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수 있는 세계

헤겔에게서의 비극

김남시 2008. 12. 17. 05:47

크리스토프 멩케의 헤겔에게서의 Tragische 대한 뛰어난 책을 읽다. Christoph Menke : Trägodie im Sittlichen. Gerechtigkeit und Freiheit nach Hegel, 1996 Shurkamp. (역시 이름이 나는 학자는 그냥 유명해지는게 아니다. 책엔 문장 문장 속에 담겨있는 인식적 충만함, 술술 문제를 이끌어가는 힘이 있어,  독자가 두꺼운 철학서적을 손에 놓지 않고 계속 읽게 만드는 매력이 숨겨져 있다.) 헤겔이 미학에서 밝히고 있듯 비극의 근거는 인륜성 Sittlichkeit이다. 그리고 이것은 가족 국가, 키에르케고르가 Substantielle Bestimmung이라고 지칭했던 개인을 초월해있는, 그러나 개인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공동체적 규정 속에서 자신을 드러낸다. 헤겔은 개인에게 미치는 이러한 인륜적 sittliche Macht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Furcht’ , ‚자기 자신의 가슴에서 나오는 die Macht seiner eigenen Brust“이라고 말한다. (Philosophie der Kunst. Vorlesung von 1826, S.250). 비극과 비극적인 것은 개인이 이런 인륜적 힘에 세상의 다른 , 규정, 위계적 질서들이 대립되어 있음을 발견함으로서 생겨난다. 인륜적 의식은 자신이 의식하는 이런 세상의 규정들이 자신의 인륜적 힘에 대립하고, 적대하고 있는 것으로, 그리하여 어떤 타협과 화해가 아니라, 그를 제거하고, 파괴하고, 해체함으로써만 이루어질 있는 상태를 지향한다. 이는 그가 자신의 인륜적 힘을 절대화시키고, 이를 외부적 힘에 대립시킴으로써 생겨난다.



비극적인 것의 본질은 이러한 대립되어 있는 것이 둘다 동등한 정당성을 가지고 등장한다는데에 있다. „Das ursprüngliche Tragische besteht nun darin, dass innerhalb solcher Kollision beide Seite des Gegensatzens für sich genomen Berechtigung haben, während sie andererseits dennoch den wahren positiven Gehalt ihres Zwecks und Charakters nur als Negation und Verletzung der anderen, gleichberechtigten Macht durchzubringen imstande sind und deshalb in ihrer Sittlichkeit und durch dieselbe ebenso sehr in Schuld geraten.“ (Vorlesung über die Ästhetik III, S.523) 헤겔의 문장 속에는 사실상 비극적인 것에 대한 그의 모든 이론이 요약되어 있다. 비극적인 속에서 대립하는 것들은 자신의 올바름을 갖는다. 그런데 주체는 자신에게, 정확히 말해서 자신에게 존재하는 인륜적 힘에 절대적 올바름을 부여함으로써 주관적으로 그와 대립하고 있는 외부적 힘에 절대적으로 대립하고 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인륜적 힘은 그리하여 거기에 대립되어 있는 외부적인, 자체로는 정당한 힘을 파괴하고 부정함으로써만, 그를 부정하는 행동Tun 통해서만 실현되며, 자신의 긍정적 내용을 갖는다. 바로 이로부터 비극적인 것은 필연적으로 Schuld 관계맺게된다. 주인공은 자신에게 대립되어 있는 것을 파괴하고 부정하는 통해서만, 범죄 Verbrechen 통해서만 자신을 주장할 있다.



하지만 헤겔이 말하는 주체가 자신의 자유 의지를 통해 어떤 욕망이나 내적 경향을 규제함으로써 저지르지 않을수도 있었을 것을 저질러 생겨나는 어떤 윤리적 죄가 아니다. 비극적인 주인공이 자신의 행동 Tun, Tat 통해 저지르게 되는 죄는 자신에게 있어 올바른 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인륜적인 것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주체가 필연적으로 감수할 밖에 없는 인간의 존재론적 죄이며, 자기 자신과 자신의 인륜적 의식에 외적으로 대립되어 있는 현실 사이의 분열 Entzweigung 부터 생겨나는 필연적 귀결이다. „Die Schuld ist nicht das gleichgültige doppelsinnige Wesen, dass die Tat, wie sie wirklich am Tage liegt, Tun ihres Selbsts sein könne oder auch nicht, als ob mit dem Tun sich etwas Äußerliches und Zufälliges verknüpfen könnte, das dem Tun nicht angehörte, von welcher Seite das Tun also unschuldig wäre. Sondern das Tun ist selbst diese Entzweiung, sich für sich und diesem gegenüber eine fremde äußerliche Wirklichkeit zu setzen; dass eine solche ist, gehört dem Tun selbst an und ist durch dasselbe. Unschuld ist daher nur das Nichttun wie das Sein eines Steins, nicht einmal eines Kindes.“ (Phänomenologie des Geistes, 346)



키에르케고르가 근대에서 비극적인 것의 소멸을 이야기하면서 이야기하는 헤겔이 여기에서 말하는 죄와는 구분되어야 한다. 키에르케고르가 이야기하는 죄는, 비극적인 죄가 가지고 있는 존재론적, 필연적 규정이 사라짐으로해서, 주체들이 자신의 행동을 자신의 자유의지로부터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여김으로 해서 생겨나는 윤리적 죄다. 그리고 이는 비극적인 것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헤겔에 의하면 그리스 비극에 등장하는 코러스’, 동등한 힘과 정당성을 가지고 대립하고 있는 힘에 모두 정당성을 부여하는, 이러한 코러스의 제스쳐가 공존할 없는 힘을 화해시키고, 조화시키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둘을 서로 병렬시킴으로써 이것들이 충돌할 밖에 없는 상황에로 나아가는데 기여한다. 안티고네의 행동을 이끌었던 인륜적 ,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눈을 파내게 했던 인륜적 규정 들은, 우리가 그들의 행동의 인륜적 올바른 sittliche Berechtigung 전적인 동감 sympathie 가질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고양된 비극적 감정 불러일으킨다. 지점에서 헤겔은 단지 우연적으로 이루어진 인물의 파국, 불행한 결말, 그가 당한 불운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단순한 소도시 아낙네들이 갖는 동감 비극적 감정 구분한다. 전자는 다만 슬픔Traurige 뿐이다. 거기엔 인물의 불운에 대한 공감은 있을지언정, 불운의 필연성에 대한 인식은 없다. 그는 재수가 없어서, 우연하게도 그런 불운을 당했을 뿐이다. (여기서 독일어 Glück, Unglück 한국어  번역 행운혹은 불운대해 갖는 어떤 내적 차이가 지적될 있다. 한국어 단어엔 이미 어떤 운명 Schicksal’이라는 함축이 들어있다. 하지만 헤겔이 말할 때의 불운은 그런 운명적 규정이 아니라 다만 우연적인 외적 규정과 상황들의 조합에 의해 생겨난 결과다.)



헤겔에게서 운명 대립되는 힘이, 필연적으로 충돌할 밖에 없는 대립이 서로 몰락함으로써 확인되고 실현되게 양자의 총체성 속에서 자신을 드러낸다. 비극적 주체는 인륜적 힘을 쫓아 행한 자신의 행동 Tun 통해 죄를 짓고, 스스로 몰락하며, 그와 동시에 그의 행동을 통해 파괴되거나 상처를 입은 그에게 대립되어 있는 힘도 마찬가지로 몰락한다. 양자의 몰락을 통해, 양자의 대립관계를 변증법적으로 지양한 총체성 속에서 운명은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