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과 문화

엘리베이터 공동체

김남시 2011. 1. 11. 11:43

고층 건물들로 둘러싸인 도심지 일상 한 복판에서 하루에도 수십, 수백번씩 생겨났다 해체되는 공동체가 있다. 우연적이고, 일시적으로 이루어지나, 현대 사회의 삶의 조건에선 찾기 힘든 많은 공동체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이 공동체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거나 내려오는 짧은 순간에, 엘리베이터에 함께 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만들어진다.

 

이 엘리베이터 공동체는 우연적 발생과 지속의 일시성을 특징으로 갖는다. 우린 누가, 언제 이 공동체에 새로 결합하게 될 지 사전에 알 수 없다. 내가 엘리베이터를 탑승하게 된 시간과 ‐ 복수의 엘리베이터가 있는 경우 경우 – 내가 우연히 선택한 엘리베이터에 의해, 내가 누군가와 함께 저 일시적이고 우연적인 공동체를 만들게 될지 결정된다. 그리고 이 공동체의 구성원은 그들이 각자 자신의 목표점에서 하차하고, 다른 누군가가 새로 탑승함으로써 늘 갱신된다.

 

이들 사이의 공동체적 상황을 형성하게 하는 가장 큰 조건은 무엇보다 엘리베이터의 좁은 공간이다. 쇼핑센터에서, 회사 빌딩에서 이 공동체에 결합하게된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시간에, 같은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다른 사람들과 좁은 공간을 공유해야한다. 이 좁은 공간으로 인해 육체적 근접성을 강요받는 엘리베이터 내의 사람들은, 이를통해 도심 일상의 다른 공간을 지배하고 있던 익명적이고, 먼 거리의 인간관계의 기본 원리에 정면으로 반하는 사람들 사이의 공간적 관계에 들어서게 된다. 엘리베이터 속에선 개인들이 평소에 확보하고 있던 사적 영토는 최소한도로 축소되며, 어쩔수 없이 서로의 몸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서게되는 사람들은 이를통해 개인들의 사적 삶의 영토에 다가가게 된다.

 

엘리베이터의 이 좁은 공간은 엘리베이터 내의 사람들에게 서로에 대한 배려를 강요한다. 좁은 공간 속에서 서로에게 마련된 사적 영토를 축소시키면서도, 함께 공간을 공유해야 하는 사람들이 어렵사리 마련해놓은 서로간의 공간적 질서는 새로 누군가가 엘리베이터에 탑승할때마다 재구성된다. 새로 누군가 엘리베이터에 탑승할 때마다 이전에 탑승해있던 사람들은 모두 조금씩 몸을 움직여 자리를 마련해주어야 하는데, 이렇게 늘 새롭게 구성되고 재 구획되는 공간적 질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있는 모든 사람들의 공동적이고 상호적인 고려와 배려를 전제로한다. 그리고 이는 이 우연적이고 일시적인 엘리베이터 공동체에 비록 일시적이지만 하나의 공동체로서의 의식을 갖게하는 첫번째 시발점이 된다.

 

지금 현재 잠시 엘리베이터를 타고있는 사람들은 아직 거기 결합하지 않은 성원을 향한 일시적인 배타적 공동체가 되기도 하며, 그를 통해 공동체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이미 승객이 꽉찬 엘리베이터에 누군가 또 탑승하려다 경고음이 울리는 순간, 이미 엘리베이터에 승차한 사람들 사이에선 비록 일시적이나마, 아직 승차하지 않은 엘리베이터 밖의 사람에 대한 배타적 소속감이 생겨난다. 경고음이 이 공동체를 아직 승차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 배타적으로 경계지우는 순간, 엘리베이터 내부와 그 외부사이에는 일시적인 공동체의식을 통해 구획지워지는 경계가 만들어지며, 역으로 엘리베이터에 승차하려다 경고음이 울려 승차하지 못하게 된 사람은, 일시적인 저 공동체로부터의 탈락감을 감수해야만 한다.

 

때때로 사람들로 꽉찬 엘리베이터에선 우연하게 계기판 옆에 서게된 누군가가, 다른 사람들을 대신해 하차 단추를 눌러주어야 한다. 꽉찬 사람들로 번호판을 누르지 못하는 사람은, 그 사람에게 그를 대신 해 줄 것을 부탁해야하는데 이를통해 엘리베이터는 다른 곳에서라면 이루어지기 힘든 ‚구어적 대화’를 가능하게 하기도 한다. 우연하게 다른 사람을 대신해 그의 행선지 단추를 눌러주어야 하는 이는, 이를통해 마치 우연하게 다른 사람들에 의해 선출된 선장과 같은 역할을 담당한다.

 

이 우연적이고도 일시적이며, 매 층마다 새롭게 갱신되는 엘리베이터 공동체를 하나의 운명 공동체로까지 급상승시키는 돌발상황도 존재한다. 엘리베이터가 고장으로 정지하거나 사고가 나는 경우, 말 그대로 한 상자 안에 처해있는 이들은 도시 화 이전에는 가능하지 못했던 전적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의식하게 될 것이다. 도심지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예측하지 못할 어느 순간 우리 곁에 있는 전혀 모르는 이 사람들과 운명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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