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수 있는 세계

근대적 주체, 학문, 자기관찰, 파라노이아

김남시 2007. 7. 5. 19:54

1903독일 드레스덴 고등법원 판사회 의장이기도 했던 법학박사 Daniel Paul Schreber 는 자신의 유명한 병력 기록 <주목할 만한 한 신경병자의 기록 Denkwürdigkeiten eines Nervernkranken> 을 출간한다. 이 책에서 그는 1884년 최초로 발발한 신경병[1]으로 인해 라이프찌히 대학 정신병원에 수용되면서부터 이후 1902 12월 퇴원할 때까지 자신에게 일어났던 착란과 환상, 파라노이드적 체험들을 놀라운 집중력과 표현을 통해 기록하였는데, 이는 이후  짧게는 프로이드[2]로부터 시작 발터 벤야민[3], 엘리아스 카네티[4], 쟈크 라캉[5], 가따리/들뢰즈[6] 등의 저자들에 의해 인용되고 재해석되면서 수많은 논의들을 제공하는  고전이 된다.

 

 

 

 

저명한 교육자이자 법조인 가족[7]에서 태어나 최고의 고등 교육을 받은 법관이자, 비록 낙선하기는 했어도 1884년엔 국민 자유당 작센 지역 후보로까지 출마했던 저명한 고위 정치가의 이 기록은 그러나 그런 공공인으로서의 그의 이미지와 사회적 위신에 그리 도움이 되는 책은 아니었다. 그를통해 자신의 많은 사생활이 드러나게 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눈에 보이지 않는 광선을 발하는 거대한 신경망을 통해 자신을 파괴시키려던 신과 직접 소통하며 그  속에서 자신의 육체가 여자로 변신하는 환상 등을 고백하고 있는 이 책은 오히려 사회적 공공인으로써의 그의 지위를 심각하게 훼손시킬 수도 있는 것이었다. 실지로 1902년 자신의 금치산 판결에 대한 번복을 요구하며 슈레버가 드레스덴 왕립 고등 재판소에서 벌인 재판에서 정신 감호소 원장 Werber 박사는 이 책을 슈레버가 여전히 정신적으로 완전히 치유되지 못했다는 증거로 내세우기도 했다.[8]

 

법관이자 정치가로서의 자신의 사회적 경력에 치명적일 수도 있을 위험에도 불구하고 슈레버 박사가 이 책을 출판하게 된 동기는 도대체 어디에 있었을까. 이 책 서문에서 그는 그것이 모든 개인적이고 사적인 것들 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겨져야 할 학문과 종교적 진리를 위한 것이라고 밝힌다. « 내가 살아있는 동안 전문가들에 의해 내 육체와 내 개인의 운명에 대한 어떤 식의 관찰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이 학문을 위해 그리고 종교적 진리의 인식을 위해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모든 사적인 고려들은 침묵해야만 한다. » [9] 이 책의 말미에서 그는 다시 한번, 이 책을 출간하는 « 핵심목적 » « 자신 개인 Person  학문적 관찰 대상으로써 전문가적 판정에 내 맡기려는 데 » 있음을 분명히 하면서 만일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자신의 « 신경체계의 특별함 »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는게 힘들다면 죽은 후 자신의 시체를 기꺼이 해부용으로 기증할 용의가 있음을 [10] 밝히고 있다.   

 

자신의 사적 영역에 속하는 모든 것들 - 자신의 육체, 정신적 병력, 그에 포함되어 있을 사생활 등 - 을 공공적인 학문 발전을 위한 재료이자 대상으로 삼으려 하는 이러한 생각이 20세기 초 유럽에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이채로운데, 왜냐하면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것처럼이 시기는 근대화와 시민계급의 성장을  통해 가족을 중심으로 한 사적인 삶이 전면으로 부상하고 있었던 시기이자, 그를통해 사회적이고 공공적인 것과  분리되고 그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사적이고 개인적인 것이 가치가 사회 전반의 개인주의화와 더불어 중시되던 때[11] 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도 슈레버 박사는 학문과 종교적 진리를 위해 자신의 사적인 육체와 사생활을 공공적 연구재료로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 이는 유명한 편집증 환자 슈레버 박사의 과대 망상 증의 결과였을까 ?  

 

그러나 우리는 이와 동일한 태도를 슈레버의 증상을 오이디프스 컴플렉스에 의한 동성애적 욕구를 억압함으로써 생겨난 편집증 Paranoid 으로 진단한 프로이드 자신에게서도 발견한다. 1908년 출간된 <꿈의 해석> 서언에서 프로이드는 이 책의 출간이 쉽지 않은 것이었다고 말하면서 그 이유가 이 연구가 다루고 있는 재료이자 대상인 꿈의 선택 문제에 있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여러 상황들을 고려한 끝에 프로이드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의 꿈을 분석과 탐구 대상으로 삼기로 결정하는데, 바로 이것이 이 책의 출간을 어렵게 했던 문제를 낳었다. 왜냐하면, 그를통해 프로이드 개인의 사생활과 공공적 시선으로부터 보호되고 감추어져야 할 사적인 내밀성 Intimität이 어쩔수 없이 함께 드러나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로이드는 결국 학문적 목적을 위해 자신의 사적 내밀성을 희생시키는 길을 택한다. 내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러나 내가 내 심리적 삶의 내밀성들을 내가 원하는 것 이상으로 낯선 시선을 향해 드러내는 것과 뗄 수 없이 결합되어 있음이 드러났다….이는 창피한 peinlich 일이지만 피할수 없는 일이다….나는 다만 이 연구를 읽는 독자들이 나의 이러한  힘든 처지를 입장을 바꾸어 생각함으로써 날 이해할 것이라는 기대만을 말할 수 있을 뿐이다.[12]

