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적 인간

보험과 memento mori

김남시 2009. 8. 13. 15:13



근대에 들어와 그전까지 공공적인 성격을 지니던 죽음이 사적인 것으로 변화하고, 공공적 가시성으로부터 배제되어야 할 것이

되었다는 아리에스의 주장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절반만 들어맞는 이야기다. 왜냐하면 오늘날 죽음은 그 어느때 보다도

더 공공연히 이야기되고, 소리 높여 외쳐지면서 공공의 가시적 영역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 누구나 한 번은 맞이해야 하는, 따라서 살아있는 사람 수 만큼의 잠재적 소비 가능성을 보장해주는 죽음은, 

모두가 죽음을, 그것도 자기 자신의 죽음의 경제적 귀결을, 지금, 살아있는 동안 미리 생각하고, 준비하도록 요구하는

보험상품들의 막강한 후원자다.


"당신이 죽은 후의 가족들을 생각하지 않는 당신은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이기적 인간"이라는 메시지와 더불어, 보험상품들은

그 어느 시대보다도 죽음을 가장 세속화된 형태로 공공화시켰다. 이제 우리들은 살면서 '죽음 이후'를 위해 돈을 지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Memento mori라는 중세의 모티브가 그를통해 삶의 덧없음에 대한 통찰을 통해 삶으로부터의 관조적 거리감을 낳게 했다면,

오늘날 보험 상품들이 외쳐대는 memento mori는 바로 그 '삶', '먹고 살기 위한 밥벌이'로서의 삶에, 한 치의 여유도 없이

바짝 밀착하게 한다. 밥벌이로서의 삶은, 그 가장 큰 적대자였던 죽음까지도 '식민화' 시켜 버린 것이다.


 





'미학적 인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동을 거부하라" 판매 보고서   (0) 2010.02.07
synecdoche Newyork   (0) 2010.01.22
인간에 대한 자본주의적 무례함  (0) 2009.08.01
쇼핑몰에서   (0) 2009.07.27
"지구를 지켜라"와 "밀양"  (0) 2009.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