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수 있는 세계

쟝 아메리 Jean Améry. 늙음과 죽음, 자살에 대한 사유

김남시 2009. 1. 8. 19:26

 

 

자살은 삶에의 의지가 결핍되고 고갈됨으로써 생겨난, 살아감의 피로, 절망으로 인한 자기파괴적 행동이라고 여겨진다. 그것은 모든 생명체가 본능적으로, 본성상 가지고 있는 자기보존 충동 거스리는 본성적인 반자연적인 파괴행위이며, 어떤 상황에서든, 어떤 어려움이 있건 살아가야 한다는 삶에의 정언명령을 거스르는 반인륜적, 나아가 비도덕적 행위라고 비난된다. 절망, 파괴 등의 단어들과 결합되어 있는 자살이, 자살을 종교적 죄악으로 여기는 기독교 문화 속에서는 물론 이제 삶을,시민들을 살아가게 함으로써 그들의 권력을 유지시키는 생체 권력이 지배하는 오늘날까지 이런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왔던 것은 이런 점에서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와는 다르게 생각할 수는 없을까? 오히려 자살은 스피노자가 „Conatus 통해, 니체가 권력에의 의지 통해 이야기했던, 나아가 들뢰즈가 욕망기계라는 말로 표현하고자 했던 인간에게 존재하는 근원적인, 긍정적인 충동의 표현으로, 죽음이라는 삶의 마지막 경계까지도 자신의 것으로,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자신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적극적 의지의 소산이라고 이해할 수는 없을까?

 

아메리의 <자신에게 손을 얹기. 자유사에 대한 디스쿠어스 Hand an sich legen. Diskurs über den Freitod, 1976> 이런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는 자살을 무엇인가의 결핍, 고갈에 의한 어쩔 없는 수동적, 패배적 귀결이 아니라, 오히려 바로 순간에야 비로소 인간의 실존이 자신의 진정성과 강도 획득하는 적극적, 능동적 삶의 표현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그러한 점에서 아메리는 자기 자신을 살해한다 의미의 자살 Selbst-Mord“이라는 단어를 자유로운 죽음이라는 의미의 „Frei-Tod“ 대체할 것을 제안한다. 그가 말하는 것은 자신에게 다가올 죽음을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삶이나 혹은 사람을 죽이지 말라 절대적 정언명령을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어기고 위반한다는 의미를 함축하는 자살 아니라, „죽음을 향해 사는 Zum-Tode-hin-Leben“ 으로서의 자유사 Freitod  (24)이다.

 

자유사는 천연두처럼 우리가 그로부터 치유되어야 하는 어떤 병이 아니다.“ (40) 자유로운 죽음은 오히려, 인간이 생각할 없는 , 존재의 의미가 앞에서 완전히 무기력해지는 -의미 Un-Sinn’, ‚존재하지 않음 Nichtsein“이라는, 인간 존재에 근본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모순을, 자신의 행위를 통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것으로 끌어 안으려는, 인간에게만 가능한 실존적 결단인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군가가 자살을 결심하게 되는 동기가 무엇인가가 아니다.  사랑을 얻지못한 젊은 가정부이건, 사업에 실패한 기업가이건, 자신의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믿는 장교이건, 오랫동안 우울증을 겪어왔던 지식인이건 자신의 삶을 끝내기 위한 최종적인 행위 - „뛰어 내리기 직전의 순간 Moment vor dem Absprung“ 죽음에 대한 (그와 동시에 삶에 대한) 태도에 있어 그들 모두를 절대적으로 동등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살론을 위해 아메리는 소위 자연적 죽음과 비자연적 죽음이라는 일반적인 구분에 문제를 제기한다. 인간에게 있어 도대체 자연적죽음이라는건 무엇인가? 사고나 다른 불운을 통해서, 치유할 없는 때문에, 혹은 자살이 아니라 자신의 수명을 다할 때까지 살다가 죽는 것은 도대체 어떤 점에서 자연스럽다 것인가? 정말 그렇게 죽은 사람들은, 우리가 그들에 대해 습관적으로 이야기하듯, 어떤 편안한 휴식 맞이하게 것일까? 자신에게는 갑작스러울 밖에 없는, 그가 기다리고 있던 죽음이 정말 그에겐 그렇게 자연스럽게느껴졌을까? 자연적 죽음과 비자연적 죽음을 구분하고 자연적 죽음을 칭송하는 우리의 문화는 그를통해 죽음이라는 삶의 패러독스로부터 우리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것은 아닐까?

 

  이러한 질문들을 통해 아메리는, 그의 다른 책들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를 읽는 독자들을 몹시도 불편하게 만든다. 불편함은 그가, 우리가 생각하지 않으려고, 잊고 있으려고 노력하는 질문들을 의도적으로, 노골적으로 제기하기 때문이다. 이는 그의 다른 <늙음에 대하여Über das Altern. Revolte und Resignation, 1968>에서도 마찬가진다.  

