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적 인간

먼 곳을 향한 꿈. tele-vision

김남시 2011. 1. 28. 09:45

주말에 모처럼 피자집에서 저녁을 먹고 아이들과 함께 동네 찜질방에 갔다. 오랫동안 쌓인 피로도 풀어보고, 또 아이들이 좋아하는 물놀이도 해볼 심산이었다.  그런데, 편안하게 누워서 조용히 소설을 읽으며 쉬어려던 나의 나이브한 바램을 무참하게 박살내 버렸던 것은, 찜질방 홀을 제압하고 있던 커다란 테레비젼 화면이었다. 피자집 천정에 매달려 있던 텔레비젼 화면이 스파게티를 먹던 아이들의 시선을 끊임없이 낚아채는 바람에 입 속에 들어가야 할 토마토 소스가 새로 꺼내입은 셔츠 위로 낙하 하는 것에 불만이었던 나는, 이제 ‘휴식’을 위해 찾아온 찜질방에서 그보다 더 크고 더 강하며, 더 노골적인 상대와 맞닥뜨린 것이었다. 그 거대한 테레비젼은 듣지 않을 수 있는  권리를 폭력적으로 박탈하면서 찜질방 홀의 모든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있었다.

 

피자가게와 찜질방, 지하철 역, 심지어 대학 기숙사 식당 등 한국에서 그 어디에 가도,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나 편재하는 테레비젼 모니터는, DMB 의 덕택으로 개인들의 시선과 주의를 사적이고 개별적으로까지 장악하고 있다. 그를 통해 우리는 지하철에 같이 타고 있는 옆사람, 다음 역에서 내리고자 하는 다른 승객들의 ‘물리적 현존’ 보다 저 먼 곳 "tele" 에서 보이지 않게 우리의 몸을 뚫고 날아오는 오는 디지털 신호에, 그것이 만들어내는 팬텀과 같은 그림들에 우리의식을 내맡긴다. 우리의 지친 몸은 지하철에 흔들리며, 옆 사람의 육체와 그의 입냄새에 부딪히면서도, 우리는 이 작은 모니터를 통해 이보다 더 크고, 멋지고, 화려한 ‘먼 세계’ 속에 빠져있다. 가까운 곳, 내 옆의 물리적 현존이 날, 내 몸을 위협하고, 밀치고, 잡아당기고, 공격하는 현실이라면, 내가 손에 쥔 모니터 속의 세계는 내게 웃음을 주고, 꿈을 꾸게하고,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여기가 아닌 저 곳을 상상하게 하는 출입구다. 그렇게 도처를, 모든 곳을, 모든 장소를 장악하고 있는 테레비젼으로 인해 우리는 그 만큼 많은 '먼' 꿈들을, 우리의 꿈과, 우리의 현실을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상상적 미래를, 만원 지하철에 시달리는 현재의 나를 비웃게 할 미래의 커리어를, 지금보다 멋진, 여기보다 아름다운, 내 옆에 선 남자의 불쾌한 입냄새가 없는 남자를, 내 앞 여자의 허리 군살이 없는 여자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