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문자, 미디어

욕의 언어학

김남시 2007. 2. 10. 23:41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단어들이 단지 사물에 붙여진 임의적이고 관습적 기호에 불과하다는 소쉬르적 주장에 확신하는 사람들에게도 이론적 확신을 스스로 배반할 밖에 없는 실천적 삶의 순간들이 존재한다. 누군가에게 공격과 모욕을 받고 상대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을 그에 대한 통해 표출하는 순간이다. „, 개새끼야!.“ 욕을 하는 순간 우리는, 실천적으로, 그를통해 상대를 호칭한 단어가 그저 아무에게나 임의로 부착했다 떼었다 있는 명찰과 같은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우릴 모욕하고 공격한 그의 본질, 나아가 그의 운명까지를 규정할 단어이기를 바란다. 상대에게 욕을 하는 순간 우리는,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있을 그의 이름  – ‚XX’ - 앞에 붙어 사회적 존재로서의 그의 존재를 규정해왔던 모든 직위와 호칭들 – ‚부장’, ‚교사’, 교수’, ‚경찰 - 무효화시키고는 그의 존재를 우리가 부른 이름 – „개새끼“ – 통해 새롭게 호명한다. 욕을 하는 순간 우리는 우리 자신을 모든 사물들의 본질을 드러내는 이름을 통해 만물과 인간들을 창조한 창조주의 위치로 격상시키고는, 상대를 우리가 부른 욕을 통해 새로이 명명하는 작은 창조의 순간을 체험한다. 이를통해 우리가 그를 명명한 이름 – „개새끼“ – 창조하는 신의 단어[1]로써, 단지 우연적이고, 관습적으로 그에게 붙여진 기호가 아니라 상대의 본질을 인식하면서 그를 창조하고 완성시키는이름이 되며, 우린 그를 개새끼라고 명명함으로써 그의 본질이 이름 - ‚개새끼’ - 속에서 인식될 있도록[2] 하는 것이다.

 

상대에게 욕을 하는 행위는 이를통해 개인으로서의 명명 행위자의 보편적 타당성에의 요구를 함축하고 있다. 욕을 하는 순간 우리는 우리 자신이 단지 우연적이고, 개별적이며, 부수적인 많은 개인들 중의 하나를 넘어서는 보편적 주체임을 제기한다. 나는 욕을 통해 내가 내린 상대에 대한 판정 – ‚개새끼’ – 단지 개별적인 자신에게만 통용되는 주관적이고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세상과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보편적 타당성을 갖기를 바란다. 상대에게 욕을 하는 순간 우리는 세상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나와 함께 그를 개새끼라고 판정하기를, 나의 욕은 다만 보편적 판정에 대한 대리 선포이기를 바란다.

 

기호의 자의성과 우연성을 아무리 이론적으로 확신하고 있는 사람이라도 그저 우연적이고 임의적인 기표 불과한 욕을 듣고 흥분하고 분노하게 되는 것은 욕을 하는 행위가 함축하고 있는 이러한 보편적 타당성에 대한 요구 때문이다. 

 

 


[1] Walter Benjamin : Über Sprache überhaupt und über die Sprache des Menschen, In W. Benjamin : Sprache und Geschichte. Philosophische Essays, S.41.

[2] Vgl. Walter Benjamin : Über Sprache überhaupt und über die Sprache des Menschen, In W. Benjamin : Sprache und Geschichte. Philosophische Essays, S.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