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적 인간

<나는 록의 전설이다>. 성공한 연예인의 배고프고, 힘겨웠던 이야기...

김남시 2011. 9. 12. 23:31

<나는 록의 전설이다>를 보았다. 신대철, 임재범, 김태원, 백두산, 윤종서 등 한국 락커들의 인생극장 쯤이 그 포맷이었다. 그들은 락이라는 비대중적이고 배고픈 음악에의 열정에 자존심을 세우다 배가 고팠던 경험들을 이야기했다. 임재범은 12천원짜리 탕수육-짜장면 세트를 사먹기 위해 아내와 얼마나 오래 결심을 해야 했는지, 난방비가 없던 겨울날 다섯 살짜리 딸의 아빠, 너무 추워라던 말을 듣고 어떤 격정을 삼켰어야 하는지, 특유의 무겁고 진지한 표정과 목소리로 이야기하였고 그를 보는 우리들은 어떤 감정에 눈시울이 뜨꺼워 지는 걸 느낀다. 둘러보면 요즘 한국에서는 유명 연예인들의 배고프고, 힘겹고, 고통스러웠던 과거라는 이야기 포맷들이 꽤 많이 유통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그러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가 느끼는 이 뜨거워지는 눈시울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 이야기가 주는 그런 감정에는 지금 그들은 그 배고픔, 힘겨움으로부터 벗어나 성공한 인물이라는 의식이 함께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거기에는 우리 자신도 열망하고 있는 사회적 성공, 그가 도달해 있는 사회적 지위에 대한 우리의 욕망이 함께 투사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도 거기에 도달하고 싶기에, 아니 그 욕망으로 인해 현재의 배고프고, 힘겹고, 고통스러운 삶의 시간을 보내고 있기에, 저 성공한 자들이 회고하는 배고프고, 힘겹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더 감격스럽고,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 우리는 지금 우리들의 배고픔, 힘겨움과 고통을 위로받으려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성공하지 못하고 지금도 여전히 배고프고 힘겹게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우린 이런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 좀체 대중 미디어에서 접하기도 힘든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연민을 불러낼 것이다. 연민은 그들에 비한 우리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함으로써 나오는 안도의 감정이며, 그를 통해 확보된 그들과 우리 사이의 내적 거리감을 우리는 때로는 불쾌함으로, 때로는 휴머니즘적 동정으로 채우는 것이다. 그렇기에 여기에는, 성공한 연예인의 배고프고 힘겨웠던 과거 이야기를 들을 때와 같은 강도높은 공감은 이루어지기 힘들다. 인내와 배고픔의 시간을 눈물 흘리며 회상하는 연예인들을 통해 우리는 어떤 감정을 소비하고 있는데, 그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는 낡은 이름 하에 포장되어 있는 의혹스럽고, 의심스러운 감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