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독일 드레스덴 고등법원 판사회 의장이기도 했던 법학박사 Daniel Paul Schreber 는 자신의 유명한 병력 기록 <주목할 만한 한 신경병자의 기록 Denkwürdigkeiten eines Nervernkranken> 을 출간한다. 이 책에서 그는 1884년 최초로 발발한 신경병[1]으로 인해 라이프찌히 대학 정신병원에 수용되면서부터 이후 1902년 12월 퇴원할 때까지 자신에게 일어났던 착란과 환상, 파라노이드적 체험들을 놀라운 집중력과 표현들을 통해 기록하였는데, 이는 이후 짧게는 프로이드[2]로부터 시작 발터 벤야민[3], 엘리아스 카네티[4], 쟈크 라캉[5], 가따리/들뢰즈[6] 등의 저자들에 의해 인용되고 재해석되면서 수많은 논의들을 제공하는 고전이 된다.
저명한 교육자이자 법조인 가족[7]에서 태어나 최고의 고등 교육을 받은 법관이자, 비록 낙선하기는 했어도 1884년엔 국민 자유당 작센 지역 후보로까지 출마했던 저명한 고위 정치가의 이 기록은 그러나 그런 공공인으로서의 그의 이미지와 사회적 위신에 그리 도움이 되는 책은 아니었다. 그를통해 자신의 많은 사생활이 드러나게 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눈에 보이지 않는 광선을 발하는 거대한 신경망을 통해 자신을 파괴시키려던 신과 직접 소통하며 그 속에서 자신의 육체가 여자로 변신하는 환상 등을 고백하고 있는 이 책은 오히려 사회적 공공인으로써의 그의 지위를 심각하게 훼손시킬 수도 있는 것이었다. 실지로 1902년 자신의 금치산 판결에 대한 번복을 요구하며 슈레버가 드레스덴 왕립 고등 재판소에서 벌인 재판에서 정신 감호소 원장 Werber 박사는 이 책을 슈레버가 여전히 정신적으로 완전히 치유되지 못했다는 증거로 내세우기도 했다.[8]
법관이자 정치가로서의 자신의 사회적 경력에 치명적일 수도 있을 위험에도 불구하고 슈레버 박사가 이 책을 출판하게 된 동기는 도대체 어디에 있었을까. 이 책 서문에서 그는 그것이 모든 개인적이고 사적인 것들 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겨져야 할 학문과 종교적 진리를 위한 것이라고 밝힌다. « 내가 살아있는 동안 전문가들에 의해 내 육체와 내 개인의 운명에 대한 어떤 식의 관찰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이 학문을 위해 그리고 종교적 진리의 인식을 위해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모든 사적인 고려들은 침묵해야만 한다. » [9] 이 책의 말미에서 그는 다시 한번, 이 책을 출간하는 « 핵심목적 » 이 « 자신 개인 Person 을 학문적 관찰 대상으로써 전문가적 판정에 내 맡기려는 데 » 있음을 분명히 하면서 만일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자신의 « 신경체계의 특별함 »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는게 힘들다면 죽은 후 자신의 시체를 기꺼이 해부용으로 기증할 용의가 있음을 [10] 밝히고 있다.
자신의 사적 영역에 속하는 모든 것들 - 자신의 육체, 정신적 병력, 그에 포함되어 있을 사생활 등 - 을 공공적인 학문 발전을 위한 재료이자 대상으로 삼으려 하는 이러한 생각이 20세기 초 유럽에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이채로운데, 왜냐하면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것처럼이 시기는 근대화와 시민계급의 성장을 통해 가족을 중심으로 한 사적인 삶이 전면으로 부상하고 있었던 시기이자, 그를통해 사회적이고 공공적인 것과 분리되고 그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사적이고 개인적인 것이 가치가 사회 전반의 개인주의화와 더불어 중시되던 때[11] 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도 슈레버 박사는 학문과 종교적 진리를 위해 자신의 사적인 육체와 사생활을 공공적 연구재료로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 이는 유명한 편집증 환자 슈레버 박사의 과대 망상 증의 결과였을까 ?
