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dergarten

사회 속에서 예술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김남시 2014. 5. 8. 09:00

세월호 사건은, 또한 우리 사회에서 예술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잘 드러나지 않던 중요한 쟁점들 몇 가지를 가시화시켰다. 그것은 ‘예술은 무엇을 해서는 안되는가’라는 질문으로 수렴될 수 있다.

첫째, 적지 않은 수의 공연이나 음악 페스티벌이 취소되거나 연기되었다. 이런 행사들이 사회적인 애도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자기우려 혹은 과시적 우려가 작동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음악인가? 전문 음악인들에게 음악은 그들의 생업이자 삶의 활동이다. 우리는 세월호에 대한 사회적 애도의 차원에서 다른 직업이나 업종의 사람들에게 그들의 생업과 활동을 유예하거나 취소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심지어 노래방이나 술집과 같은 ‘유흥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러한 요구는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음악인들에게는 왜 그런가? 음악이, 사회 내에서 음악인으로서의 존재조건과 활동방식은, ‘보다 더 중요’하고, ‘심각’한 일이 있을 때는 그들의 생업을, 그들의 생활을 잠시 ‘유보’하고, ‘취소’해도 되는,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둘째, 적지않은 수의 음악공연이나 페스티벌이 취소나 연기되고 있는 반면, 어떤 미술 전시회가 이번 사고로 인해 취소, 연기되었다는 말을 들은 적은 없다. 왜 그런가? 음악과 미술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미술관에서 열리는 미술 전시회가, 공연장에서 열리는 음악 페스티벌에 비해 그만큼 가시적인 사회적 영향력이 미미하기 때문인가?

세째, 세월호 참사가 알려졌을 때 경기 도지사 박문수가 자신의 트위터에 시를 올려, 크게 비난을 받은 바가 있었다. 그런데, 이후 시인들이 세월호와 관련된 시를 발표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그런 비난이 없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생겨나는 것인가? 박문수가 시인이 아닌 ‘정치가’이기에? 정치가가, 당장 구조 조치를 취하여야 할 그가, 애써 말을 고르고, 운율과 행을 맞추는 ‘시’를 쓰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기 때문인가? ‘시’가, 시의 본령이란 그렇게 시간을 들여 말을 고르고, 다듬고, 그 말들을 배열하는 작업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만일 우리가 시작(詩作)이라는 행위 자체가 갖는 이러한 비시급성 혹은 “진지하지 않은” ‘여유로움’을, 현실적 사태와 사안의 시급성, 중요성, 진지성과 대비시키고 있다면, 이미 그것은 시와 시인의 작업에 대한 경멸적 관점을 내재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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