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dergarten

아이와 시선

김남시 2008. 12. 17. 05:53

아이들은 누군가를 바라보는 시선의 공격성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그들이 보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보고자 하는 욕구가 충족될 때까지 보려고 한다. 대상이 나무 둥지에 벌겋게 달라붙어 있는 딱정벌레들이건, 장난감 가게 진열창에 있는 기차건, 대낮 버스 정류장에서 와인병을 들고 술을 마시고 있는 노숙자들이건, 젖먹이를 안고 구걸하는 루마니아 여인이건, 전동 장치로 움직이는 휠체어에 장애인이건, 찢어진 스타킹 위에 짧은 치마와 투구 머리를 펑크족이건, 아이들은 가리지 않는다. 아이들은 자신의 시선이 타인들에게 스스로를 의식하게 하는, 어쩌면 그들에겐 고통스럽고, 창피할수 있을 자기의식을 불러내는 공격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현대 도시인들이 매일 같이 버스와 지하철, 승강기와 거리에서 실천하고 있는 타인에 대한 „예의바른 무관심“을 익히지 못한 아이들의 시선은, 어딘가 눈에 띄이는 헤어스타일을 하고, 무언가 유별난 옷을 입고,  조금만 특이한 신체 구조와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을 발견하면 곧바로 그리로 달려간다. 그러면 황급하게 아이들의 „예의바르지 못한“ 시선을, 대상들에 달라붙어 좀처럼 떼어지지 않으려는 시선의 욕구를 차단하고, 중단시키려 노력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 그렇게 쳐다보는 아니야..



아이들의 이러한 질긴 시선의 욕구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순간 무엇인가를 바라보려는 욕구와 하나가 되어있는 아이들의 시선은 아직, 자기 자신의 가시성을,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시선이 다른 사람에게도 보여질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누군가를 바라보는 순간 아이들은 스스로 투명한 시선과 동화되어 있다. 타인의 가시성을 향해있는 아이들의 시선은 타인의 시선을 통해 감지될 자신들의 가시성을 반성적으로 의식할 만큼 ‚사회화’되지 못했다. 우리가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고, 옷을 챙겨입을 때마다 확인하는 타인에게 보여지는 우리 자신의 가시성을 아이들은 아직 우리만큼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나) 바로 그것이 아이들을 ‚아이들’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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