그러나 우리는 이와 동일한 태도를 슈레버의 증상을 오이디프스 컴플렉스에 의한 동성애적 욕구를 억압함으로써 생겨난 편집증 Paranoid 으로 진단한 프로이드 자신에게서도 발견한다. 1908년 출간된 <꿈의 해석> 서언에서 프로이드는 이 책의 출간이 쉽지 않은 것이었다고 말하면서 그 이유가 이 연구가 다루고 있는 재료이자 대상인 꿈의 선택 문제에 있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여러 상황들을 고려한 끝에 프로이드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의 꿈을 분석과 탐구 대상으로 삼기로 결정하는데, 바로 이것이 이 책의 출간을 어렵게 했던 문제를 낳었다. 왜냐하면, 그를통해 프로이드 개인의 사생활과 공공적 시선으로부터 보호되고 감추어져야 할 사적인 내밀성 Intimität이 어쩔수 없이 함께 드러나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로이드는 결국 학문적 목적을 위해 자신의 사적 내밀성을 희생시키는 길을 택한다. „내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러나 내가 내 심리적 삶의 내밀성들을 내가 원하는 것 이상으로 낯선 시선을 향해 드러내는 것과 뗄 수 없이 결합되어 있음이 드러났다….이는 창피한 peinlich 일이지만 피할수 없는 일이다….나는 다만 이 연구를 읽는 독자들이 나의 이러한 힘든 처지를 입장을 바꾸어 생각함으로써 날 이해할 것이라는 기대만을 말할 수 있을 뿐이다.“[12]
칼 구스타브 융이 전해주는 유명한 일화[13]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결정이 자신의 내밀한 사생활을 공공적 시선과 침입으로부터 보호하기를 원하는 모든 근대인들에게서와 마찬가지로 프로이드에게 얼마나 힘든 것이었는지를 추측할 수 있다. 공공적 시선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할 사적인 내밀성을 학문적 목적을 위해 어쩔수 없이 까밝여야 하는 프로이드의 갈등은 <꿈의 해석> 곳곳에서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방법론에 대한 설명을 끝내고 본격적인 꿈 해석에 들어가기 전에 프로이드는 왜 자신의 꿈을 연구 재료로 삼게 되었는지, 이러한 자기관찰 Selbstbeobachtung이 어떤 점에서 다른 이들에 대한 관찰 Beobachtung anderer 보다 더 신뢰할 만한 것인지를 이야기하면서 재차 자신의 결단을 되새김한다. „나는 내 내면에 있는 다른 어려움들을 극복해야 한다. 내겐 이렇게 많은 내밀한 것들을 내 영혼의 삶으로부터 댓가로 치루어야 한다는 데서 생겨나는 불안이 있으며 낯선 이들이 그를 악의적으로 해석 Missdeutung 할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에대해 우리는 단호할 수 있어야 한다.“[14]
동시대를 살았던 한 명의 유명한 편집증 환자와 자신의 이론을 통해 그의 편집증을 진단하고 확인했던 유명한 정신 분석가가 모두 공동으로 보여주고 있는 이러한 태도는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왜 이들은 모두 자신의 사적인 내밀성을 기꺼이 공공적 학문을 위한 재료로 제공하기를, 그를위해 자신에게 닥칠 내,외적 위험들을 스스로 감수하기를 택했던 것일까. 여기엔 어떤 모습의 근대의, 더 좁게는 근대 학문의 파토스가 작용하고 있었던 것일까. 이를 공유하고 있었던 다니엘 파울 슈레버의 자기관찰과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자기관찰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그리고 어떤 차이점이 존재할까. 좀 더 일반적으로 이는 사생활, 사적 영역의 출현과 확장이라는 사회, 문화적 변화와 또 바로 그를 재료로 대상으로 삼는 근대적 학문의 출현과는 어떤 관련을 맺고 있을까.
[1] 파울 슈레버는 1902년 자신에 대한 금치산 판정을 해제할 것을 요구하는 재판에서 자신의 병이 ‘정신병 Geistes/krankheit’가 아니라 ‘신경병 Nerven/krankheit’임을 누누히 강조하였다. 이에 대해선 다른 글에서 상세히 다룬다. Samuel M. Weber : Die Parabel. Einleitung. In Denkwürdigkeiten eines Nervenkranken. Ullstein 1973.
[2] Sigmund Freud : Zwei Fallberichte. Psychoanalytische Bemerkungen über einen autobiographisch beschriebenen Fall von Paranoia (Dementia paranoides), 1911.
[3] Walter Benjamin : Bücher von Geisteskranken in GS IV.2.
[4] Elias Carnetti : Masse und Macht, 1960.
[5] Jacques Lacan : Sur une question préliminaire à toute traitement possible de la psychose, 1966.
[6] Deleuze & Guattari : L’Anti-Œdipe, 1972.
[7] 그의 아버지 Daniel Gottlieb Moritz Schreber는 독일에 근대적 체조 운동을 보급한 유명한 의사이자 교육자였으며, 그의 형 Daniel Gustav Schreber역시 법관이었다. 그러나, 그의 형은 1877년 38세의 나이로 권총 자살한다. 슈레버의 병력을 그의 가족사적 관계에 의거 해석하는 많은 연구서들도 있다. William G. Niederland: Der Fall Schreber. Das psychoanalytische Profil einer paranoiden Persönlichkeit, Verlag: Suhrkamp (Februar 1984).
[8] Gutachten des Geheimen Rat Dr. Weber, Sonnenstein 5. April 1902.
[9] D.P. Schreber : Denkwürdigkeiten eines Nevernkranken, Vorwort, Ullstein, S.61.
[10] D.P. Schreber : Denkwürdigkeiten eines Nevernkranken, Vorwort, Ullstein, S.354-355.
[11] Wolf Lepenies : Das Ende der Naturgeschichte, 1976, S.201.
[12] S. Freud : Die Traumdeutung. Vorbemerkung.
[13] 1909년 융과 함께 떠난 미국 여행길에서 서로의 꿈을 해석해 주고 있던 중 융이 프로이드의 꿈을 그의 사생활에서 일어난 몇가지 디테일과 관련시켜 해석하려 하자 갑자기 불신에 찬 얼굴로 ‘나는 내 권위를 위험에 빠뜨릴 수 없다 ‘라며 거절했다. Hans Blumenberg : Die Lesbarkeit der Welt, S.352.
[14] S. Freud : Traumdeutung, München 1991, S.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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