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과 문화

물건, 화폐, 신용카드

김남시 2011. 7. 5. 10:06

애초에 나는 물건을 생산하던 생산자였다. 우린 그 물건을 들고 시장에 나와 그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건네주고, 내가 필요하는 물건을 댓가로 받았다. 나는 나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그 생산품을 직접 나의 손으로 제작하였고, 물물교환을 통해 그를 내가 필요한 다른 물건으로 바꿀 때에도 그건 나의 손과 몸을 거칠 수 밖에 없었다. 나와 나의 물건은 촉각적 방식으로 서로 관계 맺고 있었다.

 

나의 노동생산물이 보편적인 교환의 매체인 화폐로 바뀌고 나서도, 나의 손/몸과 화폐의 관계는 이러한 물질적 접촉에 의한 촉각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화폐를 - 혹은 이후 이것이 좀 더 가벼운 지폐로 바뀌고 나서도 여전히 - 나의 몸에 지니고 있어야 했고, 그걸 내 손으로 붙잡고, 헤아려 상대방의 손에 직접 건네주었다. 내가 노동을 통해 직접 물건을 생산하지 않고, 내 노동력의 댓가를 돈으로 받는 임금노동자가 된 뒤에도 돈과 나와의 촉각적 관계는 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나의 노동이 거칠고 힘들수록 그 댓가로 내가 받는 돈은 더욱더 나의 품에서, 나의 주머니에서, 땀에절은 나의 손에서 나의 육체를 접하는 일이 많았다. 다른 상품을 구입하기 위해 그 돈을 내 주어야 했을때, 그를 쥔 나의 손은, 이제 나와의 촉각적 관계에서 영원히 벗어날 그 돈에 대한 애착으로 보이지 않게 떨려야 했다.

 

신용카드는 돈에 대한 나의 촉각적 관계에 결정적 변화를 가져왔다. 난 더 이상 내가 벌어야 하는 돈과 육체적 접촉을 하지 않는다. 돈은 통장에 찍힌 숫자로, 내게는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가상적 가치로만 존재한다. 그럼에도 밥과 담배와 맥주와 교환되어 나의 배를 채워주는 저 보이지 않는 돈의 가치에 대해 나는, 거의 종교적 경탄에 가까운 감정을 가지게도 된다. 그렇게 가상화되어버린 돈을 대신해 나와 관계를 맺는 건 그런 가상적 가치를 담지해주는 물질적 담보물인 신용카드다. 구겨지거나 딸랑거리지 않으면서 내 지갑에, 내 주머니에 숨겨져 있는 신용카드에 대해 내가 갖는 관계는 여전히 촉각적이다. 난 그를 손으로 붙잡아 끄집어내고, 다시 손으로 잡아 도로 집어 넣는다. 하지만 그 신용카드가 내게 밥과 담배와 맥주를 교환해 주는 방식은, 돈이 그 일을 하던 때와 비교하면 무척 세련되어 있다. 난 냄새나거나 딸랑거리는 돈을 손으로 헤아릴 필요도 없으며, 그를 상대방의 손 안에 직접 건네줄 필요도 없다. 나는 카드를 꺼내어, 기계에 대고 긁는다 혹은 긁게한다. 그러면 그 놀라운 메커니즘을 통해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고, 헤아리고, 그를 넘겨주고, 거스름돈을 받고, 다시 내 주머니에 집어넣는 모든 복잡함은 깔끔한 한 번의 손동작으로 해소된다.

 

그럼에도 여기에는 아직 지불하는 주체인 나의 능동적 움직임이 남아있었다. 돈을 지불하는 이 복잡한 손/몸동작을 극히 단순하게 축소시켰기는 하지만 카드를 기계에 긁는 손동작은, 그를통해 나에게 - 엄밀히 말하면 나의 계좌에 - 있던 돈을 상대에게 넘겨주는 가치이전이라는 사회적 행위를 대리하고 있었다. 카드를 기계에 긁는 이 최소한의 손동작은, 마치 판결을 내리는 재판장의 망치질처럼, 그를통해 지불이라는 사회적 행위가 수행되었음을 상징적으로 선언하는 수행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몇 년전부터 카드를 “긁는” 이 작은 손동작은, 그저 기계에 카드를 “갖다대는” 훨씬 미약한, 훨씬 수동적인 손동작으로 대체되었다. 이제는 지불하기 위해 내가 해야할 일은, 나의 카드를, 지갑에서 꺼낼 필요조차 없이, 그러니까 나의 카드와 기계 사이의 물리적 접촉도 없이, 센서가 부착된 기계 주변에 살짝 가까이 가져가는 것 뿐이다. 그러면, 삑하는 신호음과 함께 나의 카드로부터, 나의 소유였던 가치가, 저 마법사의 구슬같은 기계 속으로 마치 영혼이 빠져나가듯 빨려들어간다.

 

이를통해 일어나게 된 일은 여러가지다. 이제 지불이라는, 애초에는 무겁고, 노동의 땀, 수고, 그리고 그와 결부되어 연상되는 모든 ‘냄새나는’ 삶의 고난들은, 카드를 기계에 가져다 대는 우아한 손동작 하나로 해소된다. 삑하는 전자음과 더불어 아무 물질적 저항도 없이, 미끄러지듯 빠져나가는 나의 돈에 침전되어 있을 나의 노동, 고통 혹은 자괴감은 이제 아무에게도, 전혀, 눈에 뜨이지 않는다. 나아가, 카드를 긁는 행위가 갖고있던 최소한의 능동성이 그저 카드를 가까이 갖다 대기만 하는 것으로 축소된 것은 (내)게 속해있던 돈의 순환 속도를 그만큼 더 빠르게 만든다. 내가 싸인을 하지도, 능동적으로 카드를 긁기위해 내어주지 않아도, 나의 돈은 판매자에게 이전된다. 손동작이 단순해 졌을 뿐 아니라, 어떤 물리적 ‘접촉’이 없이도 일어나는 돈의 신속한 순환은, 그만큼 소비행위를 가속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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