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문자, 미디어

인터넷과 속도. 인터넷은 계몽을 가속화시킬 수 있을까

김남시 2007. 7. 8. 22:21

  

1797년 오늘날과 같은 대중신문도 인터넷도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에 살았던 임마누엘 칸트는 책을 누군가가 대중 (Publikum) 들을 향해 눈에 보이는 문자를 통해 행하는 공공적 (öffentlich) 연설 (Rede)[1]이라고 정의한다. 말하자면 책을 출판한다는 것은 특정 사안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문자를 통해 대중들에게 공공적으로 표명하는 행위였다. („출판하다“ Ver-öffentlichen의 독일어 단어에는 이미공공적으로öffentlich 만들다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공공적으로 표명하는 행위는 계몽의 철학자 칸트에게 있어선 특히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데, 그건 바로 계몽의 프로젝트가 그러한이성의 공공적 사용 der öffentliche Gebrauch von Vernunft’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계몽이란 무엇인가>에서 칸트는 이성의 사적 사용과 공적 사용을 구분하면서 계몽의 진전을 가져다 주는 것은 이성의 사적 사용이 아니라 그것의 공공적 사용임을 분명히 한다. 칸트가 들고 있는 예에 따르면 상관의 명령을 받은 장교가 그를 실행하지는 않고 그것의 합목적성이나 유용성에 대해 불평하고 트집잡는 räsonieren 자제되어야 이성의 사적 사용에 해당된다면, 이성의 공적사용이란 장교가 상관의 명령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자신의 이성적 판단과 논증을문자를 통해 그에 합당한 대중 Publikum, 다시말해 세계를 향해 말함[2]으로써 그를 공공적 토론에 맡기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요구되는 매체가 바로 책이다. 칸트에게 있어 책은 이처럼, 개인이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대중을 향해 공공적으로 표명하고, 그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공공적 토론을 통해 사적인 이성의 한계를 유적 이성으로 자라나게 [3]으로써 계몽을 수행하는데 없어선 매체였다.

 

이처럼 칸트가 살았던 시대에 이성의 공적 사용을 위한 유일한 매체였던 책은 그것의 특성상 누군가가 자신의 이성적 판단과 논증을 문자화시켜 출판하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유통되어 다른 누군가에 의해 읽혀지고 그에 대한 비판적 응답이 또다시 문자화되기까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당시의 출판과 유통 기술에 의해 조건지워졌을, 이성의 공적 사용에 어쩔수 없이 소요되던 이러한 시간은 그러나 칸트에 의해 결코 계몽의 장애로 여겨지지 않았다.  인간이 자신의 이성을 스스로 사용하지 못하는 미성숙의 원인으로 칸트가 게으름과 용기부족 Faulheit und Feigheit 들면서도, 이성의 공적사용에 걸리는 시간을 문제삼지 않았던 데에는 책을 통한 공공적 토론에 요구되는 시간을 그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칸트 이후 인류는 칸트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수많은 문자매체들을  발전시켰다. 책이라는 고전적 형태는 신문, 광고전단, 찌라시, 팜플렛과 카타로그 등의 수많은 다양한 형태들로 분화되었고 이는 가장 최근의 혁신적 매체 인터넷으로까지 이어졌다. 새로운 문자 매체들의 가장 특징은 이것들이 문자를 통해 이루어지는 소통의 속도를 엄청나게 가속화시켰다는다는 데에 있다. 특히 인터넷[4] 사적 의견의 공공적 접근과 토론의 가능성을  책과는 비교될 없을 만큼 확장시켰지만, 다른 한편 누군가의 생각과 의견이 쓰여지고, 공공화되며, 읽히고 토론되는데 걸리는 시간을 거의 구어적 소통의 수준으로까지 축소시킴으로써, 칸트에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이성의 공적 사용에 걸리는 시간을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우리의 생각은 거의 구어와 동일한 속도로 이루어지는 타이핑을 통해 문자화되며, 그를통해 우리는 거의 실시간으로 문자를 통해 상대방과대화 있게 되었다. 블로그나 카페 게시판에 글을 쓰는 행위는 그것이 자신의 의견을 대중들에게 공공적으로 표명하는 veröffentlicht 이라는 의식을 가질 사이도 없이 즉흥적이고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며, 이렇게 문자를 통해 공공화된 누군가의 생각은 즉시 인터넷에 접속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유통되고 전파된다. 책의 출판과는 달리 이렇게 개진된 누군가의 의견에 대한 반론이나 비판을 문자화하고 그것이 글을 저자에게 다시 전달되는 데에도, 다만 그를 타이핑하고 게시판에 올리는 시간밖에는 걸리지 않는다.

