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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사적소유, 폭력 (1)

김남시 2007. 10. 21. 05:55

  

사적 소유의 기원

 

아득한 옛날에 한편에는 부지런한 엘리트가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게으른 룸펜이 있었다.  전자는 부를 축적하였고 후자는 결국 자기 가죽말고는 아무 것도 것이 없게 되었다. 원죄로부터 다수 대중의 빈곤이 시작되었는바, 그들은 노동을 계속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기 자신말고도 아무 것도 것을 가지지 못하고, 소수자들의 부는 그들이 이미 오래전에 일하기를 그만두었음에도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1] 맑스가 설화 Anekdote“ 혹은 어린애 같은 이야기Kinderei“ 라고 지칭하며 비판하는 하지만 결국 극복하지는 못하는 - 시나리오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것은 사적 소유의 근원에 대한 록크로의 철학에서 출발한다. 1689 록크는  Two Treatises of Government. : An Essay Concerning the True Origin, Extent, and End of Civil Government 에서 애초에 신에 의해 인간 모두에게 공통으로 주어진 자연의 사물들로부터 어떻게 사적소유가 생겨나게 되었을까라는 물음을 던지고 이것이 노동 근원을 갖는다고 말한다. 모든 인간에게 자연적으로 주어져 있던 땅을 경작해 수확물을 거두어 들이고, 야생 동물들을 길들이며, , 나무, 등의 자연물들을 가지고 인간이 수있는 주거공간을 만드는 등의 노동labour 통해 인간은 노동의 산물을 다른 사람 모두에게 속하지 않는 did not belong in common to others“ „자신만의   his own“으로 삼을 권리를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From all which it is evident, that though the things of nature are given in common, yet man, by being master of himself, and proprietor of his own person, and the actions or labour of it, had still in himself the great foundation of property; and that, which made up the great part of what he applied to the support or comfort of his being, when invention and arts had improved the conveniencies of life, was perfectly his own, and did not belong in common to others.“[2]

 

애덤 스미스나 데이비드 리카도의 정치 경제학이 사적 소유의 근원을 노동에서 찾는 로크의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나아가 이것이 생산물들의 가치를 그를 생산하는데 투여된 노동의 에서 찾는 노동 가치설의 근본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철학사적 상식에 속한다. 노동을 사적 소유와 가치의 근원으로보는 이러한 철학적 입장이 정치경제학의 시초축적 관한, 맑스가 전하는 시나리오의 근거를 이루고 있다는 그리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있다. , „시초에 부지런히 노동했던 자들이 재산과 부를 축적해 이상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자본가가 되었고, 그때 게으름을 피며 노동하지 않던 자들은 결국 자기 몸뚱아리 밖에는 아무 것도 내다 팔게 없는 노동자가 되었다 것이다.

 

<자본론> 24[3]소위 시초 축적에 대하여에서 정치 경제학의 이러한 시초축적 이론이 갖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성경의 원죄 설화[4] 비교하며 비판하는 맑스는 사적 소유에 대해 이와는 다른 철학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맑스는 여기서 사적 소유의 근원이 노동 있다고 보는 정치경제학자들에 반해, 사적 소유 자체가 노동이 아니라, 정복, 노예화, 강탈, 살인과 같은 폭력에서 기인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바로 그로부터 맑스는 폭력적 근원을 갖는 부당한 사적 소유 일반을 철폐할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

 

사적소유와 시초축적

 

사적소유에 관한 맑스와 정치경제학의 입장 사이의 차이 혹은 동일성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부분을 우리는 25 <근대적 식민이론> 첫문장에서 찾을 있다. „정치경제학은 자신의 노동에 근거하는 사적소유 그것의 제거 Vernichtung 기인하고, 거기에 극단적으로 diametral 대립되어있는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 편안하게 혼동Verwechselung하고 있으며 원리적으로 혼동을 정당화하려고 한다.„[5]  