 

현실이 아무리 힘들어도, 모두가 속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어도, 그에대해 실컫 이야기하고 나서는 그래도 힘냅시다라는 습관적 언사를 던져주는 것이 미덕으로 되어버린, 오늘날의 글쓰기와는 달리, 아메리는 현대 사회에서 늙는다는 것이 가져다 주는 처절한 패배, 자기소외 그리고 그것의 실존적 비극에 대해 아무 위로도 주지않는다. 오히려 그는 독자가 책을 덮어 버리고 담배를 피워물게 만들 정도로 가차없이, 늙음이, 현대 사회에서 늙는다는 것이 의미하는 벌거벗은 상처를 서슴없이 이야기한다. 어느날 불현듯 늙음이 가져다 어떤 불편함을 감지해, 그를 위로받기 위해 그의 책을 읽는 독자는 오히려 그때까지 깨닫지 못했던, 늙는다는 것이 갖는 깊고도 어두운, 헤어나기 힘든 서늘한 깨달음에 빠진다. 늙어가는 사람에겐 시간이 살았던 시간과 살고있는/살아갈 시간 사이의 대칭으로 기울어 간다는 것을, 늙는다는 것은 자신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점점 낯설어져 가며, 타인들의 시선 속에서도 사라져간다는 것을, 점점 이해하기 힘들어지는 세계로부터 이탈해 가면서 결국엔 죽어감 Sterben 함께 살아감을 배워야 한다는 깨달음에.

 

그리고 거기엔 아무 희망도, 아무 위로도 없다. 늙음을 자신의 문제로 의식해가는 독자는 그의 책을 읽는 동안, 아니 그의 책을 읽고 나서 늙어가는 자신과 그것의 사회적, 실존적 결과와 아무 방패막 없이 고독하게 대면한다. 그의 언어는, 세상으로부터의 거리감을 만들어내고 그를통해 세상의 차가운 냉혹함으로부터 우릴 보호해주는 방어막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눈꺼풀을 벗기고 처절한 진실을 직시하게 하는 폭로의 무기이다. 아메리는 그의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자신의 대리인인 A 하여금 마지막 문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게 한다. „A 사람들의 평온을 깨뜨리고, 타협을 폭로하고, 풍속화를 파괴시키고, 그를통해 자기 위안을 쫓아버리는 무엇인가를 행하였는가? 그는 그러기를 바란다. 살아갈 들은 하루 하루 쭈그러들어 말라져 간다. 그는 이제는 정말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욕망을 가졌다.“ (149)

 

독자들의 평온을 깨뜨리고, 어떤 위로도, 어떤 도피처도, ‚그래도…’ 라는 공허한 수사도 제공하지 않는, 한마디로 책을 읽는 사람들의 편안한 요구들과 타협하지 않는 그의 글은 그의 개인적인 삶의 여정에서 나온다. 1912 비인에서 태어난 유대인 아메리는 나찌가 권력을 잡기 시작하던 시기 사회주의 운동을 벌이다 체포된다. 동료 조직원들의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게슈타포가 그에게 행했던 고문 체험을 그는 1964 출판한 <죄와 속죄의 저편. 위압당한 자의 극복 시도들.Jenseits von Schuld und Sühne. Bewältigungsversuche eines Überwältigten>에서 묘사하고 있다. 책에서 아메리가 시도하고 있는 고문에 대한 현상학적 기술 처음 얻어맞는 순간 어떻게 세상에 대한 실존적 신뢰가 붕괴는지, 물고문을 받던 그에게 숨을 내쉴 있는 자유 Atemfreiheit 대한 본능적 욕구가 어떻게 그가 가지고 있던 사회적 자유에 대한 요구를, 동료들을 배반하게 하는지 그를 읽는 사람을 함께 고문을 당하는 현장으로 끌고간다. 그가 고문실에서 느꼈던, „세상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기대할 없는 처절한 단절감 이후 유대인 수용소에서의 경험은 그로 하여금, 삶과 죽음의 진실을 외면함으로써 우리가 얻는 편안함이 얼마나 헛되고 얄팍한 것인가를 처절하게 깨닫게 것이다. 자살에 대한 그의 사유는 이러한 깨달음에서 근거하고 있다.  

 

자살, 아니 자유사를 긍정하는 책을 출판함으로써 아메리는, 좀처럼 빠져 나오기 힘든 어떤 길로 자신을 이끌고 갔다. 자유로운 죽음을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삶에의 의지로 포괄하고자 했던 아메리는 자신의 말이 갖는 수행적 차원을 의식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는 책을 통해 자신의 자유사를 공표했던 것이다. 1978 10 17 아메리는 잘쯔부르크의 호텔에서 자유로운 죽음을 실행한다. 그의 책상에는 그의 자살을 통해 호텔에 끼치게 될 불편을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편지와 그때까지의 숙박료가 놓여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