 

이처럼 문자적 커뮤니케이션에 필연적으로 요구되던 시간을 거의 제거해 버린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우린 칸트가 꿈꾸었던 계몽의 목표에 만큼 빠르게 다가갈 있게 것일까? 인터넷은 칸트에게선 미래에 이루어질 인간의 유적 과제였던 계몽의 실현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우리를 초고속으로 실어 나르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대한 이러한 기대는 오늘날, 노동자 1명이 1주일 걸려 제작하던 물건을 1시간만에 생산해 있게 주는 산업기계 인류 힘든 육체 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켜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가져다 것이라 믿었던 19세기 공상적 유토피아 유사한 운명에 빠져들고 있는 보인다. 왜냐하면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은 이전 시대엔 등장하지 않던 많은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들을 발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소통하는 상대의 육체성의 부재를 근본조건으로 갖는 문자소통 인터넷 소통은 그러나 서신교환과 같은 이전 시대 문자 소통에 소요되던 시간을 제거함으로써 문자소통이 가지고 있던 잠재적 문제 더욱 가시화시켰다. 상대의 표정, 목소리, 제스쳐 등의 육체적, 언어적 메시지를 상대의 언어적 메시지와 동시에 지각할 없는 문자소통에서 우리는 상대의 언어적 메시지를 다만 문자화된 그의 언어적 메시지로부터 간접적으로 유추할 밖에 없다. 말하자면 나에게 전달된 상대방의 문자적 메시지가 내게 화난 상태에서 쓰여진 것인지, 아니면 내게 우호적 태도로 쓰여진 것인지를 우린 그의 쓰여진 문자에서만 감지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상대에 대한 비난이나 혹은 감정적 고백 등을 통해 서로의 정서적, 감정적 언어적 메시지를 직접 문자화시켜 전달하지 않는 문자적 소통에서 부재하는 육체성은 문자적 메시지 자체를 통해서만 전달, 유추되거나 혹은 은폐될 밖에 없다. 단순한 정보의 전달이 아니라 정보가 전달되는 특정한 방식과 모드를 함께 고려하고자 하는 인간의 의사소통적 욕구[5] 이러한 문자적 소통에서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선 따라서 상대에게 전달하는 문자적 메시지에 이러한 정서적, 감정적 태도 등의 언어적 메시지를 투입혹은 은폐하거나, 역으로 상대의 쓰여진 문자로부터 그를 읽어내고‘, ‚감지하는데 필요한 시간이 요구된다. 유치한 감정고백을 남발하지 않으면서도 사랑의 감정을 상대에게 전달해야 하는 연애 편지나 혹은 자신이 경멸하거나 증오하는 상대에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특정 메시지를 전달하는 편지 등을 써야할 우리가 단어나 문장을 고르고 그를 배치하는데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도 때문이다.           

    