여기서 맑스가 자본주의적 사적소유 das kapitalistische Eigentum’ 극단적으로 대립되어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자신의 노동에 근거하는 사적소유 das auf eigener Arbeit beruhende Privateigentum“ 특징은 그것이 고립되고 독립적인 노동 개인들이 자신의 노동 조건들과의 밀접한 관계 Verwachsung“[6]속에서 행한 노동에서 생겨난다는 것이다. , 이것은 노동하는 개인들이 자신의 노동조건, 가장 주요하게는 자신의 생산수단을 직접 소유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이며, 결과 노동의 산물은 노동을 개인들의 사적인 것으로 된다. 그러한 점에서 맑스가 말하는 자신의 노동에 근거하는 사적소유 로크가 말했던 개인들의 노동에 의해 정당성이 확보되는 사적 소유(편의상 이를 본원적 사적소유라고 부른다)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것이다. 맑스가 자신의 노동에 근거한 이러한 본원적 사적 소유를 원리적으로 부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가 그러한 본원적 사적소유에 대한 폭력적 착취를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근본적 특징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맑스에 의하면 자본주의적 사적소유 이러한 본원적 사적소유의 부정이자 억압 결과다. 자본주의적 사적소유는개인적이고 자신의 노동에 근거하고 있는 사적소유의부정 Negation이다.“[7]고립되고 독립적인 노동개인들과 자신의 노동조건들과의 밀접한 관계 Verwachsung 근거하고 있는 사적소유는, 형식상으로는 자유로운 타인의 노동에 대한 착취 Exploitation 기인하고 있는 자본주의적 사적소유에 의해 억압 verdranegt 된다.:[8]

 

이러한 본원적 사적소유와 그것의 부정과 억압에 의해 이루어진 자본주의적 사적소유를 구분하지 않는 혹은 의도적으로 혼동시키는 - 정치경제학은 그를통해 자본주의적 사적소유가 마치 본원적 사적 소유의 역사적 계승자인 것처럼 이야기함으로써 그를 정당화시킨다. 정치경제학이 내세우는 소위 시초축적 시나리오는 자본주의적 사적소유를 본원적 사적소유와 매끄럽게, 단절없이 연결시키기 위한 담론적 장치다. 목적은 그를통해 끊임없이 부를 축적하는 자본가와 자신의 노동력 말고는 것이 없는 노동자라는 현재의 상태가 본원적 사적소유의 현실적 귀결 것처럼 이해되기 위함이다.   

 

맑스와 시초축적  

 

따라서 맑스의 시초축적 대한 비판은 두가지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소위 시초축적이라는 사고방식 자체가 자본주의적 사적소유를 탄생시켜 자본주의적 양식을 출발시키게 했던 실제적 역사과정을 은폐하는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을 폭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초축적시나리오에 의해 은폐되고 있는 자본과 자본주의 양식의 전사를 구체적이고 실증적으로 밝히는 것이다.

 

<시초축적의 비밀> 절의 구절은 위에서 언급했던 첫번째 과제, 소위 sogenannte“ 시초축적이라는 시나리오가 하나의 허위적 가상 다름 아니라는 것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돈이 자본으로 전환되는지, 자본을 통해 어떻게 잉여여가치가 생겨나고 잉여가치로부터 어떻게 많은 자본이 만들어지는지를 보았다. 여기에서 자본의 축적은 잉여가치를 전제하고, 잉여가치는 자본주의적 생산을 전제하며, 자본주의적 생산은 상품생산자들의 수중에 상당한 양의 자본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따라서 모든 과정은 자본주의적 축적에 선행하는 시초축적 (아담 스미스에게서의 이전의 축적) 전제하고 있는 scheint하다. ,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결과가 아니라 출발점을 이루는 축적말이다.„[9] 맑스는 여기서 분명하게 자본주의적 축적에 선행한다는 시초축적이란 다만 그렇게 드러나 보이는 scheint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실지로 정치경제학자들에게 시초축적이라고 현상하는 것은 사실상은 생산자와 생산 수단사이의 역사적인 분리 과정“, 한편으로는 사회적인 생활과 생산수단을 자본으로 전환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직접적 생산자들을 임금노동자로 전환시키는 과정외에 다른 것일 없다.“[10] 자본주의적 사적소유가 본원적 사적소유를 축출하는 과정이기도 이러한 역사적 과정이 시초적 것으로 드러나는 erscheint것은 과정이 자본과 그에 상응하는 생산양식의 전사 Vorgeschichte 이루기 때문이다.“[11] 

 

