 이 모든 일들이야말로 시간의 도취이자 사건의 소용돌이이며, 지상의 아들로서 그가, 악마와의 계약을 통해서라도, 하고 싶어했던 바로 그것이었다.
현재에 만족할 줄 모르는 인간을 안타까워한 메피스테펠레스가 파우스트에게 제안하는 건 바로 그 현재에 만족하는 것이고, 그것은 “Verweile doch, du bist so schön!”이라는 문장으로 표현된다. 파우스트는 자신은 어떤 경우에도 현재에 만족하지 않는, 늘 현재에 없는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인간이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레첸에 대한 그의 사랑은 맹목적이었다. 그는 그레첸의 가족, 그녀의 상황, 거기에서 생겨날 수 있는 위험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오로지 그녀를 만나고 사랑하고, 급기야 임신시키게 될 정도로 그 사랑에 열중한다. 마찬가지로 헬레나에게 마음을 빼앗긴 그는 하데스 – 어머니들 – 에서 그녀를 찾아오고, 신비로운 과정으로 그리스 세계에서 그녀와 결혼할 정도로 거기 매달린다. 그러나 인간의 사랑-에로스-은 인간을 그 순간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현재 순간에의 만족은, 현재에는 없다. 그것은 과거 - 그럴 수 있었던 것 – 나 미래 - 그럴 수 있을 것- 에만 있다. 순간 Augenblick 에의 만족은, 그럴 수 있었을 과거의 순간에 대한 회억 Eingedenekn 혹은 그럴 수 있을 미래의 순간에 대한 기대섞인 예감에만 있다.
늙고 눈이 번 파우스트는 자신의 무덤을 파는 소리를 바다를 개간하는 일군들이 일하는 소리로 착각하고, 미래에 펼쳐질 자신의 꿈을 상상한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그의 마지막 대사를 내뱉는다.
“그렇다. 나는 이 뜻을 위해 헌신하고, 이것이야말로 지혜가 내리는 최후의 결론이다. 날마다 자유와 삶을 쟁취해야 하는 자만이 자유와 삶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것. 그렇게되면, 위험에 둘러싸여 있지만 umrungen von Gefahr, 어린아이, 젊은이, 늙은이가 이곳에서 건실한 tüchtig 시간을 보내리라. 나는 그런 북적거림 Gewimmel 을 보고 싶네, 자유로운 땅 위에 자유로운 사람들과 더불어 서는 것. 그 순간을 향해서라면 나는 말할 수 있으리라. ‘Verweile doch, du bis so schön!’. 지상에서 나의 시간들 Erdtagen의 흔적은 영겁 Äon으로 사라지지 않을 거네. 그렇게 드높은 행복을 예감하며 im Vorgefühl 나는 지금 최고의 순간을 향유하노라.”
Ja! diesem Sinne bin ich ganz ergeben,
Das ist der Weisheit letzter Schluß
Nur der verdient sich Freiheit wie das Leben,
Der täglich sie erobern muß
Und so verbringt, umrungen von Gefahr,
Hier Kindheit, Mann und Greis sein tüchhtiges Jahr.
Solch ein Gewimmel mht ich sehn,
Auf .eiem Grund mit .eiem Volke stehn.
Zum Augenblicke dürfte ich sagen:
.Verweile doch, du bist so schön!
Es kann die Spur von meinen Erdetagen
Nicht in Äonen untergehn.” .
Im Vorgefühl von solchem hohen Glück
Genieß ich jetzt den höchsten Augenblick.
이 말을 하고 죽은 파우스트의 영혼은, 계약의 유효성을 주장하는 메피스토펠레스의 무리들로부터 ‘탈취’된다. 천사는 이렇게 말한다. “언제나 추구하며 애쓰는 자는, 우리가 구원할 수 있다 Wer immer strebend sich bemt, Den könen wir erlösen”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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