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문자, 미디어

음성 메시지

김남시 2004. 8. 27. 17:11

음성은 늘 그 음성을 내는 이의 육체적 현존과 결합되어 있었다. 내게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온다면 난 그 음성의 주인공이 „지금“ 어딘가 가까운 곳에, 그 음성의 가청거리 내에 존재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다. 이로인해 음성은 우리가 찾는 누군가의 육체가 지금 현재 이곳에 있음을 확인하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으로 활용된다. 사고로 땅 속에 매몰된 생존자가 어딘가 살아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저 폐허 더미 어디선가 들려오는 그의 음성을 찾는다. 어둠 속에서 길을 갈 때 우리는 무용지물인 시각을 대신해 음성을 통해 서로의 위치를 확인한다. 금지된 나무 열매를 따 먹고 숨어있던 아담을 향해 „너 어디 있느냐“고 불렀던 창세기의 신 역시 음성이 그 소유자의 현존과 뗄 수 없이 결합되어 있음을 알고 있었다.

음성이 그 음성을 말하는 자의 육체가 지금, 현재, 이곳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지표라는 사실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하고 있다. 우린 화상 인터폰이 설치되지 않은 집의 초인종을 누르고는 음성을 통해 자신을 확인시킨다. 우린 또한 음성(혹은 헛기침)을 통해 용변을 보고있는 화장실에 누군가 멋모르고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고, 딴 일에 정신이 팔려있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육체적 현존'을 - 자동차 경적처럼 - 알리기도 한다. 음성과 육체적 현존의 결합에 대한 이러한 믿음은 또한 다른 이들을 속이는데 이용되기도 한다. <나 홀로 집에>의 영악한 캐빈은 티브이를 틀어 대화소리를 들려줌으로써 밖에서 칩입을 노리고 있던 도둑들에게 그 집에 „지금 사람들이 있다“고 믿게한다. 한국 전 피난 당시 대통령 이승만은 녹음된 자신의 항전 메시지를 내보냄으로써 국민들에게 마치 자신이 수도를 지키고 있다고 믿게 했다.  

음성을 그와 결합되어 있어야 할 육체로부터 분리시키는 기술들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고 당황하게 했다. 들려오는 음성과 결합되어 있어야 할 육체를 교묘한 방법으로 감춤으로써 우릴 놀라게 하는 복화술은 아직 눈속임에 불과하긴 하지만, 음성과 육체가 서로 분리될 수 있음을 시사해준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육체와 결합되어 있던 음성을 그 육체로부터 분리시킬 수 있는 기계적 기술이 발명되었을때, 에디슨이 발명한 최초의 축음기가 파리 아카데미에서 처음으로 시연되었을 때 그것을 관찰하던 사람들은 그 기계를 통해 재생된 소리가 시연자의 복화술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직도 사람들은 음성과 육체의 분리가 단지 눈속임으로만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음성이 기계를 통해 녹음되고 다시 재생될 수 있게 됨으로써 음성과 육체적 현존과의 결합에 대한 오랜 믿음은 결정적으로 붕괴되어 버렸다. 이 새로운 매체는 우리에게 지금, 이곳에 현존하고 있지않는 사람은 물론, 심지어 이미 오래 전에 죽어버린 사람들의 음성까지도 들을 수 있게한다.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던 마리아 칼라스의 음성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증오와 공포의 대상이었던 히틀러의 음성도, 이젠 더 이상 그들의 육체적 현존이 불러일으켰을 즐거움, 증오 혹은 두려움 등의 감정적 반응없이 필요할 때마다 재생될 수 있다. 이런 미디어 테크닉에 익숙해 있는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들려오는 누군가의 음성만으로 그의 육체적 현존을 유추할 만큼 순진하지도 않다.

음성이 육체와의 직접적 결합을 상실함으로써 이제 음성은 스스로 하나의 '전달적 매체'로 전락하고 만다. 핸드폰이나 자동 응답기에 남겨놓는 우리의 음성은 더 이상 우리의 육체가 지금, 현재, 이곳에 현존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절대적 기의가 아니라 다른 매체에 비해 엄청나게 비효율적이며 비능률적인 '전달매체'에 다름 아니다. 핸드폰 메일 사서함에, 전화 자동 응답기에 남겨놓은 우리의 음성 메시지는 우리의 육체적 현존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상대방에게 전달되어야 할 '메시지'에 다름 아니다. 잡음이나 다른 소음, 불명료한 발음 등으로 인해 그 음성 메시지는 문자 메시지 보다 더 비효율적인 전달 매체로 여겨지기도 한다. 음성은 이제 육체적 현존이라는 절대적 기의의 지위에서 전달되어야 할 메시지나 정보를 전달해주는 상대적 기표- 그것도 문자나 편지 등보다 비효율적인 - 로 전락해 버렸다.

물론 음성 메시지는 아직도 음성과 육체와의 저 오랜 결합의 흔적을 지니고 있기는 하다. 생일을 맞은 우리는 문자 메시지보다는 애인의 목소리가 담긴 음성 메시지를 더 받고 싶어할 것이다. 문자는 사실상 그 누구나 보낼 수 있지만 내 애인의 목소리는 그 자신 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 불편한 음성 메시지가 전화국의 자동안내 시스템에 등장하는 저 중립적 목소리로 대체되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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