문자적 소통에 요구되던 시간을 급격히 단축시켜버린 인터넷 소통은 우리로 하여금 문자적 메시지를 생산하고 유통시키는 있어 신속성과 즉각적 실효성 Actuality 요구를 따르도록 강제한다. 우리는 거의 구어의 속도로 진행되는 인터넷 문자 소통에서 단어나 표현들을 숙고해 고르고, 정선하는 시간을 갖지 못하며 오히려 즉각적으로 상대의 질문이나 상황적 요구에 응답하기를 요구받는다. 그것의 가능한 함축과 뉘앙스 들을 고려하지 못한 급하게 선택된 단어나 표현들은 종종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하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경우를 발생시키며, 이런 오해의 가능성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그리고 빠른 속도로 소통에 참여할 있기 위해 우리는 정선되고, 숙고된 단어 표현을 고르기 보다는 이미 정형화되어 있고 널리 사용되 있는 (키취적이고 클리세적인) 언어적 표현들을 가져다 쓰게된다. 다양한 구어적 표현들이 문자적 소통에 도입되고, 이모티콘, 글자의 색깔, 크기 등의 변화를 통해 인터넷의 문자 소통에 정서적이고, 감정적인 언어적 메시지를 부가하려는 시도가 행해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둘째, 본질적으로 구어적, 대면적 소통과 구분되는 문자적 소통이 이렇게 구어적 속도와 모드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는 인터넷 문자소통은 그를통해 문자가 보장해주던 대상에 대한 반성적 거리감을 사라지게 한다. 문자화된 지식과 정보가 사람들로 하여금 그에 대한 반성적 거리감을 가능케한다[6]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 의해 지적된 바이다. 그런데 이제 인터넷에서 거의 구어의 속도와 모드로 사용되고 있는 문자는 문자로 쓰여진 것에 대한 반성적, 비판적 거리감을 상쇄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그것은 인터넷 소통이 특정한 정보와 사태, 의견에 대한 비판적 반성에 필요한 시간적 여유를 허용하는 대신 빠른 시간 안에 주어진 데이터들을 일별해 신속하게 그에대한 자신의 사고와 판단을 유통시켜야 하는 압력을 강화시키기 때문인데, 그를통해 이성적 토의보다는 도발적이고 센세이셔널한 주장들이 부추켜지는 경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오늘날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이성의 공공적 사용에 대해 갖는 관계는, 인터넷이 출현하기 20 신문, 티브이, 영화 등의 대중 매체가 시민적 공공영역에 대해 갖는 부정적 관계를 분석한 하버마스의 진단[7]과도 유사해 보인다. 이후 이런 대중매체의 공공적, 비판적 활용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질문, 인터넷은 계몽을 위한 효과적인 도구가 있을까 어쩌면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대답되어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



[1] „Ein Buch ist eine Schrift (ob mit Feder oder durch Typen, auf wenig oder viel Blätter verzeichnet, ist hier gleichgültig), welche eine Rede vorstellt, die jemand durch sichtbare Sprachzeichen an das Publikum hält. Der, welcher zu diesem in seinem eigenen Namen spricht, heißt der Schriftsteller (Autor). Der, welcher durch eine Schrift im Namen eines anderen (des Autors) öffentlich redet, ist der Verleger....Schrift ist nicht unmittelbar Bezeichnung eines Begriffs, sondern eine Rede ans Publikum, d.i. der Schriftsteller spricht durch den Verleger öffentlich.“ Immanuel Kant : Metaphysik der Sitten, 1797, AB 128.

[2] Immanuel Kant: Beantwortung der Frage: Was ist Aufklärung, A 488.

[3] 칸트는 Idee zu einer allgemeinen Geschichte in weltbürgerlicher Absicht 에서 이성적 피조물로써의 인간에게 주어진 이성을 사용할 있는 능력은개인에서가 아니라 Gattung에서만 완전하게 피어날 있다 말함으로써 자신의 이성을 스스로 사용하지 못하는 미성숙으로부터 벗어나는 계몽의 목표가 개별인들이 아니라 사회 내에서의 유적존재로서만 이루어질 있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Am Menschen (als dem einzigen vernünftigen Geschöpf auf Erden) sollten sich diejenigen Naturanlagen, die auf den Gebrauch seiner Vernunft abgezielt sind, nur in der Gattung, nicht aber im Individuum vollständig entwickeln.“ Zweiter Satz. 

[4] 인터넷이 가지고 있는 멀티 미디어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인터넷에서의 정보 교환이나 토론은 여전히 문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러한 점에서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지는 소통은 기본적으로 여전히 문자적 소통의 원리를 따르고 있다. 

[5] Albrecht Koschorke 육체적 지표들이 탈감각화 entsinnlicht 되어있는 문자를 통한 소통이 소통 자체를 탈감각화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소통 참여자들로 하여금 문자 속에 감추어져 있을 육체적, 감각적 흐름들을 섬세한 상상력과 감정이입을 통해 감지하고 활성화시키려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함으로써 어떻게 낭만주의 철학과 문학사조를 낳게 되었는가를 18세기 이후 귀족과 시민계급 사이에서 보편화되기 시작한 서신교환 문화와 관련시켜 밝히고 있다. Körperströme und Schriftverkehr. Mediologie des 18. Jahrhunderts, München 1999.  

[6] Jan Assmann : Das kulturelle Gedächtnis. Schrift, Erinnerung und politische Identität in frühen Kulturen, 1992 München, S.99.  

[7] J. Habermas : Strukturwandel der Öffentlichkeit. Untersuchungen zu einer Kategorie der bürgerlichen Gesellschaft. 1971 fünfte Auflage, Berl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