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과 문화

감시 카메라와 네비게이션

김남시 2010. 8. 6. 22:21

 

오늘날 우릴 행위하게 하는 건 실재라기 보다는 실재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다. 예를들어, 고속도로 곳곳에 달려있는 속도감시 카메라가 운전속도를 줄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면 그것은 그 카메라가 과속하는 차량들을 실제로 적발해 벌금을 내리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것이 과속 차량들을 찍고 있다는 그에 대한 사람들의 앎에서 생긴다. 그 카메라는 실제로는 작동되지 않는 것이어도, 단지 카메라 모양의 장난감이어도 좋다. 운전자들이 그 카메라에 부여하고 있는 앎 저것이 과속 차량을 적발해 벌금을 날린다 만 있다면 그들은 그 앞에서 속도를 줄일 것이다.

 

오늘날 차량 운전의 상용품이 된 네비게이션은 속도 감시 카메라를 거의 1키로미터 앞에서부터 미리 알려주며 경고한다. 그때부터 네비게이션은 화면 전체를, 컴퓨터 게임에서 총에 맞거나 사망 직전에 등장하는 검은 화면으로 명멸시키면서 요란하게 경고한다. 그런데, 속도감시 카메라를 미리 경고해주는 네비게이션은 그 감시 카메라의 실재성을 또 한번 약화시켰다. 네비게이션의 사전 경고를 보고 속도 감시 카메라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속도를 줄이는 운전자에게는 그 감시 카메라의 실재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네비게이션의 경고만 있다면, 운전자들은 자기 차량 외부세계에 감시카메라가 실재로 존재하지 않더라도 속도를 줄일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이행과정은 이제외부에 실재하면서 제대로 그 기능을 발휘하는 카메라라는 실재가, 고속도로에서 속도를 줄이게 하려는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하게 하는 데는 부차적 역할만을 수행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실제 속도 위반 차량을 촬영하는 카메라의 기능성 보다는 그에대한 운전자의 앎이, 나아가 실재 그런 카메라의 존재 보다는 그 존재를 사전에 알려주는 네비게이션의 경고가 차량의 속도를 줄이게 한다. 실재 그 자체, 이 경우에는 본래적으로 기능하는 카메라는 일종의 실재의 허수아비처럼 저 곳에 서 있다. 그리고 사람들의 행동을 실지로 일으키는 것은 그에 대한 매개된 정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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