자본의 순환과 축적을 완결된 자본주의 생산양식 내부에만 갇혀 바라보고, 자본주의적 사적소유를 본원적 사적소유와 의도적으로 혼동하고 있는 정치경제학자들에게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전사 Vorgeschichte 초월적이고 탈역사적인 근원 Ursprung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정치경제학자들의 소위 시초축적 시나리오에 대해 맑스는 2절부터 자본과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전사를 이루었던 구체적인 역사적 과정 농만으로부터 토지수탈, 피수탈자에 대한 피의 입법 - 실증적이고 경험적인 증거들을 통해 제기한다. 따라서 여기서는 정치경제학자들의 시초축적이론에 대한 맑스의 시초축적이론이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정치경제학자들에게는 시초축적으로 현상하는자본과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전사를 서술하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 과정은 자신의 노동에 근거해있는 사적 소유가 해소 Auflösung“[12]되고 자본주의적 사적소유로 전환되는 과정이며, 그와 동시에 자본의 역사적 생성 Genesis“ 과정[13]이기도 하다.



[1] Marx : Kapital, 24 Kapitel : Die so genannte ursprüngliche Akkumulation, Ullstein, S.659.

[2] John Locke : Two Treatises of Government. : An Essay Concerning the True Origin, Extent, and End of Civil Government, Of Property, 44.

[3] 글에서 참조하는 <자본론> 맑스가 살아있던 시절 스스로 검토하고 수정해 출간했던 독일어 두번째 (1872) 기준으로 한다. 1883 출간된 <자본론> 3판과 1890년의 4판은 맑스의 사후 프리드리히 엥겔스에 의해 수정, 보완된 것이다. 김수행의 번역이 근거한 영어본(Penguin Books Limited, Progress Publischers) 판본들과 많은 부분에서 차이를 보인다. 맑스가 <화폐의 자본으로의 전환> 하위 절로 다루고있는 자본의 일반공식’, ‚자본의 일반공식의 모순’, ‚노동력의 구매와 판매 김수행 번역본은 독립된 장으로 다루고 있으며, 독일어 2판본에선 <자본의 축적과정> 편의 하위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소위 시초축적 김수행 본에선 독립된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4] 정치경제학의 시초축적이론을 원죄설화 비교하는 부분은 1883  프리드리히 엥겔스에 의해 보완 출판된 <자본론> 3 부터 추가된 것이다. 바로 구절로 인해 성경에 등장하는 원죄의 댓가로서의 노동 맑스주의가 근거하고 있는 노동 중심주의와의 긴장된 친화성이 아이러니컬하게 부각되게 된다. 

[5] Marx : Kapital, 24 Kapitel : Die so genannte ursprüngliche Akkumulation, Ullstein, S.706.

[6] Marx : Kapital, 24 Kapitel : Die so genannte ursprüngliche Akkumulation, Ullstein, S.704.

[7] Marx : Kapital, 24 Kapitel : Die so genannte ursprüngliche Akkumulation, Ullstein, S.706.

[8] Marx : Kapital, 24 Kapitel : Die so genannte ursprüngliche Akkumulation, Ullstein, S.704.

[9] Marx : Kapital, 24 Kapitel : Die so genannte ursprüngliche Akkumulation, Ullstein, S.659

[10] Marx : Kapital, 24 Kapitel : Die so genannte ursprüngliche Akkumulation, Ullstein, S.660.

[11] Marx : Kapital, 24 Kapitel : Die so genannte ursprüngliche Akkumulation, Ullstein, S.660. 여기서 언급하고 넘어가야 것이 부분에 대한 김수행의 번역이다. 그의 번역은 다음과 같다. „그러므로 모든 운동은 끝없는 순환 속에서 빙빙 돌고있는 같이 보이는데, 여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는 자본주의적 축적에 선행하는 시초축적…,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결과가 아니라 그의 출발점인 축적을 상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김수행, 979)  번역에 따르면 자본주의적 축적에 선행하는 시초축적 상정하는 것이 맑스자신의 요구에 의한 것처럼 되어있는데, 이는 해당 원문의 의미 scheint 제대로 옮기지 못했을 아니라, 이후의 문맥과의 관계에서 보더라도 명백하게 잘못된 번역이다.

[12] Marx : Kapital, 24 Kapitel : Die so genannte ursprüngliche Akkumulation, Ullstein, S.703.

[13] Marx : Kapital, 24 Kapitel : Die so genannte ursprüngliche Akkumulation, Ullstein, S.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