 

칼 구스타브 융이 전해주는 유명한 일화[13]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결정이 자신의 내밀한 사생활을 공공적 시선과 침입으로부터 보호하기를 원하는 모든 근대인들에게서와 마찬가지로  프로이드에게 얼마나 힘든 것이었는지를 추측할 수 있다. 공공적 시선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할 사적인 내밀성을 학문적 목적을 위해 어쩔수 없이 까밝여야 하는 프로이드의 갈등은 <꿈의 해석> 곳곳에서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방법론에 대한 설명을 끝내고 본격적인 꿈 해석에 들어가기 전에 프로이드는 왜 자신의 꿈을 연구 재료로 삼게 되었는지, 이러한 자기관찰 Selbstbeobachtung이 어떤 점에서 다른 이들에 대한 관찰 Beobachtung anderer 보다 더 신뢰할 만한 것인지를 이야기하면서 재차 자신의 결단을 되새김한다. 나는 내 내면에 있는 다른 어려움들을 극복해야 한다. 내겐 이렇게 많은 내밀한 것들을 내 영혼의 삶으로부터 댓가로 치루어야 한다는 데서 생겨나는 불안이 있으며 낯선 이들이 그를 악의적으로 해석 Missdeutung 할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에대해 우리는 단호할 수 있어야 한다.[14]

 

동시대를 살았던 한 명의 유명한 편집증 환자와 자신의 이론을 통해 그의 편집증을 진단하고 확인했던 유명한 정신 분석가가 모두 공동으로 보여주고 있는 이러한 태도는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왜 이들은 모두 자신의 사적인 내밀성을 기꺼이 공공적 학문을 위한 재료로 제공하기를, 그를위해 자신에게 닥칠 내,외적 위험들을 스스로 감수하기를 택했던 것일까. 여기엔 어떤 모습의 근대의, 더 좁게는 근대 학문의 파토스가 작용하고 있었던 것일까. 이를 공유하고 있었던 다니엘 파울 슈레버의 자기관찰과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자기관찰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그리고 어떤 차이점이 존재할까. 좀 더 일반적으로 이는 사생활, 사적 영역의 출현과 확장이라는 사회, 문화적 변화와 또 바로 그를 재료로 대상으로 삼는 근대적 학문의 출현과는 어떤 관련을 맺고 있을까.



[1] 파울 슈레버는 1902년 자신에 대한 금치산 판정을 해제할 것을 요구하는 재판에서 자신의 병이 ‘정신병 Geistes/krankheit’가 아니라 ‘신경병 Nerven/krankheit’임을 누누히 강조하였다. 이에 대해선 다른 글에서 상세히 다룬다. Samuel M. Weber : Die Parabel. Einleitung. In Denkwürdigkeiten eines Nervenkranken. Ullstein 1973.

[2] Sigmund Freud : Zwei Fallberichte. Psychoanalytische Bemerkungen über einen autobiographisch beschriebenen Fall von Paranoia (Dementia paranoides),  1911.

[3] Walter Benjamin : Bücher von Geisteskranken in GS IV.2.

[4] Elias Carnetti : Masse und Macht, 1960.

[5] Jacques Lacan : Sur une question préliminaire à toute traitement possible de la psychose, 1966.

[6] Deleuze & Guattari : LAnti-Œdipe, 1972.

[7] 그의 아버지 Daniel Gottlieb Moritz Schreber는 독일에 근대적 체조 운동을 보급한 유명한 의사이자 교육자였으며, 그의 형 Daniel Gustav Schreber역시 법관이었다. 그러나, 그의 형은 1877 38세의 나이로 권총 자살한다. 슈레버의 병력을 그의 가족사적 관계에 의거 해석하는 많은 연구서들도 있다. William G. Niederland: Der Fall Schreber. Das psychoanalytische Profil einer paranoiden Persönlichkeit, Verlag: Suhrkamp (Februar 1984).

[8] Gutachten des Geheimen Rat Dr. Weber, Sonnenstein 5. April 1902.

[9] D.P. Schreber : Denkwürdigkeiten eines Nevernkranken, Vorwort, Ullstein, S.61.

[10] D.P. Schreber : Denkwürdigkeiten eines Nevernkranken, Vorwort, Ullstein, S.354-355.

[11] Wolf Lepenies : Das Ende der Naturgeschichte, 1976, S.201.

[12] S. Freud : Die Traumdeutung. Vorbemerkung.

[13] 1909 융과 함께 떠난 미국 여행길에서 서로의 꿈을 해석해 주고 있던 융이 프로이드의 꿈을 그의 사생활에서 일어난 몇가지 디테일과 관련시켜 해석하려 하자 갑자기 불신에 얼굴로 나는 권위를 위험에 빠뜨릴 없다 ‘라며 거절했다. Hans Blumenberg : Die Lesbarkeit der Welt, S.352.

[14] S. Freud : Traumdeutung, München 1991, S.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