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dergarten

아이와 이불

김남시 2010. 9. 26. 23:40

아이들 방에 문을 열고 들어가 보았다. 아이들은, 놀다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봉제 인형처럼 잠들어 있다. 반쯤은 베고, 또 반쯤은 깔고있는 저 낡은 이불은 녀석이 태어났을 때부터 '가지고 다니는' 것이다. 녀석이 난생 처음으로 접했던 이불과, 또 녀석이 난생 처음으로 보았을 집과 침대는, 녀석이 난생 처음으로 만났던 아빠나 엄마처럼 실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난생 처음'이라는 딱지를 뗀 모든 물건들 중에서도 그 이불 만큼은, 9살이 된 녀석에게도 여전히 그 '난생 처음'의 관계 속에 있다. 아이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저 먼 독일에서 여기까지 함께 날아온 그 이불은 지금 바닥에 누워 인형처럼 잠자고 있는 아이의 몸을 감싸고 있다. 난 그 이불을 끌어 아이를 덮어준다. 자고 있는 아이에게 이불을 덮어주면서 내게도 그런 이불 하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날 감싸주던 무언가의 속으로 잠잘때마다 파고 들어갈 수 있다는 건 참 좋을 것이기에. 하지만, 언젠가 아이는 그 나이가 되도록 말 그대로 거기에 '매달려' 있었다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그 이불로부터 '난생처음'의 집착을 거두어들일 것이다. 그러면 지금은 아이를 덮어주고 있는 저 이불은 흰 솜이 바깥으로 보기 흉하게 삐져 나오는 낡고, 냄새나서 창피한 할아버지처럼 쪼그라들어 아이에게 외면당할 것이다. 그러면 난 이불로 아이를 덮어주면서 나를 덮을 기회도 갖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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